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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기 Aug 12. 2021

스팸메일을 지워서 환경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불편하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나

최근 발표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1)에서는 기후위기가 심각하고, 당장 20년 안에 원래 예상보다 더 심각한 기후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상 기온, 이상 강우, 이상 건조 등 기후 위기 시대의 여러 모습을 직접 겪는 일이 많아지면서 기후 위기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일상 속 다양한 실천 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 플로깅, 소비 지양, 비거니즘 실천, 탈-플라스틱, 포장 간소화, 스팸메일 지우기 등등. 대부분 우리가 입고, 먹고, 사는 방식을 바꾸는 것과 관련이 있고 실체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팸메일을 지우는 것처럼 물건이 아닌 사용하는 데이터를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https://news.v.daum.net/v/20210706155435731 (뉴시스, 2021. 07. 06. 링크 확인: 2021. 08. 11.)

(이처럼 스팸메일을 지워서 "지구를 구하자"는 캠페인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2021년 8월 4일에는 부천시에서도 비슷한 운동을 했다.)


스팸메일이나 불필요한 이메일을 지우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주기적으로 나오는 얘기이다. 이런 말이 언제 처음 나왔나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2009년쯤에 처음 보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자신문의 2009년 4월 17일 기사 “스팸메일 막으면 환경이 산다”2)에 따르면 국제정보화 평가기관 Intelligent Community Forum(ICF)이 스팸 메일의 탄소발자국 조사를 수행하여 스팸메일로 인해 생기는 전력 사용량, 탄소 발자국을 계산하여 스팸메일로 인해 생기는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0년대 중후반 즈음부터 소비자가 접하는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려는 논의가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일환으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2007년 과학동아 잡지에서 탄소발자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고, 종이컵의 무게는 5g인데 탄소발자국은 11g이라는 얘기를 본 기억이 있다.)


불필요한 스팸메일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원리는 비교적 자명하다. 불필요한 이메일 때문에 보관해야 하는 데이터가 늘어나게 되고, 자연히 24시간 끊김없이 가동되는 데이터 센터의 증설로 이어져 전력 사용이 늘어나게 된다. 또한 데이터 센터의 경우 대부분 열이 많이 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연으로 열을 방출해서 온도를 상승시키고, 데이터 센터 내부를 식히기 위해 냉방을 하게 되며 건물 밖으로 더 많은 열을 방출하며 악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2009년이라는 시기와 ‘불필요한 스팸메일’이라는 말에 주목해본다.


애플의 아이폰은 2007년에 공개되었고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것은 2009년 11월이다. 그 이전에도 아이팟 터치를 비롯한 다양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모바일에서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리 활성화된 때는 아니어서, 한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스마트 기기가 아니라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사용하던 대부분의 휴대폰으로는 셀룰러 데이터 송수신을 활발히 하지 않았고, 대부분 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정도로만 휴대폰이 사용되었다. 당시의 문자메시지는 40자 제한이 있었는데, 이 용량은 고작 80바이트였다. (요즘 사진 한 장을 찍어 보낼 때 3MB 정도 용량이 든다고 하면 거의 4만배 차이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낸다고 해도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의 성능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도 대부분 텍스트 기반이었기 때문에 큰 용량의 데이터 이동이 필요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휴대폰으로 사용하는 셀룰러 데이터 요금이 매우 비쌌다.

컴퓨터를 이용한 환경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싸이월드에 이미지를 업로드할 때는 가로 400픽셀로 리사이징되어 업로드되었고, 당시 사용하던 블로그에서도 가로 800픽셀 이내로 사진 크기를 줄여서 업로드하도록 했었다. 2006년에 만들어진 트위터는 텍스트 기반의 소셜 미디어였고, 페이스북과 유튜브도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형태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이메일의 경우 지금이야 수~수십GB의 용량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2-3GB도 많다고 여겨졌었다. 이처럼 큰 용량의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주고 받는 것이 일상 깊숙히 있지 않았다.


