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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In My Playlist

살짝 특이점이 온 영어노래 추천

음악 취향 존중 해주시죠!

by Kelvin

"넌 왜 미국 살면서 팝송을 안 듣냐?"


친구들과 음악 얘기를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실제로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팝송을 포함해 영어로만 된 노래는 전체의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3%는 모두 한국노래란 뜻이다.


미국에 산지 10년이 넘어가지만 내 모국어가 한국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뜻은 내가 아무리 영어로 소통하고 일하고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해도, 한국어만큼 편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내가 보통 노래를 듣는 순간들은 운전할 때, 집안일할 때, 종종 독립적으로 일을 할 때 이다. 이렇게 멀티태스킹을 할 때는 노래보단 동시에 하고 있는 일에 더 집중을 하고 있을 때가 많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가사에 집중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내게 편한 언어, 즉 모국어로 된 노래를 듣고 있으면 굳이 집중을 하고 있지 않아도 가사가 자연스레 귀에 꽂힌다. 하지만 내게 편하지 않은 언어로 되어있는 노래들은 내가 집중을 하고 있지 않으면 그 가사들은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일 뿐이고 멜로디만 내 귀에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팝송이나 불어로 된 노래들을 들을 때 온 집중을 다해야만 가사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전 In My Playlist 글들 중에 난 음악을 선정할 때 가사를 많이 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음악에 온 집중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난 노래를 들을 때 가사가 들리는 걸 좋아하기에 자연스레 팝송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알고리즘이란 녀석이 내가 듣는 노래들과 비슷한 것들만 추천해 주기 때문에 더더욱 팝송과는 인연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내 강건한 팝송에 대한 벽을 허물고 내 플레이리스트에 정착한 팝송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곡들은 대부분 인스타 릴스에서 유행했거나, 누군가 내게 꼭 들어보라고 추천해 줬거나, 아니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곡들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얘기할 곡 들은 그런 곡들이 아닌 한국 아티스트들이 부른 영어곡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 아티스트들이 영어로 된 곡을 불렀다는 것이 특별하기도 하고, 기분 탓 일진 모르지만 이 영어곡들은 내가 꼭 집중을 하지 않아도 여느 팝송들보다 내 귀에 더 잘 들리는 느낌이다.




1. Maze - 에픽하이


아마도 내 플리에 처음으로 입성한 한국 아티스트의 영어곡일 것이다. 이 노래를 알게 된 건 중학생 때였는데 그때 당시 나는 힙합이란 것이 미국에서 넘어온 음악문화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국내 아티스트가 영어로만 된 곡을 쓸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문화의 영향이 참 크구나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나중에 가서 타블로가 스탠퍼드 출신이란 걸 알게 됐지만.


"Love, sex, greed, addictions. What's next? Need directions.

There's nobody left to follow. Wallow in my sorrow for a hollow tomorrow."


"Too many choices, possibilities, indecision is killing me.

And if you lend a helping hand, then I will follow willingly.


"Life is like a maze, Life is like a maze,

life is just amazin' when I'm flippin' through the pages."


그때 당시에는 그냥 한국 아티스트가 영어로만 된 곡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해서 들었던 노래지만, 미국에 와 영어를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가사를 곱씹어보니 생각보다 꽤 딥한 구절들도 있고 라임이 자연스럽고 멋있게 짜여있단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영어로만 된 랩 중 내가 유일하게 실수 없이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니아 층들만 아는 노래다 보니 아쉽게도 노래방엔 수록되어 있지 않다.



2. Nearness is to love - 어반자카파


너무나도 유명한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를 타이틀 곡으로 하고 있는 'Still' 앨범의 수록곡이다. 타블로처럼 외국 대학 출신의 작곡가가 쓴 힙합/랩 곡이 아닌 국내 아티스트가 영어로만 된 발라드를 썼다는 게 놀라웠던 것 같다. 물론 이 전에도 국내 아티스트가 영어로만 된 곡들을 쓴 경우들이 많았겠지만 내게 신선한 자극을 줬던 건 바로 이 곡이다.


인트로의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후에 들어오는 밴드악기들의 조화는 노래의 시작부터 집중시키기 아주 좋은 매력인 듯싶다. 이 곡은 가사 진행이 비교적 느린 편이고 어반자카파 멤버들의 영어발음도 준수한 편이라 귀에 잘 박혔었다. 어반자카파의 노래실력은 이미 검증된 지 오래이기도 하고.


