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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씨 Aug 30. 2020

누구를 위한 복수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스포 있는 [올드보이] 리뷰


 '유명한 한국 영화 감독'을 당장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면,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류승완, 김지운...  정도가 떠오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유명한게 정말 많다. 가장 최근 개봉작인 [아가씨], 복수 3부작이라 불리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그리고 [박쥐]까지. 유명한 영화가 정말 많지만, 대부분이 청불 영화인데 내가 성인이 된 17년 이후에 개봉한 게 없다. [아가씨]가 그나마 최근인데, 16년이다. 물론, 성인 되기 전에 청불영화엔 손도 대지 않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청불 컨텐츠를 보지 않는 청소년이 몇이나 될까. 나도 많이 봤다. 그럼에도 [올드보이]를 그저께 처음 제대로 봤고, [친절한 금자씨]와 [복수는 나의 것]을 아직 보지 않은 이유는, 영화에 한창 관심이 많이 생겼던 중3~고1때 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대한 수식어가 '잔혹함'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잔인함과 잔혹함의 차이가 뭔지 몰랐고 알고싶지도 않았다. 명작이라고는 하는데, 잔혹해? 그럼 다른거 먼저 볼래. 이런 마인드. 지금은 잔혹한 건 잘 본다. 잔인한건 여전히 싫어하지만 갑툭튀보다는 낫지, 라는 마인드다. 사족이 길었다.




"15년의 감금, 5일의 추적."



 이 멘트만 보고 영화관에 들어갔을 당시의 관객들은 꽤 많은 충격을 받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와! 박찬욱이 만든 추격 액션 영화!' 이런 생각으로 영화를 봤을 거라는 건데, 이 영화에서 추격이라는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도구지 주 내용이 아니니까 많이 당황했겠지 싶다.



 오대수. 자기 입으로 말하는 자기 이름의 뜻,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서 살자.' 무례하고 대책없는 이 중년 남성은 만취해 잡혀간 경찰서에서도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풀려나 집으로 가는 길. 오늘은 딸의 생일이다. 술에서 덜 깬 채 베베 꼬이는 혀로 전하는 생일 축하. 집에 곧 들어간다던 아빠 오대수는 그날 그렇게 실종된다.



 굳게 닫힌 철문. 강아지 한 마리 겨우 지나갈까 싶은 작은 쪽문이 밑에 달려있다. 한 남자가 귀찮음 가득한 발길질로 레버를 올린다. 쪽문 안에서 오대수가 머리를 비집고 나와 소리친다. 선생님에서 개새끼까지, 호칭을 바꿔가며 꺼내달라고 소리친다. 그는 이유도 모른 채 이 곳에 가둬졌다.



 누가 날 가뒀는가? 오대수는 인생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사람들을 적어간다. 자신이 해온 악행들을 기록하며 수사망을 좁혀간다. 누가 날 가뒀는가? 하지만 지나온 모든 나날들을 기록하고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가끔 이상한 노래와 함께 수면가스가 나온다. 정신을 차려보면 머리칼이 정리 되어 있고, 옷이 바뀌어 있고, 자해한 상처가 치료 되어 있다. 메뉴는 바뀌지 않지만 밥도 꼬박꼬박 나온다. 확실해진 것 하나. 날 가둔 사람은 내가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죽기를 원치 않는다면, 내가 이곳을 나가 너를 죽여주마. 


 


 오대수는 증오와 분노, 복수를 담아 젓가락으로 벽을 파기 시작한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 1년. 시간을 새는 게 점점 무의미해지자 1년에 1줄씩, 손목에 선을 긋는다. 그렇게 그은 선이 15개를 넘어 16개를 바라보고 있다. 젓가락으로 파낸 벽은 바깥의 빗줄기에 손을 뻗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탈출을 하루 앞둔 그 날, 언제나처럼 수면가스가 방을 덮는다. 그런데, 잠에서 깬 장소가 평소와 다르다. 독방의 침대가 아니다. 몸을 덮은 무언가를 발로 쳐낸다. 눈에 들어온 것은 독방의 벽지가 아니라 햇빛이다. 잔디로 뒤덮인 건물 옥상. 자신이 들어 있던 거대한 가방. 그간 기록해온 악행의 자서전. 양복 한 벌. 그렇게 그는 15년만에 독방 밖으로 던져진다.


 15년. 15년만의 세상. 자신을 가둔 누군가의 소행 덕분에, 지금 그의 신분은 아내를 죽인 흉악범이다. 젖먹이때 해어져 15년간 만나지 못한 딸은 얼굴도 모르니 남이나 다름없다. 더이상 바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그에게 남은 유일한 목표는 자신을 가둔 사람을 찾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먹는 것이다.


