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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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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 Nov 18. 2020

엄마, 나 오늘 너무 행복해

하루하루 나를 갈아 넣어 살고 있다..

엊그제는 유치원 운영위원회를 하는 날이었다. 오전 시간에 잡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반차를 냈더니, 아침시간이 무척 여유로워졌다.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시간 여유가 된다면 수학 문제집을 풀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시간에 쫓기듯 나가던 일상이 아니라, 여유롭게 그 날의 문제집도 다 풀고도 시간이 남아 아이가 전날 만든 기차 레일 시연까지 박수를 치며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잡고 유치원에 함께 걸어갔다.


단지 내 있는 유치원까지는 걸어서 10분 안쪽이지만, 평소에는 출근을 해야 하기에 차로 등원을 했다. 그래서일까 함께 걸어가며 아이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유치원 근처에 있는 놀이터 옆을 지날 때, 아이가 불쑥 할머니와 등원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전에 엄마 미국 갔을 때, 그때 서울 할머니랑 있었잖아. 할머니랑 7시부터 그네 타고 유치원 갔어."


"7시? 그네 많이 탔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 9시쯤 나와서 많이 탔었니?"


"응, 9시였던 거 같아요. 엄청 재미있었어."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반짝거려서, 나도 모르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망아지, 엄마랑도 그네 타고 유치원 갈까?"


"네!!!!!"


아이는 가방을 내게 넘겨주고 신이 나서 그네로 달려갔다. 


"나 이제 혼자서도 그네 탈 수 있어요!"


혼자서 그네를 타면서 연신 까르르 웃음을 흩뿌리는 아이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네가 높이 올라가자 아이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나 이제 형아라 높이 올라가도 하나도 안 무서워!!"


함께 그네를 타고 논 시간은 길게 잡아도 10분 안쪽.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평소의 바쁜 출근길에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시간임을 나도, 아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네에서 내려오다 만난 친구와 신나게 유치원으로 먼저 뛰어갔던 아이는, 뒤따라 유치원에 도착한 내게  달려와 꼭 매달렸다. 그리고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엄마, 나 오늘 너무 행복해."


"우리 망아지 오늘 행복했어?"


"응, 나 내일도 이렇게 행복하고 싶어."


아이의 눈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다음에 엄마 출근 늦게 할 수 있는 날, 또 그네 타고 등원하자."


거짓으로 약속할 수 없는 나는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미래의, 그렇지만 그 날이 오면 꼭 지킬 약속을 하고 아이를 들여보냈다. 웃으며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엄마와 함께 손 잡고 유치원에 걸어가고, 그네 10분 타고 등원하는 것.

이 사소한 것을 해줄 수 없다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가 조금씩 늦게 자기 시작하면서 기상시간이 늦어졌다. 매일 아침 5분, 10분씩 함께 한글 공부하고, 수학 문제집을 풀던 시간들이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시간은 부족했다. 퇴근 후 아이를 만나도 이상하게 점점 시간은 부족해져 갔다. 몇 가지 되지도 않는 공부도 늘 밀리고, 노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가끔은 너무 늦고 힘이 들어 책 조차 읽어주지 못하고 재우는 날들이 늘어났다. 크지 않은 시술을 거듭 받으며 내 몸이 약해져서 더 힘들고 지치는 것일까...


코로나 덕분에 회사는 작년보다 한결 덜 바쁘다. 그런데도 난 왜 이리 더 힘이 든 걸까. 

워킹맘들은 다 이렇게 사는 것일까. 전업맘들은 어떤 마음으로 집에 있는 것일까. 

나의 커리어도, 나의 경제력도, 해외여행도, 아이의 교육과 육아도, 그 무엇 하나 포기가 되지 않아서일까..

다른 이들은 몇 가지는 포기하고 살고 있는 걸까...

하루하루 나를 갈아 넣어 아이를 키우고, 일하고,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다.

비우고, 선택하고, 내려놓고, 줄이고, 쉬어야 할 때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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