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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Nov 20. 2023

치킨 다리 두 개

두 번째 만나는 날이었다.

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시작된 것은 맞았다. 만나보고 아니면 깔끔하게 끝이라며 가벼운 마음을 먹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자꾸 무거워졌다.


"제가 역으로 마중 나갈게요."


장거리가 아닌 것처럼 한걸음에 달려오는 모습에 마중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놀이공원을 자주 언급한다며 이번 약속은 놀이공원에 가자고 말했다.


"놀이공원 좋아하는 거 맞죠?"


재차 확인까지 하는 그에게 맞다며 좋다고 했다.


장소가 주는 분위기가 있다. 꿈과 희망이 넘칠 것 같고 설렘과 사랑이 피어날 것 같은 분위기.


그는 사진을 잘 남겼다. 예쁜 풍경을 찍다가도 우리 사진 찍을까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하는 모습. 사진 한 장 남기지 않는 나와는 달랐다. 사진 속 우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동화 같은 풍경 속에서.


들어가자마자 귀신의 집이 가장 가깝게 있다는 이유로 줄을 섰지만 썩 내키는 제안은 아니었다. 무서운 것을 싫어하는 나는 공포 영화며 이야기조차 듣지 않는데, 귀신의 집은 다만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 그에게 의지하면 빨리 지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들어가자마자 덥석 팔을 붙잡았다. 매달리다시피 팔에 붙어서 괴성을 질렀다. 빨리 가자며 재촉하고 놀랄 때마다 비명은 자동으로 나왔다. 이 날 앙고라 니트를 입은 나는 그의 오른쪽 팔을 보고 경악했다.


"어떡해요..? 옷에 털이 다 붙어서..."

"아,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버리고 주위를 구경했다. 돌아가서 꼭 돌돌이로 털을 떼어내라며 당부하고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긴 줄 뒤에 줄을 서며 그는 오래 기다리는 거 괜찮냐고 내게 물었다. 기다리는 건 싫었지만 같이 기다리면서 구경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괜찮았다.

"괜찮아요."


츄러스를 사러 뛰어갔다 오는 모습, 다 먹고 쓰레기 이리 달라며 기다렸다가 손에 쥐고 버리고 오는 그.

작은 행동 하나에 배려가 묻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때 놀이공원을 다녀오고 나서 치킨집에 들어가 치킨을 먹었거든. 난 다리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분은 날개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어. 그러면서 나한테 다리를 두 개 다 주더라. 하나씩 먹자고 했더니 자기가 날개 두 개를 다 먹겠다면서 기어코 두 개 다 내 접시 위에 올려줬어. 그게 왜 이렇게 인상 깊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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