 


 복수도 배를 채워야 할 수 있다. 수조 안의 횟감을 바라보던 오대수에게 한 노숙자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수백만원이 든 지갑과 핸드폰 하나를 주고 사라진다. '내게 이런 걸 줄 사람은 날 가둬둔 그 사람밖에 없다. 그는 일단 내가 배를 채우길 원하는 것 같다. 다른 선택지도 없고, 배를 채우는 건 나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다.' 대수는 일식집으로 들어가, 살아있는 것을 씹고 싶다는 해괴한 주문을 한다. 주문을 받는 미도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뭘 내어 드려야하나, 미도가 고민하는 사이 아까 받은 핸드폰이 울린다.



"누구냐, 너" 

...

"...내가 중요하진 않아요. '왜'가 중요하지."



영화 [올드보이] 中


 

 무섭도록 요동치는 통화가 끝나고, 미도는 살아있는 걸 씹고싶다는 말에 산낙지를 내온다. 썰어드리면 되냐는 미도의 말은 무시한 채, 대수는 살아서 꿈틀대는 낙지를 머리 채로 입에 쑤셔넣는다. 미도가 손을 내밀어 대수의 손을 잡는다. 그렇게 대수는 정신을 잃는다. 깨어난 곳은 미도의 집이다. 왜인지 모르게, 미도는 대수에게 친근함을 느낀다. 그렇게 둘은 잃어버린 15년과 자신의 15년을 빼앗아간 남자를 찾아 나선다. 독방에 갇혀 15년간 먹던 군만두. 언젠가 만두소에 섞여 씹히던 중국집의 전단지 조각, 거기 써있던 글자. 청룡. 이름에 청룡이 들어가는 모든 중국집을 뒤져, 대수는 자신이 15년간 매일 먹던 그 군만두를 찾아낸다. 자신이 갇혀있던 건물은 찾는 건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갇혀있던 건물은 사업장이었다. 돈을 받고 사람들을 감금해주는 사업가의 사업장. 피터지고 부러지고 찔려가며, 자신을 가둬달라 의뢰했던 남자와의 통화 녹음본을 들고 건물을 나오지만, 출혈과 피로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한 남자가 대수를 부축해서 택시에 태운다.



"...고맙습니다."


"아유, 뭘요. 그럼.... 


 잘 가라, 오대수"




영화 [올드보이] 中



 눈을 뜬 곳은 역시나 미도의 집. 자신을 택시에 태운 남자는 미도의 집 주소까지 알고 있었다. 대수는 이제 미도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집을 나와 옛 친구를 찾는다. 대수와 친구는 미도와 채팅을 주고받던 네이트온 아이디 'evergreen'이 누구인지 파헤치기 시작한다. 어렵지 않게 찾은 에버그린은 자신의 신상정보를 공개해놓은 상태였다.



'이름 수대오, 주소 응암동 세운아파트 7동 407호'


 이름 오대수. 현 주소 미도의 집. 응암동 세운아파트 8동



 이우진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오대수를 맞이한다. 



"상처받은 자한테 복수심만큼 잘 드는 처방도 없어요. 한 번 해봐.


  15년간의 상실감, 처자식을 잃은 고통. 이런거 다 잊을 수 있을거야.


  다시 말해서,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하지만, 복수가 다 이뤄지고나면 어떨까. 아마, 숨어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걸?"


영화 [올드보이] 中



 15년을 가둔 이유도, 15년을 가둬놓고 이제야 풀어준 이유도, 이우진을 죽이면 알 수 없게 된다. 미도 역시 이우진의 계획 안에 있지만 그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오대수는 미도와 함께 이우진의 이유를 찾는 길에 오른다.


"실장님. 미도는 진짜로, 오대수를 사랑하게 된 걸까요? 벌써..?"


영화 [올드보이] 中 이우진 曰



 이우진의 아이디 에버그린. 상록. 오대수가 전학가기 전까지 다녔던 학교 상록고등학교. 퍼즐의 끝이 보이는 것만 같다. 20회 졸업생 이우진. 대수는 그의 동창 주완에게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의 누나 이수아가 불미스런 소문으로 고통받다 결국 자살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다른 동창에게 이수아에 대해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이수아에 관한 이야기는 오대수가 제일 잘 알고있지 않냐는 말에, 오대수는 잊고 지냈던 과거의 기억 하나를 건져올린다.