‘불필요한 스팸메일’은 말 그대로 필요하지 않은 존재이다.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어 받고 싶지도, 저장하고 싶지도 않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지만 끊임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판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지금 스팸메일을 보면 대부분 텍스트로 글을 써둔 것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이메일 시스템이 알아서 스팸메일 분류를 해주고, 이미지는 자동으로 차단해주는 기능이 있어 글로 승부하는 것 같다.) 이렇게 글자로만 이루어진 메일의 경우 영문 1만자의 글이 써있을 때 단순하게 계산하면 고작 10킬로바이트 밖에 되지 않는다.




개인이 스팸메일과 안 쓰는 메일을 지워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자는 말은 2009년에는 유효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유효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부정하지는 않겠다. 여전히 아예 의미없는 일은 아닐테지만, 2021년에는 거의 효과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의 우리는 매일 숨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주고 받고 있고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에 데이터가 필요한데, 스팸메일이 차지하는 양이 상당한 의미가 있을까.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친구와 사진을 주고 받고, 소셜 미디어에 일상의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마찬가지로 친구들이 올린 사진과 영상을 본다. 이동하면서 심심하지 않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넷플릭스 영상을 스트리밍 또는 다운로드 받아서 보고, 애플 뮤직이나 스포티파이를 통해 음악을 스트리밍해서 듣거나 팟빵이나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팟캐스트를 듣는다. 이메일을 통해 다양한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사람들과 영상통화나 라이브 방송을 하고, 사진과 파일은 클라우드에 저장을 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불러온다.


2009년과 비교하면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스마트폰의 존재부터 기가 인터넷과 5G로 대표되는 갈수록 빨라지는 인터넷 속도는 기본이다. 빠른 속도 덕분에 같은 시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도 늘어났다. 기술의 발달로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메모리가 발달하여 초고화질의 사진과 영상을 주고받고 보는 것이 너무 당연해졌고, 소셜 미디어로 전화번호를 모르는 사람이나 유명인들과도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어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재생 순위를 올리기 위해 스트리밍을 계속 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에 비하면 이메일은 귀여운 수준이다. 2021년에는 불필요한 메일을 지우는 운동보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이나 유튜브에 vlog를 하나라도 덜 올리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메일을 지우는 운동이 필요하다면 오히려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에 게시물을 올리지 않는 운동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맞게 카드뉴스 형태의 게시물도 늘어나고 있는데, 문자로 전달가능한 내용을 이미지 형태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 큰 용량을 차지한다. 또한 한국의 많은 정부기관 웹 페이지는 꾸밈에 더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데 이는 데이터 사용량도 늘리고 웹 접근성마저 떨어뜨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으며, 영국의 정부, 공공기관의 경우 웹 접근성을 위해서 텍스트 위주의 웹페이지를 만든다. 3))




스팸메일을 지우자는 얘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스팸메일을 대부분 싫어하고 그 어떤 개인이나 기업의 반발을 받을 일도 없는데 환경까지 생각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거기서 한발짝 나아가서 불필요한 메일을 지우자고 해도 아주 큰 반발이 생기진 않는다. 구독해두고 읽지 않는 뉴스레터나 받고 싶지 않은 뉴스레터들이 많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해서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 사용을 줄이자고 하면 사람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환경을 위해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이라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을테고, 기업들은 규제에 대한 반발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늘어나는 데이터 사용량에 맞춰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 소비 효율 역시 증가되며 개선되어 왔다.


Media headlines claim that CO2 emissions from 30 minutes of Netflix is the same as driving almost four miles
(넷플릭스를 30분 동안 시청하는 것은
자동차로 6.4km 정도를 운행하는 것과 같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인다)

Another claim estimates that watching a YouTube video uses over 1600W of electricity, equivalent to the consumption of 15 big screen TVs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1600W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15개의 큰 화면 TV가 소비하는 전력과 맞먹는다)

4) 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2020. 12. 11. 2)



유튜브는 2020년 3월 동영상 재생 기본 화질을 낮추는 조치를 시행했다.5)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에서 락다운이 이어졌고, 이 때문에 유튜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에 대비해 대역폭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비롯한 영상 서비스로 인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6)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하며 데이터를 마음껏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요금제를 폐지하고 환경 부담금 개념의 데이터 종량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이 순순히 따를 수 있을까? 유튜브에서 영상을 시청할 때 720p를 넘어 1080p, 4K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환경 부담금을 부과한다고 하면 순순히 낼 수 있을까?

