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인 리 Wine Lee Jul 13. 2021

라구 파스타엔 검은 수탉, 끼안띠 클라시코

완벽한 반주 #08

어렸을 때, 엄마가 며칠 집을 비우게 되면 꼭 냉장고에 들어있던 음식이 있죠. 곰탕! 한 솥 푹 끓여서 커다란 냄비에 가득 담아두면, 꼬마들도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음식이었달까요. 밥과 함께 국으로도 먹고, 떡국이나 칼국수가 되기도 하고.. 저는 어렸을 때 특히 곰탕, 사골국을 좋아해서 엄마가 자주 해주셨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저희 집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다들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렇듯 한국인의 소울푸드 중 하나인 곰탕에 버금가는 음식이 저 바다 건너 이탈리아에도 있어요. 바로 '라구' 소스입니다. 한가득 만들어서 저장해 놓으면,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어 이탈리아의 곰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래 끓여야 맛있다는 점에서도 닮아있고요.



집에서 만들어 고기가 듬뿍 들어간 라구 파스타



개인적으로 라구를 좋아하는 이유  하나는 단순하게도, 바로 고기 위주의 소스이기 때문입니다. 알리오 올리오처럼 깔끔한 요리나 해산물이 들어간 요리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개중에 골라보라고 하면 육식 위주로 고르게 되는 사람이라 그런  같아요. 그렇다고 스테이크 같은 무거운 고기 요리를 먹기는  애매할 , 라구 소스는 제게 최고의 선택지입니다.


이런 매력을 가진 라구의 짝꿍으로 추천드리고 싶은 오늘의 와인은? 역시나 같은 고향 이탈리아에서 온 끼안띠 클라시코입니다. 사실 라구 뿐만이 아니라 토마토소스 베이스로 된 음식이라면 언제나 믿고 먹는 끼안띠 클라시코죠! 줄여말하기가 취미가 된 우리나라 사람들이 '끼끌'이라고도 부르는 이 와인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입니다. 마셔본 적이 없으시더라도 아마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와인바, 와인샵 등에서 옷깃은 한 번 스쳤을 거예요.



검은 수탉 보이시나요?



끼안띠 클라시코 와인을 여러 개 구경하다 보면 특이하게도 항상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실지 모르겠어요. 처음에 저는 어떤 와이너리의 상징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끼안티 클라시코'의 인증마크 같은 거였죠. 바로 검은 수탉인데요, 왜 하필 검은 수탉일까요? 끼안띠 지역에 검은 수탉이 많이 살고 있을까요? 검은 수탉 요리가 유명할까요? 저는 이런 게 먼저 떠오르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중세 시대, 끼안띠 지역은 피렌체 공화국과 시에나 공화국이 엎치락뒤치락 소유권을 주장하던 지역이었어요. 그러던 중 이제 그만 싸우고 정확하게 구역을 나눠보자! 하고 택한 방법이 새벽에 수탉이 울면 피렌체와 시에나 각각에서 기사가 말을 달려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국경지로 하는 것이었죠.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했는지, 굉장히 참신한 방법이죠.


여기서 기사의 말 달리기 실력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수탉'이었어요. 왜냐고요? 스타트 사인이 되는 수탉이 피렌체, 시에나 각 지역에서 따로 울었기 때문이죠. 지금이라면 형평성 논란이 생겼을 상황인데,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수탉을 일찍 울게 할 수 있을까'에 몰입했습니다. 두 수탉은 정반대의 환경에서 결전의 날을 준비하게 되는데, 피렌체의 검은 수탉은 어둡고 좁은 우리에서 밥을 굶는 힘든 생활을, 시에나의 하얀 수탉은 잘 먹고 잘 자는 아주 윤택한 생활을 하죠.


결국 힘든 시간을 버텨낸 검은 수탉이 팔자 좋은 하얀 수탉보다 빨리 일어나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고, 끼안띠 대부분의 지역이 피렌체의 손안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끼안띠 클라시코의 상징이 된 것이고요.

아, 끼안띠 클라시코가 아닌 일반 끼안띠 와인에는 이 수탉 로고가 붙지 않아요. 끼안띠 와인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와인 생산지역도 점점 넓어졌는데, 끼안띠 와인의 생산지역이 확장되기 이전부터 끼안띠 와인을 생산하던 원조, 끼안띠 클라시코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이랍니다.




Villa Antinori Chianti Classico, 무난하게 추천하는 끼끌



끼안띠 클라시코는 워낙 유명한 와인이라 저도 몇 번 먹어봤는데, 처음에는 생각보다 별로였던 적이 꽤 많았어요. '산지오베제(Sangiovese)'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드는 끼안띠 클라시코는 제 느낌에는 꺼끌꺼끌한 떫은맛에 산미도 센 편이었는데, 과실향은 없고 뻑뻑하기만 한 느낌이었어요. 아마 제대로 열리지 않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고 와인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와인이 창문도 아니고 어떻게 열리죠?라는 의문이 생기셨겠지만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또 한참이라, 다음에 다시 다뤄보도록 할게요.)


그런데 또 어디선가 들려오는 풍문으로 끼안띠 클라시코에는 토마토소스라는 걸 알게 되어 라구 파스타와 함께 먹었는데, 웬걸! 제가 불편하게 느꼈던 떫은맛(타닌)과 산미가 튀지 않고 밸런스가 맞춰진 느낌이 드는 거예요! 물론 그냥 먹으면 맛이 없고 토마토소스와 같이 먹어야 맛있다는 건 아니고, 제가 그 전까지 끼끌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것일테죠. 어쨌든 모든 조건이 맞춰지니 끼안띠 클라시코는 토마토소스와 기가 막힌 밸런스를 자아냈답니다. 비교적 산도가 높고 드라이한 끼안띠 클라시코에 적당히 새콤한 맛을 지닌 토마토 소스가 균형을 잡아준 것이 아닌가 싶어요.



레스토랑에서의 완벽한 반주



요즘에는 라구 소스 레시피도 굉장히 많이 나와 있어서,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보고 쉽게 따라해볼 수 있답니다. 간단한 레시피도 많으니 하루 날 잡고 요리한 후 마음에 드는 끼안띠 클라시코 한 잔과 함께 해 보세요. 한 냄비 만들면 남은 소스도 요긴하게 쓰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직접 요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요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메뉴가 라구 파스타이고, 어딜 가도 끼안띠 클라시코 하나 정도는 와인 리스트에 있을 테니까요. 편안한 집에서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든, 여러분에게 완벽한 한 끼를 선물해 줄 수 있는 행복한 마리아주입니다.



https://winely.stibee.com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의 심판, 그리고 서울의 심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