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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인생에 서툴다

나 이거 처음 해봐!

by Kelvin

나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쓴 맛을 난 아직 맛있는지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카페인에 조금 민감한 편이기도 하다. 이걸 알게 된 계기는 Medical assistant로 일하던 때로 돌아간다. 하루 현장 일과를 마치고 카페에서 의사분의 차팅을 마무리하고 있던 때에,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


"나도 이제 좀 어른인데 카라멜 마끼아또는 졸업할 때 되지 않았나? 쓴 거 한번 마셔보자!"


이 어이없는 결심을 계기로 아아는 이미 옛날에 마셨다가 맛없던 기억이 있어 다른 종류의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적 있는 커피, 콜드브루를 처음으로 마셔봤다. 긴장을 하며 마셨던 첫 모금, 생각보다 그리 쓰지 않았다. 기대치를 낮춰서였는지 의외로 맛있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었다. 그렇게 이제 나도 쓴 커피 좀 마신다고 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건가라는 자아도취에 빠져있을 때쯤, 조금씩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른이 된 나 자신에게 신이 나서 그런 건지 착각을 하고 있을 때 손이 조금씩 떨려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카페인의 영향일 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콜드브루를 시원하게 클리어한 후, 내 심장은 어릴 적 첫사랑을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다시 만났던 그때보다 더 빨리 뛰고 있었다. 이렇게 웃픈 내 쓴 커피의 첫 경험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달달한 커피만 마시는 어린이 입맛으로 돌아갔다. 카페모카나 라떼정도면 난 충분히 맛있게 커피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어른'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나는 성숙하고 풍부한 경험을 통해 내공이 쌓여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번 달 초, 나는 만 26살이 된 나는 엄연한 성인이다. 그런데 내가 나를 어른이라고 부르기에는 여전히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지금 내 주변 또래들의 상황을 잠시 둘러보면 최근 첫 직장을 잡은 친구들,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 나처럼 직장을 다니다 대학원을 준비하는 친구들, 그리고 드물게 개인사업을 준비하는 친구들 등 다양하게 있다. 이렇게 보면 또 미래를 구체화하고 자아실현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있는 '신입어른'들 인 듯 보이기도 하다.


이런 나의 '신입어른' 친구 중 한 명이 최근 자신의 SNS에 인생 처음으로 길을 거닐다 새똥에 맞았다는 포스트를 보고 피식했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나도 예전 가족여행 때 해변가 난간에 기대 아이스크림을 먹던 도중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던 갈매기 한 마리가 내 허벅지에 새똥을 정확히 명중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이 친구의 다음 코멘트가 이 글을 쓰게 해 준 영감이 되었다.


"만 25인 나이지만 여전히 경험해 본 것보다 경험해 보지 못해 본 것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25살, 이제 26살인 우리들은 뭐 경험치가 그리 많을 나이는 아닐 수 있다. 일단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된다는 결혼과 출산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이 정도 나이쯤이면 마냥 어리숙하지는 않고 나름 후배들과 동생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나의 무의식 속의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내 친구가 얘기했던 것처럼 나 역시 아직 해본 것 들보다 안 해본 것들이 더 많다고 느낀다. 즉, 아직 내겐 처음 경험해 보는 것들이 참 많고, 많이 남아있다는 뜻일 것이다.


무언가 처음 해보면 당연히 서툴기 마련이다. 지금 내겐 인생과 사랑이 그렇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들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꾸준히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변하며 나아가지만 이게 정말 맞는 방향인 건지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건지 확답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가치관,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해야 할 일에 충실하고 그저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 자체가 정답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서툴다는 건 잘 모른다는 뜻이고 또 그 분야에 대해 잘 휘둘릴 수도 있는 연약한 상태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대학생 때까지는 이런 서툴고 연약한 모습을 서로 공유하고 보듬어주며 북돋아주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이 제 갈길 찾아 흩어지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담스러워하거나 약점을 잡히는 일이 되거나 이 모습을 갖고 놀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모두 경험해 봤고 생각보다 아픈 일이더라. 그 속에서 이 모습을 진심으로 알아봐 주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그런 인연을 찾는 것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걸 매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래서인지 직장인이 된 지금은 내 모든 것을 오픈해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딱히 없다. 사람마다 여러 페르소나가 있기에 특정 친구, 특정 집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각기 다른 일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내 모든 것을 오픈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은 현재로서는 내게는 없다. 그런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있어서 나 역시 자신의 서툴고 연약한 부분을 믿고 꺼내줄 수 있을 만큼 듬직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나를 조각할 수 있는 힘을 쭉 가져갈 수 있길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아직 내게 처음인 것들을 여럿 해보며 서툰 것들과 서툴 것들을 서툴렀던 하지만 곧 익숙할 경험들로 바꾸는 노력을 해보겠다. 그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지금 나는 처음으로 혼자 시카고로 여행길에 올라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여행 동행 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은 모르는 사람과 여행을 같이 할 예정이다. 이렇게 처음 해보는 것들이 두렵고 꺼림칙하기보다 점점 설레고 신나는 일이 될 수 있는 그때까지 여러 가지 처음을 경험해 보겠다. 그렇게 점차 사람과 사랑에 조금 더 여유롭고 능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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