"When I'm without you

When you leave me on my own

Minutes hours turn to days

And I just don't know what to do

I'm nothing without you

Don't ever let me go

Words of fondness is to broken hearts

As nearness is to love"


이 노래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미국인 친구에게 이 가사들이 문법적으로 정확하고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는지 물어봤는데 그 친구는 그렇다고 했다. 아직 나는 저 마지막 두 줄의 가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조금 어렵다. 하지만 노래 자체가 너무 내 취향이고 좋다 보니 옥에 티를 찾기보다는 그냥 흘려들으면서 즐기는 곡이다.



3. Sipping my life - 존박


이 곡은 대학교 신입생 때 차가 없던 시절, 선배들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닐 때 한 선배분의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다. 존박이란 사람을 나는 이때 이 곡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꽤 높은 가성을 듣기 편안하고 부드럽게 부르는 목소리가 꽤나 매력적이다. 간주 중에 나오는 기타 스트로크도 왠지 모르게 맘을 편안하게 해주는 듯하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가수다 보니 가사의 스토리텔링이나 흐름, 문법 그리고 발음까지 완벽한지라 정말 그냥 미국의 한 가수가 부르는 듯한 느낌의 곡이다.


"Sipping my life away

Leaving my problems in a bottle just for one more day

Oh I don't care what they say

No need to worry about a remedy to keep me sane

Oh life is always..."


"If I were to live a day

No need to worry about it in the end it's all the same

Oh no matter what I say

Everything goes the way it's meant to go on anyway

Oh life is always...


이때는 이제 영어가 어느 정도 편해진 터라 가사에 집중하면서 들었었는데, 술 한잔에 인생을 흘려보낸다는 후렴구가 시적이기도 하고 술을 어느 정도 좋아하는 내게 매력적으로 들렸던 노래다. 특히 마지막 구절, '내가 뭐라 하던 어차피 모든 것들은 흘러갈 대로 흘러간다'는 가사는 인생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말자는 얘기를 해주는 듯싶다. 어쩌면 이때부터 내 인생의 가치관이 이쪽으로 엇비슷하게 잡히기 시작했는지도.



4. Calling U - 허회경


나는 배우 박보영이 나온 드라마들을 열심히 챙겨보는 편이다 (뽀블리 사랑해요). 이 곡은 25년 2월에 출시된 '멜로무비'라는 넷플릭스 시리즈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박보영이 출연했다는 것과 별개로 주인공들의 서사가 꽤 깊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여운이 많이 남는 시리즈였다. 이 곡을 부른 가수 역시 내 초창기 글 '카타르시스'에서 처음 소개했었던 허회경이라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그때 이래로 허회경들의 곡들도 꾸준히 찾아 듣고 있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부른 삽입곡이라 내 플레이리스트에 넣지 않을 수 없었다.


"Hi, good morning, let's repeat everything, like yesterday

I'm almost ready, get your shoes on, let's runaway"


"I can be your dove, forever"


"Tomorrow we'll meet in our dream land

Don't you know?

If you are there, just wait, I'll be going there"


위 세 곡과 다르게 이 곡은 노래만 허회경이 부르고 작사, 작곡가들은 따로 있다. 뭐 여느 드라마/영화 OST가 그렇지만. 사실 이 곡은 가사들 한 구절 한 구절들만 놓고 보면 예쁜 구절들이 많다: '너만의 백조가 되어줄 수 있어, 영원히'라던지 혹은 '내일 우리는 우리가 꿈꾸던 곳에서 만날 거야'라던지. 하지만 전체적으로 합쳐서 보면 많이 끊어지고 어색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이 곡은 가사에 집중하기보단 허회경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잔잔한 배경음악에 집중하며 듣는다.




개인적으로 노래 추천 글들을 더 자주 쓰고 싶은데 곡을 추천할 때 그에 엮인 내 이야기들을 같이 풀고 짜집기하려 하니 생각보다 어려운 감이 있다. 그래도 내 작가의 서랍에 괜찮은 노래와 서사가 있을 때 그때그때 메모해 두는 편이니 하나의 글감이 완성되는 때에 꾸준히 올려보도록 하겠다.


아 그리고 나는 항상 영어노래와 팝송 추천에 열려있다. 들을 기회가 많이 없었던 것뿐이지, 나는 팝송을 포함한 모든 종류, 장르의 음악 추천을 반긴다 (컨트리만 빼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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