내연기관 자동차처럼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배출가스에 대한 규제는 비교적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우리 주변에서 직접 보고 느끼기 힘든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후순위에 있고 당장의 불편함과 비용에 대한 반발이 훨씬 클 것이다.






그동안 신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으며 규제를 뒤로 미뤄왔다. 하지만 지금 개선된 것은 없고 더 심각해지기만 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기술이라는 것은 없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한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여전히 그 누구도 편리한 삶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2010년대 초반에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일정 이상의 데이터를 사용하면 인터넷이 30분-1시간 동안 차단되는 기숙사에서 거주했다. 한국의 학교 기숙사에서는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고, 나는 P2P로 이뤄지는 파일 공유 서비스 같은 것을 사용하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이나 도심 바깥 지역 어디를 가도 빠른 인터넷을 쓸 수 있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속도가 느리거나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곳도 많았다. 이렇게 데이터 사용 속도나 양이 제한되면 자연히 데이터 사용량이 줄어들 수 있을테지만, 우리는 이런 환경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꼭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스팸메일을 지웠다고 환경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충분하지 않다. 물론 스팸메일과 불필요한 메일을 지우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더 불편해질 준비가 되었나. 2021년에도 스팸메일을 지우는 것만으로 환경을 말하는 건 너무 게으르고 불충분하다. 우리는 그 이상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기업들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해야 하고 우리의 삶이 불편해지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p.s. 특히 앞부분에서 언급한 스팸메일 지우기 캠페인 같은 거 하는 지자체 분들... 사진 찍고 보도자료 내려고 쓸데없는 패널(쓰레기) 만들지 말고 더 근본적인 걸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 아님) 님들은 개인 시민이 할 수 있는 영역 이상의 능력과 권한과 책임을 가지셨답니다? 혹시 까먹으셨을까봐 말씀드려요.


* 이 글은 무조건 데이터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당장 나도 스스로 소셜 미디어나 넷플릭스 사용을 줄일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사용하는 데이터가 영향을 끼친다는 걸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동차처럼 데이터 사용보다 환경에 더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팸메일을 지운 것으로 환경 얘기를 할 거라면 우리가 사용하는 데이터와 그 이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IEA의 자료(링크4)에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는 데이터 너머의 이야기도 있다. (더 작은 화면의 기기를 사용하자, 한 기기를 오래 사용해서 기기를 교체하는 빈도를 줄이자 등)




1) IPCC - Sixth Assessment Report

https://www.ipcc.ch/assessment-report/ar6/


2) 스팸메일 막으면 환경이 산다
(전자신문, 2009. 04. 17. 링크 확인: 2021. 08. 11.)
 https://www.etnews.com/200904160115


3) 간단한 HTML의 예상치 못 한 효과
(2021. 02. 11. 링크 확인: 2021. 08. 11.)

영국의 정부와 공공기관 웹 페이지의 간결함과 웹 접근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https://news.hada.io/topic?id=3724



4) The carbon footprint of streaming video: fact-checking the headlines
(International Energy Agency, 2020. 12. 11. 링크 확인: 2021. 08. 11.)

 https://www.iea.org/commentaries/the-carbon-footprint-of-streaming-video-fact-checking-the-headlines


5) YouTube to reduce video quality worldwide to ease strain on internet networks
(CNN, 2020. 03. 24. 링크 확인: 2021. 08. 11.)
 https://edition.cnn.com/2020/03/24/tech/youtube-video-quality-coronavirus/index.html


6) 유튜브 보면 환경오염 된다?…영상 재생의 '숨겨진 비밀'
(SBS 뉴스, 2020. 01. 20. 링크 확인: 2021. 08. 11.)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11545



참고:

한통에 이산화탄소 4g? 이메일도 기후위기 원인인가
(한겨레 2020. 11. 24. 링크 확인: 2021. 08. 11.)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712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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