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에서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절기
1년 내내 얼죽아, 뜨거운 물 샤워를 고집하는 내게도 1년에 몇 번 안 되게 찬 물로 샤워를 하게 만드는 날이 있다. 하루 중 낮이 가장 길다는 여름의 하루, 하지다.
밖에 나가 있으면 가만히만 있어도 땀에 절여지는 고온다습한 날씨. 내리쬐는 햇살은 그간의 내 죄를 벌함과 동시에 나의 불온함을 사하여 주겠다는 듯 강렬하게 온 몸을 강타 해온다. 이런 날에는 비밀의 정원에서 산 아침 하늘빛의 민트향의 샴푸로 온 몸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싶어진다.
여름의 기운은 그렇게 받아내고 또 씻어내는 것으로 채워진다.
아침 하늘빛의 민트향 샴푸 대신 아로마티카의 아미노 샴푸와 카마 샤워젤로 샤워를 끝내고 선풍기 앞에 앉아 몸을 말리며 스킨케어를 하면서 다시 느낀다. 아, 여름이구나. 화장솜에 토너를 묻혀 울긋불긋해진 피부결을 닦아내고 에센스, 크림을 발라 마무리 한다. 새로 산 헤어 에센스는 머리를 빨리 마르게 해준다고 했으니 선풍기를 틀어도 좀 덥지만 뜨거운 드라이 바람으로 머리를 말려본다.
마지막. 뒷편 테이블에 올려둔 아이스 얼그레이를 한모금 들이킨다. 베르가못 향기와 홍차 특유의 쓴맛이 입안을 맴돌다 얼음의 차가움이 마지막을 눌러준다. 아, 여름이구나. 아이스 얼그레이 티가 이렇게나 맛있는 걸 보니 정말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구나.
장미는 한창 더울 때 화려하게 꽃을 피운 뒤 꽃잎을 떨구니, 이 절정인 여름도 곧 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