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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씨 Aug 29. 2020

엄마는 아들을 끔찍이 아낀다

스포 있는 [마더] 리뷰


착하게 말하면 멍청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딘가 한 군데 고장난 아들 도진과, 아들 일이라면 언제나 두 발 벗고 나서는 엄마. 마더의 약재상은 작은 마을 한켠에, 모자의 집을 겸하며 위치해있다. 숯검댕 흙탕물 담배연기로 빚은 세상에 하얗다 못해 투명한 아들을 보내야하니, 마더의 하루는 아들 걱정에서 아들 걱정으로 끝난다. 당연히 아들의 주변인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다. 없어왔고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별일없이 조용하던 마을의 무던함은 하룻밤 사이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어린 학생 하나가 지붕 위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발견된다. 억울한 죽음을 토로라도 하는지 시체는 숙였다기보단 반쯤 꺾인 듯 보인다. 사람 하나가 죽어나간 밤, 아들의 알리바이가 없다.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피해 학생과 마주친 아들은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말하지만 목격자가 없다. 아들의 기억조차 온전하지 못하다. 동네 바보가 정신이상자로, 정신이상자의 우발적 살인으로. 절차는 너무나 간단하다. 마더에게서 아들이 멀어져간다.



마더는 자신이 내쉬는 숨보다도 아들의 무죄를 확신한다. 저 토끼같은 것이, 저 사슴같은 얘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사람을! 거칠 것 없는 확신은 피해 학생의 장례식장까지 마더를 몰고간다. 유가족들의 슬픔이고 뭐고, 마더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억울하게 옥살이중인 아들만 꺼내온다면야, 철면피 까짓거 깔다못해 못박아버려도 상관없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을 왜 미워해! 우리 아들은 아무 잘못 없어. 왜 미워해! 왜!



오갈 곳 없는 마더의 분노는 아들보다 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향한다. 진태 그놈. 그 한량같은 놈. 대책없고 못 배운놈. 그새끼가 그랬을거야. 그새끼가 우리 아들한테 죄를 덮어 씌운거야! 매일 잠들던 집도 감방 바닥에 쭈구려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가시방석이 더 편할 지경이다. 아들의 무죄를 향한 믿음은 생이별이라는 고난을 만났지만 꺾이긴 커녕 한걸음 더 자라났다. 아들이시여. 아들이시여. 노쇠한 몸을 이끌고 건장한 청년의 집에 숨어드는 대범함까지 선보이는 마더의 얼굴에서 한명의 광신도가 보이는 듯 하다.



진태의 골프채에 묻어있던 빨간 자국. 마더는 거기서 피해자의 혈흔을 봤지만 진태의 핸드폰은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립스틱 자국임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럴듯한, 사실 마더의 머릿속에서 기정사실이었던 진태의 혐의는 그렇게 미수로 그친다. 마더는 되려 주거침입으로 합의금을 물어주게 생겼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합의금을 넉넉히 받은 진태가 마더를 돕기 시작한다. 아들에게 죄를 덮어씌운 한량새끼가 인생의 은인이 되는 것 역시 한순간이다. 겉만 봐선 알 수 없는게 사람이라고 했던가, 과거 경찰을 꿈꿨던 진태는 꽤나 그럴듯한 수사망으로 용의자를 좁혀간다.



피해학생에 대한 조사.


이름 문아정. 고등학생. 별명 쌀떡녀



원한관계.


가정형편때문에 불법적인 성매매를 하던 학생. 소리가 나지 않게 개조한 휴대폰 카메라로 남자들을 촬영.


문아정의 핸드폰에 찍힌 모든 남자들의 범행동기가 성립. 증거인멸을 위한 살인.



마더는 아정의 핸폰을 찾아내 아들에게 간다. 아들은 핸드폰 속의 남자들을 뚤어져라 쳐다보다 한 남자의 사진에서 표정이 변한다. 덥수룩한 백발. 대충 기른 수염. 처진 눈. 아들은 그날 밤 핸드폰 속의 노인을 본 것 같다고 말한다. 마더는 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확신하던 진태의 혐의를 부정당하고 돌아가던 빗길, 마더는 노인에게 천원을 주고 고장난 우산을 샀다. 고민 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마더는 노인의 고물상으로 향한다. 광신도의 눈에 구원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잡아 당기는 일만 남았다.



약재상을 운영하며 야매로 침술을 배운 마더는 그 특기를 살려 한의원발 의료봉사라는 이름으로 고물상의 문턱을 넘는다. 최근에 크게 놀란 적이 있어 마음이 심란하다는 노인에게 마더는 마음이 편해지는 혈자리가 있다며 은근슬쩍 무엇을 봤는지 묻는다.





