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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맑을영 Nov 23. 2020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하루에도 몇십 번, 몇백 번이고 길을 잃는 당신에게

  

  유독 어떤 하루가 괜히 엉망진창으로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리고 가끔, 그런 기분이 며칠 혹은 몇 주씩 끈질기게 따라오기도 한다. 나의 인생이 엉켜버린 실처럼 느껴지는 기분. 그 구덩이로 빠지는 순간 한층 더 깊어진 우울감과 무력감이 나를 감싼다. 그리고, 곧 나를 탓한다. 그러다가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겠지. 더 이상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 행동마저 또 다른 막다른 길로 이끄는 상황. 그런 순간에 들으면 괜스레 마음이 편해지는 노래가 있다.




  Unlucky / 아이유



하루 정도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전히 무수한 빈칸들이 있지
끝없이 헤멜 듯해
풀리지 않는 얄미운 숙제들 사이로 마치 하루하루가 잘 짜여진 장난 같아
달릴수록 내게서 달아나
길을 잃어도 계속 또각또각 또 가볍게 걸어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빈칸. 이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이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우리는 항상 빈칸으로 비워져있는 하루하루를 채워 나간다. 그렇게 나를 채워가다 보면 누군가 내 정답지를 가로채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우리는 시험지를 돌려받곤 틀렸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왜 틀렸지?” “정답이 뭘까?” 내가 아닌 타인이 매긴 그 점수를 나의 점수인 양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빈칸을 채워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길을 찾으려 노력해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다. Unlucky는 그런 우리에게 정반대의 답을 알려준다. 하루 정도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길을 잃었다면 마음껏 헤매보자는 그녀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닿아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 / 박소은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 바닥에 별들이 기어다니잖니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 천장에 파도가 일렁거리잖니
생각해봐 복잡하게 말고 말야 단순하게
얼마 안 가 우린 죽을 거야 더럽게 누울 거야
여길 좀 봐 시간은 쉬는 법을 모르고 뛰잖니
눈을 맞춰 술잔을 비워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순간을 채워 아무런 상처도 내고 싶지 않아


  나를 가두는 생각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아무렇지 않게 나를 꺼내주는 노래다.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는 한순간에 내가 업고 있던 큰 돌덩이 같은 고민들을 아주 작은 돌멩이로 만들어버린다. 누군가의 큰 고민과 걱정,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주는 묘한 힘이 있다. 그 흔한 “괜찮다”, “너는 잘하고 있다”와 같은 위로의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때로는 그런 예쁜 말보다 투박하지만 담백하게 다가오는 말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기도 하니까.




유예 / 9와 숫자들



작은 조약돌이 되고 말았네
잔물결에도 휩쓸리는
험한 산중 바위들처럼
굳세게 살고 싶었는데
작은 종달새가 되고 말았네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빛을 잃은 나의 공책 위에는
찢기고 구겨진 흔적뿐
몇 장이 남았는지 몰라
무얼 더 그릴 수 있을지도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중
하나의 색만이 허락된다면
모두 검게 칠해버릴거야


  내가 생각보다 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상처받고 아파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순간은 꽤 많이 찾아오고 그래서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그 사실을 회피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나를 부정했을 때 우리는 더 큰 절망에 빠진다. 그래서 이 노래는 그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담담히 읊는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아주 조그만 힘을 선물해 준다. “앞으로 더 잘해 나갈 수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노래로 다가왔다. 내가 나일 때 충분할 수 있다는 것. 그 메시지 하나 만으로도 괜찮은 위로가 될 수 있다.   




매번 길을 잃어도 괜찮을 수 있는 당신이 되는데 이 노래들이 조금의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21 정세영
원문 링크 :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50883#link_guide_netfu_64709_77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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