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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곰 Apr 24. 2024

교토여행: 사랑해 마지않는 사소한 순간들

1. 가모강에는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히 예상컨대 이들은 이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투박한 운동복으로 아름다운 가모강을 쌩쌩 지나칠 일이 있을까. 나는 운동복을 챙겨 오지 않아 하늘 거리는 치마를 입고 가모강을 잠시 뛰었다. 뛰는 거라면 지각을 앞둔 신호등이 아니고서야 기를 쓰고 피했지만 요즘에서야 그 고집 역시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러닝은 일부 필사와 비슷한 면이 있다. 막상 시작하기가 어렵지 해나가기 시작하면 의외로 관성처럼 하게 된다.


2. 많은 일본의 도시들을 가봤지만 교토는 확실히 연령대가 높다. 다음 정거장에 분명히 어르신이 타실 것을 알기에 피부기 지치지 않은 나는 지친 다리를 달랠 수가 없다. 그러나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말 그대로 우대인 그것에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 당연하게 우대를 받아왔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노약자가 아닌 여행객으로서도 우대를 받았다. 일본은 역에 정차할 때만 버스카드를 찍을 수가 있는지 시기를 놓쳐버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다음 정거장에서 넌지시 알려주던 분, 오하라에 가는 버스 정류장을 한참을 헤매다 겨우 발견한 줄 알았는데 영 버스가 오지 않아 당황했을 때, 버스가 오는 것을 깨닫고 안심하라는 눈짓을 보내주신 분.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가능한 일들이 아닐까. 내가 살아왔다면 피곤했을 테지만 받는 입장이라면 환영이다. 이런 이기심 때문에 일본을 계속 찾는 걸지도.


3. 돌이켜보면 산젠인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비로소 교토로 가고 있다 생각했다. 실은 내가 묵고 있는 숙소 근처가 니시키 시장과 기온 거리 근처라는 것에 매우 놀랐다. 오사카의 왁자지껄함과 한국 가요들에 대비되는 교토의 모습이 오늘을 이끌었는데, 어딘지 시부야의 교차로와 같은 사거리는 도쿄여행이 아니라 교토여행을 택했던 이유와는 상반되었던 것이다. 첫날의 혼란함이 현실의 걱정이 끼어드는 틈을 제공하지는 않았던가.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첫날 불안요소를 제거했고 비로소 진정한 교토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교토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고요한 소란. 나는 고요한 소란을 느낄 때마다 현재를 체감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어느 이름 날린 화가가 자신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몇 년은 그린 것 같은 규모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보다도 깊은 명암이 있고 복도를 거닐며 다른 모습이 보였기에 실제임을 알 수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면, 아주 고요했다. 동시에 소란해졌다. 먼 언덕배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풀잎 소리, 알알이 입 안에서 팥이 흩어지는 소리, 나지막한 말소리. 그것에 집중하여 내 안에는 어떠한 소리도 없었다. 그 소리들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좋다 밖에는 더 대단한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에, 고요했다.


4. 오하라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와 도심에서 벗어난 곳으로 카페를 찾아가는 길에, 무성한 잎과 바람 사이로 트럼펫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한 분이 악보를 무릎에 펼치고 얼굴만 한 트럼펫을 드문드문 불고 계셨다. 아무도 없는 공원 한가운데였다. 우렁찬 트럼펫 소리에 용기를 얻어 나도 노래 한 소절을 불러보았다. 이윽고 자전거가 지나가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지나가버린 자전거에 얼굴 붉힐 일이 뭐가 있나 싶었다. 그날 저녁엔 가모강 위에서 불완전한 목소리로 Wonderwall의 멜로디를 들었다. 묘하게 트럼펫 소리가 오버랩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자체로도 어떤 뭉클함이 있는지.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서투른 노래를 들었을 때는 비웃기도 했었던 나를 반성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지도 생각했다. 연습실에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목소리와 심장이 속절없이 떨렸던 건 제 3자의 눈으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일주일에 두세 번은 연습실을 향하게 했던 것은 애정이라기 보단 호랑이 선생님 같은 눈초리가 아니었을까.

5. 온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던 오후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묘하게 졸리웁던 오후 건너편에 앉은 여자가 꾸벅 졸고 있다. 침대를 이고 가는 듯한 나른한 버스의 오후. 어딘지 몽롱해 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책을 좋아한다.

6. 일본에 가면 꼭, 노천탕에 간다. 우리나라의 사우나와 비슷한 느낌이긴 하지만 일본에는 야외에 탕이 있는, 내부에서도 통창으로 밖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어릴 적에는 할머니와 사우나를 가는 날이 싫었다. 사우나에 가면 견뎌야 하는 뜨거움도 참을 수 없었고, 왜 시간을 들여서 온몸에 생채기를 내어야 하는지 벌게진 몸으로 욹으락붉으락 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주말에도 사우나에 가곤 했다. 뜨거움이 있으면 뜨겁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안 들다니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의 노천탕에서는 목 밑으로는 뜨겁고 얼굴은 시원하니 딱 견디기 좋은 노곤함이 된다. 뜨거움을 견딘 후 몸을 말릴 때의 시원함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마실 때의 청량함. 뜨거움이 없었다면 감사하지 않았을 것들이 좋다.


7. 교토에서 간 노천탕에는 공원을 바라보며 나 있는 휴게 공간이 있었다. 그간 갔던 곳에는 없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중얼중얼 허공을 채우는 야구 중계, 괘종시계의 추와 책장이 미풍에 흔들거리는 타이밍이 묘하게 일치하는 순간. 사랑해 마지않는 사소한 것들.

8. 마지막 노을을 배경으로 산조역에서는 천공의 섬 라퓨타의 ost가 바람에 실려온다. 가모강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순간 마지막 밤이라는 것이 슬펐고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기뻤다. 슬프지 않은 여행이 있다. 그리고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슬프지 않은 여행은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 때문에 슬픔을 집착적으로 기다리기는 하지만. 다행히 이번 여행의 슬픔은 불쑥 찾아왔고 그래서 모든 것이 의미를 찾았다. 이 여행을 그리워할 것이 분명해졌다. 그 그리움이 다른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불러올 것도.

9. 여행에서 나는 현재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했다. 과거 내가 보내왔던 여행들의 예기치 못한 행복들은 더더욱 여행이라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나를 밀어 넣지 않았나.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곧 어떤 걱정으로 몰아넣었기에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곧 과도한 현재로의 집착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내가 살았을 수도 있는 더 나은 현재를 초조하게 두드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토에서의 미래인 지금, 과거를 반추하며 더 나은 무엇으로 만들어감을 미루어볼 때 현재의 연장선상으로의 미래는 의지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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