"사건장소 거기가, 오래전부터 빈집인데. 내가 그날 밤에 하필 거기 들어가 있었거든.


사실 원래 내가 그집에 가끔 가. 조용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날은 그 죽은 기집애가 오더라고?


그리고 바로 그 뒤로, 어떤 이상한 놈이 또 따라 오더라고?"


....


"잘못 보신 걸거예요. 윤도준 걔가 범인이 아니라고. 곧 풀려난다는 소문도 있어요.


수사도 전부 다 다시한다고... 진짜로.. 형사들이 그랬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그때 직접 가서 얼굴까지 다 봤는데. 맞더구만, 그놈. 윤도준이.


걔가 돌멩이 휙 던지고... 이상한 것도 막 하고."



영화 [마더] 中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 썩을놈아.



높게 들린 마더의 신념은 빠르게 떨어지며 진실을 내려 찍는다. 때려 부순다. 바닥이 검붉게 일렁인다. 살인자의 엄마가 되고싶지 않으려 그렇게 열심히 달렸던 마더는 이제 살인자의 살인자 엄마가 됐다. 마더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 때묻은 희망으로 남긴 했지만 그것은 마더가 찾던 구원이 아니다. 고물상에 불을 지르고, 그 누구도 속사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마더는 산을 오르고 들판을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형사가 찾아와 말한다. 진범이 잡혔으니 도준이 풀려날거라고. 마더는 구치소에서 아들을 위해 희생된 또 다른 아들을 만난다.




"너...부모님은 계시니?"


영화 [마더] 中




죄책감, 허무, 분노, 두려움, 후회. 다 적지도 못할 것들에 휩싸인 마더는 잠시 마을을 떠나려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마더에게, 도준이 불에 반쯤 타버린 침통을 건넨다.




"저기 그.. 고물상 불난 데 갔다가.. 이거 주웠는데...


이거... 아이, 이런거 막 흘리고 다니면 어떡해."



영화 [마더] 中




마더의 머릿속엔 온갖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들을 위해 달린 길, 숨죽이던 잠입수사의 순간, 내리는지도 모르며 맞았던 비, 증거인멸, 살인, 방화, 아들 대신 감옥에 있을 죄없는 아이, 갈대밭. 마더는 더이상 아들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 채 버스로 향한다. 아들이 부르는 소리에도 차마 뒤돌아 볼 수 없다. 버스는 달린다. 승객들은 마더의 속도 모르고 흥겨운 음악에 몸을 맡긴다. 버스도 같이 흔들리는 듯 느껴진다. 마더는 침통을 꺼낸다. 노인에게 권했던, 마음이 편해지는 혈자리. 마더가 몸을 일으켜 무아지경의 댄스 파티에 동참한다.



차창을 향해 쏟아지는 노을빛. 마더가 춤을 춘다. 세상, 한 많은 세상, 고달픈 세상. 다 털어버리고 훨훨, 춤을 춘다



 <기생충> 이전까지, 내 머릿속에 봉준호는 <괴물>의 감독으로 남아 있었다. <옥자>와 <설국열차> 모두 재밌게 봤지만, 그래도 <괴물>이 내게 줬던 충격을 이기진 못했다. 운 좋게도 기생충 개봉 당시 무대인사를 갈 기회가 생겨 갔었는데, 영화관에서 박수가 터진 건 태어나서 처음 봤다. 무대인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영화에 대한 감탄의 의미였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에게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봉준호의 세계에 이미 빠져있던 나는 <마더> 이후 수면 위가 그립지 않을 깊은 잠수를 했다.


 <마더> 역시 다른 영화들처럼, 완벽한 날에 완벽한 마음으로 보고싶어 고이 모셔두기만한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명작(이라 평가받는 영화)들을 나는 항상 신줏단지 모시듯 아끼기만 했다. 관람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영화를 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건조대에서 다 마른 수건을 가져와 개며 <마더>를 틀었다.



