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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Nov 13. 2022

24. 교토에 있습니다

꿩 대신 닭, 호주 대신 일본입니다

 엄마는 환갑에 호주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음력으로 생일을 나는 옛사람이면서도 늦가을에 있는 생일을 돌려 초여름의 호주에서 환갑을 보내고 싶었답니다. 사실 호주에 가고 싶었다는 얘기만 들었지 저 멋진 이유는 제가 생각해 낸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엄마의 환갑은 1차로는 국내에서 신나게 치러졌고, 그 후 이어진 몇 차례의 행사 중 하나가 저와의 일본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 시국 전과 코로나 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는 시간과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어요. 모든 사람의 고개 위에 자리 잡은 무게가 주는 압박을 즐겼습니다. 그 시국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한동안 일본을 오지 못하다가 엄마의 환갑 여행을 겸해 오랜만에 김포를 떠나 간사이 공항에 오늘 아침 도착했습니다.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해요. 엄마는 중국과 백두산과 동남아의 여러 나라를 이미 다녀왔습니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빼기에는 저도 엄마도 회사가 걸렸어요. 저의 작은 욕심과 여러 조건들 덕분에 3박 4일 일본, 그중에서도 조금 덜 도시 같은 교토와 오사카에서 엄마의 N차 환갑잔치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일본만 여섯 번쯤 다녀왔지만, 엄마와의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꽤나 걱정했어요. 모두가 그러시겠지만 제1목표는 싸우지 않기입니다. (오늘은 17번쯤 싸울 뻔했어요. 다행히 잘 넘겼다고 생각해봅니다.) 하필 웨딩이 3개 있는 주라 회사에서도 바빴는데, 일본 여행에서 잘하지 않던 계획이란 걸 세우다 보니 버겁더군요. 오랜만에 엑셀로 성긴 계획표를 만들고 아고다에서 호텔 예약 바우처를 인쇄했습니다. 그 와중에 처음으로 웨딩 무대 큐브 장식을 만들고 (실장님이 레몬잎 다 뽑으라고 해서 1시간 넘게 다시 수정하고) 오랜만에 신부대기실 장식을 했어요. 그러고 나니 겨우 교토입니다.


 용산에서 지하철로 김포공항에, 거기서 비행기로 간사이 공항에, 거기서 다시 전철로 교토로, 다시 버스를 타고 간 청수사의 기요미즈데라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한국보다 늦은 단풍에 쏟아지는 비와 저무는 날까지 다 좋았어요. 일찍 찾아온 밤에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교토의 거리도 재미있었습니다. (하루에 3만 걸음은 걸어야 하는데, 엄마의 환갑잔치에 맞춰 2만으로 감량했습니다) 다행히 교토에 잡은 호텔 역시 완벽해서 엄마는 방에서 거품목욕을, 저는 아래 바에서 일본의 위스키를 마시면서 오랜만에 안부를 전합니다. (로비에서 20% 할인 바우처를 주지 뭐예요. 안 쓰면 괜한 손해일 것 같았어요. 이제 편의점으로 갈 겁니다)


 일본 여행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올해까지는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슬픈 소식을 전합니다. 저는 제주항공을 왕복 30만 원에, 교토와 오사카 호텔을 평균 1박에 16만 원 정도에 예약했어요. 지금은 1.5배에서 2배까지 가격이 오른 것 같으니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를 벗어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 입국을 위해서는 3차 백신 접종이나 72시간 내의 PCR 음성결과를 요구하는데, 입국 전 공식 사이트에서 절차를 마치시는 게 좀 더 편하실 것 같아요. (입국신고와 세관신고는 전처럼 종이로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간사이공항의 키오스크 숫자가 적어서, 오히려 QR코드가 좀 더 느렸어요.)


 벌써 사람이 많긴 하지만, 아진 예전만큼은 아닙니다. 마스크를 잘 쓰고 개인위생에 주의해주세요. 우리는 언제나 오늘을 살아내야 하니까요.



 엄마와 여행을 오는 것의 큰 단점은 일상이 이어진다는 것 같아요. 저는 해외로 나오면 일상과는 완전히 단절하고 그곳에서의 일과 얘기만 하고 싶은데, 엄마라는 존재와 그녀가 하는 통화, 행동, 걱정들이 저를 일상에 잡아둡니다. 교토를 걸으며 지난 김장 얘기를 듣는 건 꽤나 새롭고, 솔직히 다시는 가지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장점을 물어보신다면 제가 남은 3일 동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용히 넘어가도 이해해주실 거라 굳게 믿겠습니다.


 오사카와 교토는 아직 따뜻하고 단풍이 한창입니다. 여전히 해는 일찍 지고 사람들은 조용하고 버스와 사람들이 좌측통행을 해요. 4년 사이에 일본어 실력만 확연히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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