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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Aug 04. 2020

교육과 사회

디태치먼트를 보면서 생각하는 교육사회학

   최근 읽은 교육사회학 책에서 저자는 글로벌화와 민족국가의 자율성이 부딪히는 상황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재창조될 것인가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국가 간 장벽이 허물어졌지만 국가의 주권, 국가권력, 영토권 등은 더 복잡한 관계에서 놓이게 된다는 관점을 지지하면서 교육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고 말한다. 먼저 국가가 사용하는 출구전략과 적응전략이라는 개념적 정의를 통해 글로벌 영역을 이용해 국내적 제약을 극복하거나 국가가 글로벌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대학 및 학교의 역할도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변화의 움직임에는 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국가마다 자본주의가 제기하는 전형적인 문제들에 대해 서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신자유주의 국가들은 교육이 경제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관점, 국가가 고용가능성을 갖출 기회를 제공한다는 관점, 고용가능성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관점에서 반응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적합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취업기회는 언제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개인과 가정에 제공되던 복지를 축소했고, 따라서 교육을 우선시하는 듯 보이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불확실성에서 노동자는 보호되지 않는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자들은 글로벌화로 인해 기술과 소비자의 취향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국가가 더 이상 완전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교육은 잠재적인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실직이나 가난의 확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사회적 보호에 대한 국가적 책임이 줄어든다.

   그러나 글로벌화에 따라 고숙련 일자리는 한 국가 내에 머무르지 않고, 컴퓨터가 대신하는 일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가 내의 평등과 사회적 자본이 뒷받침되는 경우에 학업성취가 높아지는 것을 고려해볼 때 교육이 가난을 퇴치할 수 있는지는 가난이 교육적 성공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중요한 문제는 개인과 그들의 가치관 및 인생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규율하는 문제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에서 교육이 개인이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가치관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라면 매우 어려운 제도이겠으나 교육은 부분적으로 정설에 도전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측면이 있기에 반대로 그가 기대하는 확실한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함이 근원적으로 아니다. 이것은 교육에 대한 개인의 이해와도 관련이 있다. 어쨌든 신자유주의 국가의 ‘국가학습이론’에서 교육은 국가가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지 않고, 모두가 고용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의미를 가진다.


   이런 경우 교육학자들은 상황 종속적인 기준에 문제의식을 가진다. ‘신관리주의’가 상황 종속적인 교육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학생의 시험결과로 학교 성과를 평가하고 그것이 공개되어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보낼 학교를 ‘선택’할 수 있고, 교사들의 성과에 대한 감시체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시장경쟁 논리가 학교에 적용된 것이다. 시험은 교육의 중점 사안일 수밖에 없다. 학생과 교사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감시와 통제 장치로써 위압적이고, 학생과 교사를 일렬로 줄 세움으로써 이들의 목표와 기대치를 조정한다.


   그렇다면 과연 반복되는 고부담 시험제도가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형태의 학습을 제공한다는 전제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 전제부터 지적한다. 학생들이 높은 시험성적을 얻기 위해 기계적인 암기를 수행하고, 학습에 대해 외재적인 동기를 부여받게 된다. 필요한 공부가 과중하게 주어져서 내재적인 관심과 호기심이 차지할 자리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2달에 한 번 꼴로 공부한 내용을 달달 외웠는데 대학입시 공통질문에는 학문적 호기심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를 쓰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가 암기위주 교육을 탈피하고 학생의 내재적인 학습 동기부여를 위한 환경이 갖춰진 학교를 선호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일렬로 줄 세워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자신의 목표설정과 기대치는 그 숫자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내재적인 동기부여는 끊임없이 평가와 시험에 의해 위협받는다. 대학 입시에서는 숫자로만 평가되지 않고, 정성적인 평가가 반영된 결과를 얻게 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선발, 관문, 말 그대로 ‘결과’인 것이다. 이 책에서 결론짓는 교육, 시민성, 사랑과 연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가치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도 문제없다. 할애되는 시간 또한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지식은 경쟁우위와 이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흘러가고, 지식이 ‘자아성찰, 의무감, 개인적 헌신, 그리고 자아의 심연’ 등과 유리되는 탈인간화가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번스틴이 말한 ‘공식적’ 지식에 ‘탈인간화 원칙’을 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저자의 질문 중 ‘우리는 더 많은 젊은 이들이 더 많은 학교 교육을 받기를 원하는가?’, ‘학교나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의 특징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함께 답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반복되는 시험을 통해 실제로 배운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대학교육을 받는 우리들이 각자 생각해봐야 할 만한 것이다. 학업성취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국가학습이론처럼 사회통제에 따르면서 동시대의 세상살이에서 대두되는 주요 문제들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학력취득을 위한 순위경쟁에 집중하는 것이 자신의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볼 때 거시적 이론에서 설명되지 않는 행위자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시망 하의 교육시스템 내에서 교직전문성이 ‘최우수 사례’에 기초한 지시적 처방 시스템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점이 잘 드러난 영화 장면이 있다. 2014년 미국에서 개봉한 <디태치먼트>에 나오는 학교는 그 지역의 문제아들만 다니는 학교이다. 전문성을 지닌 교사들은 학생들에게서 무시와 인격적 모독을 경험하는 일이 빈번하다.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외부 전문가가 학교를 방문해서 교장에게 학교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말하자, 교장은 이 구역 문제아들을 모두 이 학교로 보낸 탓이라고 답했다. 그 말에 외부 전문가는 모든 아이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공평성을 말하면서 학교는 달라져야 한다는 재차 언급한다. 교장은 ‘획일화’하는 것이라고 응수했고, 상대는 다시 ‘재정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부모 방문의 날에 교실에 앉아서 기다리던 교사는 결국 한 명의 부모도 맞이하지 못했다. 이 학교의 교장은 학업성취도가 낮은 이 학교의 운영을 그만두라는 압박을 끊임없이 받는다. 그 후에 교사들을 모아 놓고, 학업성취도 평가를 올리기 위해 새로운 교육과정을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새로운 학생지도를 통해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소개된 외부 전문가는 교사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길 세상을 살아오면서 배운 한 가지는 부동산은 부를 창출한다는 것이고 좋은 학교는 부동산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학교는 성적이 계속 떨어져서 학교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기에 점수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이 지역이 살 수 있고,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모두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최우수사례’가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학교의 분위기, 학생들의 가정환경 등)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은 학생을 잘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겨우 동네 땅값 때문이라는 거냐며 반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교장은 계속해서 퇴임 경고를 받는다. 이것은 시장경쟁이 도입된 지금 뒤처진 학교가 겪는 갈등의 모습일 것이다. 이렇듯 학교와 학습이 경제적 목적만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면 교육투자의 증가는 사회문제의 집단적인 해결, 세상의 지속가능성, 자기 자신과 세계 속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이해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논의는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교육이 기회균등을 촉진시킬 수 있는지 아니면 단지 불평등을 재생산할 뿐인지.’(p.375) 개인의 비판적인 사고를 발달시키는 데에 공식교육보다 미디어, NGO, 그리고 전 지구적 사회운동이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교육사회학을 배우고 있는 것이 어떤 호기심과 열정을 깨우는지 생각해보면 교육이 지닌 함의를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에 대한 의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 때 유효한 지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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