 제목을 통한 해석. 하나뿐인 아들 도준을 향한 마더의 모성애는 끔찍하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영화 중반즈음에, 마더가 이전에 도준과 동반자살을 하려 했었음이 드러난다. 도준이 정신적 문제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마더가 가진 죄책감과 책임감은 마더 자신의 인생보다도 훨씬 막중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아들이 살인자라는 사실에 곧바로 수긍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평범한 아들도 아니고, 동네 바보 소리를 듣고 다니는 도준이다. 마더의 모성애는 자신의 아들을 향한 세상의 선입견과 오해를 향한 분노로 변한다. 모성애의 탈을 쓴 분노는 모성애의 이름으로 정당화라는 칼을 휘두른다. 피해자의 유족에게 찾아가, 내 아들을 미워하지 말라는 소리를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소금을 맞을 것 같으니 먼저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아들의 결백이라는 마더의 소원을 듣기라도 한 듯, 영화는 마더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들과 친한 동네 양아치 진태. 마더의 의심은 숨쉬듯 자연스럽다. 그것이 립스틱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진태의 골프채에 있던 새빨간 자국은 마더의 결승선이었다.


 진태는 오해에 대한 사과를 양 손 두둑히 챙기자 마더를 돕기 시작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그런거다. 도진의 결백만 보고싶은 마더의 눈에 문아정의 그렇고 그런 사연들은 안타까운 일보다 반가운 일이다. 피해자는 수십명의 사회적 위치를 담보로 잡고 있었고 담보를 잡힌 수십명 모두에게 살인 동기가 있는 셈이니, 걔랑 아무런 인연도 없는 우리 아들이 그럴리가 없지, 그렇지 진태야?


 아들의 결백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던 마더가 다다른 곳은 믿기 싫은 진실이었다. 도준이 살인을 했다. 자신을 바보라고 놀린 아이에게 돌덩이를 던져 머리를 부쉈다. 시신을 옥상에 널어놓고 태연자약하게 집으로 돌아와 마더의 품에서 잠들었다.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더는 아들을 믿고 지금껏 달렸다. 마더는 살인자의 살인 은폐를 도우려던 게 아니었는데.



 마더가 고물상 주인을 찾아간 후, 그가 도준의 살인을 목격했다고 진술하며 나오던 긴장감 넘치는 음악은 마더가 그의 머리를 내려치는 순간 끝난다. 고요한 화면엔 마더와, 마더의 얼굴에 튄 핏자국이 보인다. 마더가 처절하게 외친다.



"아니야. 아니야 이 새끼야. 아냐."


영화 <마더> 중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순간 붕괴되도록, 사람은 그렇게 설계되어있다.



 봉준호가 자신의 장면 연출에 대해 크게 자랑하거나 자신있어하지 않는데, [마더]의 엔딩 장면은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끼는 장면 중 하나라고 인터뷰한 걸 봤다.



 최후의 목격자를 죽이고, 불태운 채 마더는 산으로 향한다. 갈대밭을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형사가 찾아와 말한다. 진범을 잡았다고. 교도소에 갇힌 아이는 이전에 문아정의 핸드폰에 있던 남자들 속 한 명이다. 이 아이도 정신적 문제가 있다. 도준과 다를 바 없는 아이. 마더는 묻는다.



"너... 부모님은 계시니?"


영화 [마더] 中




 마더는 인정해야 한다. 자기 아들 하나 살려보겠다고 또다른 아들을 대신 집어넣었다는 걸. 철썩같이 믿었던 아 들이 살인자라는걸. 자신도 살인자가 되었다는걸.



 마더는 도준에게서 잠시 떠나려 한다. 도준의 사슴같은 눈망울에서, 고단함이 묻어나는 마더의 약재상에서, 아들이 풀려나서 다행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에게서 마더는 도망친다. 도망쳐야한다. 마더는 더이상 그것들을 마주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는 마더에게 도준은 불에 까맣게 탄 침통을 내밀며 말한다. 이런건 잘 챙겨야지, 하고 또 그 사슴같은 눈으로 마더를 바라본다.



너 이거 어디서 주웠어?


왜 주워온거야?


고물상이 불타버린 건 봤어?


그 안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


왜 잘 챙기라는 거야?


오래 쓰던거라서?


마지막 증거니까 잘 숨기라는 뜻은 아니지?


응?


아들?



 아마, 주마등 비슷한 것이 마더를 휘감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마더는 버스에 올라탄다. 도준의 목소리도 시선도 뒤돌린 채로. 고물상 주인에게 말했던, 마음이 편해지는 허벅지 안쪽의 혈자리. 마더는 까맣게 그을린 침통을 열어, 퍼렇게 빛나는 장침 하나를 찔러 넣는다. 마더의 표정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흔들리는 관광버스에서, 신나는 노래에 몸을 맡긴 채, 석양빛을 받으며 마더는 춤을 춘다. 


 같이 춤을 추는 마더들에게 마더가 묻는다. 그대들, 어디까지 사랑하고 어디까지 희생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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