  그가 전학가던 날, 그는 카메라를 든 채 텅 빈 교정을 뛰어가는 한 남학생을 보고 호기심에 뒤를 쫓아간다. 점점 구석진 곳으로 향하는 남학생은 사람이 없는 빈 교실에 도착한다. 깨진 유리 틈 사이로, 대수는 자신이 쫓던 남학생과 한 여학생이 성행위를 나누는 것을 목격한다. 여학생은 평소 학교에서 바른 학생으로 유명한 이수아, 이우진의 누나였다. 대수는 자신의 목격담을 친구에게 말하고 다음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 대수가 전한 목격담은 입에서 입을 타고 일파만파 커져, 이수아가 임신을 했다는 말까지 돌게 된다. 오대수가 몰랐던 사실이 있다면, 이수아와 성행위를 하던 남학생이 이우진, 이수아의 남동생이었다는 것이다. 근친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수아는 임신이라는 소문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고, 결국 상상임신까지 하게 된다. 자신이 조카이자 아들을 임신했다고 믿게 된 이수아는 그렇게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그까짓 말 한마디 때문에 사람을 15년이나 가둬요? 그게 그렇게 큰 죄야?"


"모래알이든 바위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 이게 이우진 생각이야."


영화 [올드보이] 中



 네가 누나를 죽인 것 아니냐는 오대수의 추측에, 이우진은 비웃으며 자기 얘기는 재밌으니 한번 들어보라며 오대수와 미도에게 걸려있던 최면에 대해 설명한다. 



방에서 나와 도착한 미도의 횟집.


전화벨소리를 들으면 나올 대답


그 대답을 듣고 나올 미도의 행동


미도가 손을 잡으면 잠들게되는 오대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하기 위한 암시.



 재밌다는 듯 말을 끝낸 이우진은 낯설지 않은 무늬의 상자를 가리킨다. 정사각형의 앨범. 열자마자 보이는 사진은 15년전 오대수의 가족사진이다. 한장을 넘기고 나니 오대수는 보이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걸음마도 떼지 못했던 대수의 딸이 점점 자란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미도가, 미도가 환하게 웃고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영화를 보기 전부터 대략적인 줄거리와 반전은 알고 있었다. 오래된 명작들에 손이 잘 가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다. 영화를 틀었던 그 날도, 안일하고 나른한 주말이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글을 하루만에 쓰지 못하는 편이라, 요약은 영화를 본 직후에, 영화평은 영화를 보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야 써내려간다. 일주일 뒤에 쓰는 것의 장점이 있다면 몰입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인 쓰기가 가능하다는 점이고, 단점이 있다면 디테일한 부분을 위해 영화를 다시 틀면서 써야한다는 점이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영화는 경찰서의 오대수에게 처음 카메라를 비추며 시작한다. 술에 잔뜩 취해 경찰에게마저 주정을 부리는 이 사내를 보면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진다. 불쾌감은 몇 분 가지 않아 동정으로 변한다. 15년을 가둬지기에 내가 아는 오대수의 죄목은 좀 적다. 무엇때문에 15년을 가둬지게 되었는지, 커다란 궁금중이 떠오른다.



 사실 이 부분에서, 15년동안 군만두만 먹었다는 설정을 알고 영화를 보게 된 게 많이 아쉬웠다. 10년 뒤의 누군가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 기생충이 두 가족이 아니라 세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걸 모르고 기생충을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오대수의 15년간의 감금생활에 대해서도 꽤 자세한 설명과 묘사가 나온다. TV만이 유일한 친구였다던가, TV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를 준비할 수 있었다던가, 자신을 가둔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써내려간 악행의 자서전 등등. 허나 그런 것들은 대수가 미도의 횟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버린다.



"누구냐, 넌"



 올드보이는 안 봤어도 알고 있는 그 장면. 오대수가 쓰고있던 선글라스가 처음 만난 아주머니의 것을 뺏어온 거라는 사실은 몰랐지만. 횟집에서의 짧고 강렬한 만남 이후, 대수와 미도는 서로에게 빨려 들어간다. 처음에 대수가 의심하던 것처럼, 미도가 대수에게 어떻게 그리 친절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우진의 말을 듣고, 그것이 15년간 밀려있던 부정(父情)과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면, 이 부녀에게 이제껏 지나간 일과 앞으로의 일들이 얼마나 막막한지 감이 잡힌다.



 나는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그정도의 복수를 해도 이해받을 만큼의 피해를 입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다 알면서도 사랑했다는 본인의 말처럼, 알면서도 사랑한 게 이우진과 이수아고, 지나가던 사람1이 그 충격적인 광경을 누군가에게 말했다 한들 그것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을 권리가 되는가? 조금 많이 부족하다. 아마 이우진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복수가 오롯이 복수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용서받지 못할 사랑. 지키지 못한 연인이자 누나. 죄책감. 허무감. 그런 것들. 무시하고 살아가기엔 너무 큰 상처와 감정들.


 가슴 깊은 곳에 박혀있던 화살은 다른 곳에 꽂힌다.



 자신의 복수가 정당하지 않았음을 알기에, 이우진은 복수가 끝난 뒤 다시 찾아온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다.


떨어지는 누나를 잡으려던 동생의 힘없던 손이 방아쇠를 당긴다.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결말.


미도만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웃음은 무지가 인지보다 행복할 때가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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