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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Nov 22. 2022

26. 서로의 기분을 살피는 것

엄마와의 3박 4일을 돌아보며

 *지난 글(25. 오오사카라고 발음합니다)에서 이어집니다.


 11/15(화) 아침에 일어나 대욕장에 내려가 씻고 일찍 오사카성으로 향했습니다. 대욕장이 있는 호텔이다 보니 샤워시설이 딱 일본의 호텔 같아서 오사카에서 머무는 동안 씻는 건 다 내려가서 했어요. 저는 넓게 씻을 수 있어서 편했습니다. 오사카성 공원에 도착해 오사카성을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습니다. 다시 온 오사카성의 경치는 솔직히 말해 그냥 그랬어요. 주 건물인 천수각보다는 두 겹의 해자가 있는 공원을 둘러보는 게 더 좋았습니다.


 전날 교토에서 탕두부를 먹으려고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기다렸더니, 엄마가 오늘은 점심을 조금 일찍 먹자고 해서 근처의 라멘집을 찾아갔습니다. 엄마는 일본 라멘을 빨갛고 해물이 들어간 어떤 면요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대요. 돈코츠 라멘 단일 메뉴인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느끼해서 힘겨워하는 엄마와 함께 제가 오사카에 가면 종종 들리는 카페로 갔습니다. 기타하마 역 근처의 강이 보이는 카페인데, 바로 앞에 중앙공회당이 있는 섬이 있어요. 뷰가 좋고 좋은 기억도 많은 곳이라 중간에 관광지를 좀 줄이고 카페에서 조금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뒤 아래쪽 신세카이 지역에서 시텐노지와 텐노지 공원을 산책하고 쓰텐카쿠 타워에 가서 슬라이드(저와 친구만 탔습니다. 엄마는 극구 사양했는데, 나중에 보니 높이가 생각보다 낮아서 탈만했겠다고 말했어요)와 전망대를 이용한 뒤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여유 있게 짠 일정이었는데, 엄마는 조금 힘겨워하시더라고요. 문득 지난번 뉴욕에 갔을 때 5만 보쯤 걸어 다녔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걷는 것도 잘하고, 아직 다리가 튼튼하고, 거리를 보는 것에 욕심이 많아서 여행지에서 꽤나 길게 걸어 다니거든요. 욕심을 던다고 덜었는데 여전히 빡빡했다는 반성을 합니다. 저녁으로는 야키니쿠나 복어 코스요리를 먹어볼까 했는데, 엄마가 아직 돈코츠 라멘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해 깔끔하고 야채가 많지만 일본식인 요리를 찾아보다가 숙소 근처 일본식 샤브샤브집이 있어 그곳으로 정했습니다.


 저녁 메뉴는 아주 훌륭했어요. 일본식 샤브샤브는 육수가 아닌 맹물을 사용하는데, 돼지고기와 고베규와 함께 많은 야채를 먹으니 속이 편했습니다. 도톤보리 여행 중에 속 시끄러워서 깔끔한 음식을 드시고 싶으시면 '샤부친 난바 센니치마에점'을 추천드려요. 주인분이 아주 친절하시고, 영어 메뉴가 있으며 영어로 설명도 아주 잘해주십니다. 여행지에서 한식은 최대한 피한다는 생각이 강해 고심 끝에 고른 곳인데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덕분에 일정 중 최대 금액이 나왔습니다.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친구와 여러 종류의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마침 난바역 근처라서 내일 아침에 간사이 공항으로 돌아갈 라피트 열차를 예매하고 숙소로 돌아와 조금 쉬다가 저는 다시 친구와 함께 우라난바, 도톤보리에서 가볍게 밤을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아직 늦게까지 하는 이자카야들이 적은 데다 들어간 곳마다 우리 같은 관광객이 많아 쉽게 피곤해지더라고요. 아쉬움도 있었지만 돌아와서 또 보면 된다는 생각과 내일 아침 피곤하게 공항으로 가는 게 싫어서 호텔에 일찍 돌아와 쉬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김포공항에 내려 엄마는 청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저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려 집으로 돌아왔어요. 다행히 큰 다툼 없이, 큰 실수 없이 3박 4일간의 환갑잔치가 끝나 좋았습니다. 한 가지 크게 아쉬운 건 제가 캐리어를 싫어해서(수화물 찾는 시간과 캐리어를 끌고 다녀야 하는 그 불편함과 소리를 싫어합니다) 엄마도 꼭 배낭을 메고 오라고 했는데, 엄마가 생각보다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거나 호텔까지 가는 걸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거예요. 돌아오는 간사이 공항에서도 저는 수화물을 찾는 시간에 버스가 가버릴까 짐을 맡기기 싫었는데, 보안검색과 출국장 줄이 길어 엄마는 좀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결국 중간에 수속을 다시 하고 오셨는데, 그 긴장이 그냥 캐리어만 있었어도 없었을 것이라 제가 괜한 고집을 피웠다 싶었어요. 저 배낭과 무게 때문에 중간중간 엄마의 피곤함과 낯선 음식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왔거든요.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에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필요 없는 긴장을 하는 건 참 버거워요. 저에게는 익숙하지만 엄마에게는 처음인 일본에서, 엄마의 생일을 기념하는 여행을 한다는 경험이 서로에게 참 즐거웠어요. 모자관계지만 서로의 여행을 위해서 열심히 눈치 보고 열심히 칭찬했습니다. 어느 관계든 노력이 필요합니다. 엄마와의 32년간의 노력을 자축합니다.




 오사카는 이번이 세 번째라, 다음에는 간사이를 간다면 교토에만 있지 싶어요. 아, 제가 아쿠아리움을 좋아하는데 가이유칸에 못 가봐서 그곳은 들를 것 같네요. 저는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를 다녀왔는데 다음에는 일본의 위쪽으로 가봐야겠어요. 물론 2박 3일쯤 시간이 된다면 도쿄 도쿄 도쿄입니다.


 오사카는 지금! 11월 중반이 가장 좋았어요. 도쿄는 겨울이, 오키나와는 4월이나 5월이 최고라고 자신합니다. 휴양지는 다녀왔고 일본이지만 뭔가 덜 일본스러운 평화와 적막을 느끼고 싶다면 오키나와를, 에반게리온이 이래서 나왔구나 하는 도시의 적막과 무게를 느끼고 싶으시다면 도쿄를 갑시다.


 우리나라의 표준시가 도쿄랑 같다보니 일본의 시간이 우리보다 30분쯤 빨라요. 도쿄의 5시는 우리나라와 같은 5시이지만, 해가 30분쯤 빨리 집니다. 시간이 같다고 해서 해도 같은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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