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엄마의 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이 Aug 21. 2020

눈물의 페이스톡

코로나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가 또다시 확산되고 있다.

그래도 그냥 마스크만 잘 쓰고 다니면,  외출하지 않고 조심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매일 지하철을 왕복 2시간 넘게 타고 출퇴근하는 남편에게만 오자마자 씻으라고, 조심하라고 당부했지, 나와 조금은 먼 일로 느껴졌었다. 자차로 다니는 나나, 아이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놀러 다니지 않고, 주말에 그저 집에만 콕 박혀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네? 뭐라고요? 누가요? 그래서요? 보건소 가신 거예요? 검사하신 거예요?"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에 온라인 교육이 있어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통화하고 있던 옆 직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격양된 목소리로 통화하던 직원은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슨 일 있어요?"


".... oo 씨 자녀가 코로나 확진이래...."


내 질문에 직원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대답했다.

코로나 확진. 어제도 만나 인사를 나눈 직원의 자녀가 확진이란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내가 어제 그 분과 어떤 대화를 했더라. 그분이 우리 사무실에 얼마나 머물렀더라...


"나 출근하자마자 oo 씨가 아까 사무실 들어오셨을 때, 마스크 안 쓰고 대화 한참 했어. 어떡하죠.. 우리 엄마 코로나 걸리면 안 되는데..."


기저질환이 있으신 노모가 있는 옆 직원의 멘탈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분과 오전 내내 대화하며 한 사무실에서 함께 일했던 내 멘탈 역시 부서져버렸다. 전날 몸이 좋지 않아서 아이에게 엄마의 비타민이니 힘이 나도록 안아달라고 이야기했었다. 잠복기인 그 분과 만났기에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왜 그날따라 아이를 안고 업고 한 걸까.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이후는 계속 정신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혹시 모른다며 역학조사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다른 부서의 요청에 자료를 만들고, 밀려오는 전화를 받고, 혼란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우리 오늘 집에 가도 되는 걸까?"


한 직원의 말에 다들 말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집에 있는 아이, 부모, 배우자... 모두 가족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아이가 떠올랐다.


"내일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도 될까요?"


내 말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대답.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내일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출근을 한다. 직원에게 확진이라고 연락이 온다. 그럼 나도 검사 대상이 된다. 그런데 나도 확진이다. 아이도 검사 대상이 되고, 유치원에도 이 사실이 알려진다. 그럼 직원의 가족이 확진인 걸 알면서도 내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는 사실도 알려지겠지. 그럼 상황 종료 후, 유치원에 아이를 계속 보낼 수 있을까? 이 동네에서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을까?


최근 자녀와 접촉하지 않았다는 직원. 이성적으로는 그분이 걸렸을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0.1%의 가능성이라도 남아있다면 무시할 수 없는 서글픈 현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우리 회사 직원의 자녀분이 코로나 확진이래. 내일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쉴 수 있을까?"


남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야근을 해야 하며,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한단다. 다음 주는 쉴 수 있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다음 주는 나도 괜찮아.


암울하고 암담해졌다.


확진자의 가족과 접촉한 나.

그래서 확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나.

그런 나와 접촉한 내 아이.

이 아이를 어디에 맡길 수 있겠는가..


아무리 고민을 거듭해도, 결국 나밖에 없었다.

바쁜 일은 전혀 없지만 모두가 충격으로, 그리고 수습으로 정신없을 게 뻔한 날이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저주저하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가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아이 옆에 있어도 괜찮겠냐고 걱정해주시는 상사에게 아이는 거실에, 나는 방에 격리해있을 거라고, 결과가 나오면 연락을 주십사 부탁드렸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아이랑 잘 떨어져서 있으라고 허락해주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




퇴근 후, 비닐장갑을 끼고 현관문 손잡이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소독제를 뿌리며 집에 들어왔다. 바로 씻고, 모든 옷을 세탁기에 넣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안방에 격리했다.


"엄마가 오늘 많이 아파서 방에서 좀 쉴게."


엄마가 늦는다는 핑계로 이모네 맡겨두었다가 아빠가 픽업해온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며 달려왔다. 침대에 누워 아이를 방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더니 아이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문을 닫았다.

거실에서는 징징대던 아이가 아빠에게 혼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날은 좀 야단치지 말고 좀 다독여주지..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아이에게 페이스톡이 왔다.


"엄마 보고 싶어.. 엉엉..."


"엄마가 오늘도 머리가 아프네. 옮으면 안 되니까 거실에서 아빠랑 자."


훌쩍이는 아이를 달래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니 진이 쭉 빠졌다. 그 후로도 아이의 페이스톡은 서너 번쯤 더 반복되어서, 달래다 지친 나는 내일 음성 판정 연락받고 나면 저 휴대폰의 카톡을 지워버리리라 다짐하며 아이를 달래고 또 달랬다.


원래도 엄마 껌딱지인 아이이지만, 이렇게까지 훌쩍이는 건 또 오랜만이라 심란했다. 괜히 걱정이 커져 코로나로 입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까지 검색했다. 휴대폰을 가지고 갈 수 있으니, 거기서도 페이스톡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코 앞에 다가왔다. 정말 현실이구나


새벽 두 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안방 문을 열고 나와보니 나의 두 남자가 거실 매트 위에서 꼭 안고 자고 있었다. 내가 아프면 이 둘은 어쩌지?




뒤척이다 늦게 잠이 들었는데, 역시나 딴따다따딴따 따다단 따 단~♬ 익숙한 음악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이가 웃는다.


"나 안방 가려다가 아빠한테 혼났어. 엄마 아직 아파?"


"응, 그래서 유치원도 못 데려다주겠네. 엄마랑 쉬자."


"와~ 엄마 회사 안 가? 우와!!"


엄마랑 쉰다는 말에 아이는 환호했다. 아빠가 틀어준 뉴스를 보면서 확진자의 수가 나올 때마다 안방 문을 열고 내게 현황을 보고했다. 그러다가 지쳐서 다시 페이스톡을 해서 울먹였다.


"엄마가 안 놀아줘서 너무너무 심심해. 나 유치원 갈래요."


아.. 정말 눈물의 페이스톡. 애증이다. 정말 카카오톡을 지워버릴 테다.


서로 힘들고, 서로 슬프고, 서로 지치는 시간이 지나고 열 시가 좀 넘어서일까.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oo 씨와 다른 가족들 모두 음성이시래요. 아이랑 잘 쉬고 내일 봐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아닐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0.01%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상황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나로 인해 나의 회사가, 나의 가족이 구설수에 오르고, 나의 남편이 회사에서, 나의 아이가 유치원에서 꼬리표를 달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가 정말 코 앞이다.

매일 회사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나와 남편. 그리고 그런 부모 때문에 유치원에 가야만 하는 아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접한 부모를 매일 만나는 아이. 참으로 위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집, 회사, 유치원. 2주간 우리 가족의 동선은 이게 전부이다. 혹시 내가 확진되면, 사람들이 동선이 이거밖에 없냐고 좀 불쌍하게 생각해주지 않을까? 할 정도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조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코로나의 공포를 겪었다.


언제쯤 이 사태가 끝이 날까. 언제쯤 마스크 없는 세상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심란하다.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내내 끼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또 현실이다.

직원분은 자가격리되셨다. 그리고 이 분이 다시 출근하시게 될 2주 후까지 나와 동료들은 내색하지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 남은 코로나의 공포에 시달릴 것이다.


엄마와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마주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울면서 페이스톡을 거는 아이를 두고, 입원을 하게 되면.. 그때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무섭고도 또 무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