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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Aug 10. 2022

ㅈ. 집이 무엇을 숨기고 있습니까

위너의 집으로(SWEET HOME)를 듣다가

 나는 집 밖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힘을 얻는 편이다. 새벽 등산과 아침약속, 점심과 카페약속, 저녁과 술약속을 하루 만에 성대하게 치르고 오면 피곤함만큼 뿌듯함이 든다. 일주일에 약속이 하나도 없으면 조금은 서운하고, '어디야, 지금 뭐해'라는 카톡이 오면 발끝을 살짝 들고 다음 카톡을 기다린다. 시간을 정할 때는 지금 당장이 좋고, 핸드폰과 충전기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는다.(LG페이 만세)


 이런 나에게 집은 묘한 곳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스무 살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을 등반하고 있는 지금, 집은 작은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누군가에겐 고향과 집이 완전한 휴식의 장소겠지만 아직 나에게 서울의 집은 작은 피난처이다. 집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조건들 중 몇몇은 없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없어도 될 몇몇은 있는 내 집. 아직 충분하지 못해 완전한 휴식이나 충천 기능을 탑재하지 못해서 나는 전통적으로는 집에서 구해야 할 것들을 바깥에서 구한다. 쉬는 날에는 너무나 존경하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걸어서 5분 거리의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본다. 이곳저곳에서 글을 쓰고, 5시간 내내 친구와 이야기를 한 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하자고 끝내는 의식은 얼마나 숭고한지.


 퇴사를 하고 짐과 집을 줄이며 마련한 지금의 집은 딱 6평. 19.9 제곱미터이다. 책상 두 개와 침대도 오랜 고민을 하고 광명까지 가 직접 조립한 가구들이 절묘하게 들어서 있는 이곳을 집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무얼까. 오늘 출근길에 위너의 '집으로(SWEET HOME)'에서 재미있는 가사를 들었다. "비밀로 가득한 나의 쉼터". 큰 책상 두 개는 창가 쪽 벽에 꼭 맞는데 하나는 PC, 하나는 꽃 작업용이고 친구들과 광명에 가서 사 왔어. 침대는 접으면 싱글, 펴면 퀸사이즈가 되는 제품인데 이건 처음에 광명에 갔을 때 가격 때문에 못 사다가 결국 다시 가서 사 왔는데, 조립하다가 나사 한 개를 망가뜨려서 한 개가 없어. PC는 18년도에 큰맘 먹고 나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창틀이 깨끗한 건 내가 깔끔을 떨어서도 있지만 비가 많이 내릴 때 물이 가득 차서 어쩔 수 없이 닦아서 그래. 전자레인지 수평을 맞추고 있는 책은 전 회사에서 준 책이야. 공유기 위에 토게피 인형은 취준 할 때 같이 다니던 대학교 후배가 인형 뽑기에서 뽑아 준거야. 집 곳곳에 있는 모든 것에 비밀이 가득하고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유 없이 내 집에 있는 것들은 없어. 큰 비밀을 가진 것도 있다니까.


 집이 작고, 마음이 작다 보니 집에 이유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없다. 이제는 너무 커버린 몬스테라도 20년 신촌으로 돌아오면서 샀던지라 아직 굳건히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화훼기능사 실기시험용으로 새로 산 줄자와 그 옆에 그전부터 가지고 있던 줄자 두 개는 책장 앞에 교묘하게 정리된 척하며 숨어있다. 집주인의 몇 번의 변덕도 견뎌낸 모든 방향제와 옷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여름이 끝나고 다시 찾아올 대변혁에도 살아남기를 기원한다. 모든 비밀을 간직한 집과 그 비밀들에게도 건투를 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사람을 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집이 작고, 집 본연의 역할을 못하기도 하는 데다가 모든 비밀들이 너무 노출되어 있어서. 비밀의 공간인 집은 그 비밀들을 체계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하나보다. 비밀인 척하는 자랑들은 좀 더 앞으로, 짠맛 나는 비밀들은 살짝 안쪽으로 두고 진짜 비밀은 다용도실이나 안방으로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게 뭐지, 왜 저기에 있지 싶은 물건들은 집에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버려도 괜찮다. 아, 물론 그 집이 그대의 집인지 꼭 확인하자. 집주인 분이 따로 계시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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