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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 리 Wine Lee May 21. 2021

내 맘대로 블라인드 테이스팅

완벽한 반주 #번외편


와인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술입니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기도 하고, 또한 그래서 특이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기도 하죠. 바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입니다.


마스터 오브 와인이나 전문 소믈리에 같은 와인 전문가들, 그리고 덕력 만렙인 와인 애호가들은 아무 정보 없이 와인을 접했을 때 그 와인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요소가 매우 많습니다. 품종에서부터 시작해서, 와인의 산지, 빈티지, 숙성 기간과 방법, 알코올 도수, 등등 거의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오로지 감각만을 활용해 이게 프랑스 보르도의 어느 마을에서 나온 와인이다,라고 답을 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저 같은 초보자들은 존경의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WSET이라는 와인 자격증 2급을 가지고 있지만,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의 정체를 맞춘다는 건  저 먼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WSET 과정을 수강하면 학원에서도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하는데, 학원에 수업 들으러 온 초짜가 블라인드로 와인의 정체를 맞추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이게 산도가 높은 건지, 잔당감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귀가 닳도록 이야기하는 '미네랄'은 도대체 무슨 느낌인지, 와인의 여운이 오래간다는 건 또 뭔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처음 해보면 '나만 이상한가?' 싶을 정도로 도대체 알 수 없는 말 투성이입니다.



WSA 와인아카데미의 수업시간 블라인드 테이스팅


수업시간에 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사실 이걸 맞추기 위해 한다기보다는 아무런 편견 없이 이 와인에 대한 특징을 느껴보는 것이 더 큰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인지라, 사전 지식이 있으면 와인을 느끼기 전부터 편견에 사로잡히기 쉬우니까요. 모든 정보를 알고 맛본 후 나도 모르게 그 정보를 끼워 맞추는 것보다는 일단 느껴본 다음에 정보를 습득해야 나중에 또 와인을 마실 때에 도움이 되겠지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실제로 해보면 제 오답률은 98% 정도는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굴하지 않고 친구들과 가끔 테마가 있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합니다. 순전히 재미로요. 와인의 정체는 1도 모르지만 그냥 다 같이 헤매는 게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번외편으로, 제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소꿉장난 같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한번 보여드리려고 해요. 조금 본격적인 소꿉장난이라 와인을 5개 정도 가져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종류는 1개가 되어도 2개가 되어도 상관없답니다. 어차피 못 맞추거든요! (깔깔)



생각보다 본격적이지만 그만큼 즐거운 블라인드 테이스팅 이벤트


먼저 시작할 때 공개되는 정보는 이번 테이스팅은 화이트인지, 레드인지입니다. 사실 이건 와인 잔에 와인만 따라도 금방 들통나는 아주 쓸데없는 정보죠. 그리고 2차 주제가 있는데,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주최자가 열심히 궁리해서 선정한 '출제자의 의도'인 셈입니다. 저희가 했던 화이트 와인 블라인드를 예로 들자면, '화이트 와인 안에서도 꽤 특징이 뚜렷한 대표 품종 3가지'가 테마였습니다. 자신과 마주한 5잔의 와인을 테이스팅 해보면 어렴풋이 출제자의 의도를 알 것 같기도 하답니다. 여기까지만 성공해도 어디 가서 나 요즘 와인공부 좀 하고 있어,라고 말할 만하겠죠?


그다음부터는 이제 오답의 대향연이 펼쳐집니다. 그나마 변하지 않는 건 와인의 색깔 정도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향과 맛은 자꾸만 변해가죠. 그 변덕에 따라 우리의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리고요. 확신에 가득 차 유레카 소리쳤던 와인도 불과 10분 후에는 오리무중이 되고, 정체를 밝히겠다며 마신 한 모금 두 모금에 판단력은 점점 흐려집니다.


전문적인 테이스팅을 할 때에는 알코올에 취하지 않기 위해서 스핏튠(Spit Tune)이라고 부르는 통에 와인을 뱉는 것이 정석이지만, 저희 같은 내 맘대로 소믈리에들은 와인도 아깝고 맛도 잘 안 느껴지는 것 같고 해서 일단 마시고 봅니다. 그리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끝은 항상, 에라 모르겠다 이제 정답 공개하고 먹자!



테이스팅 할 때에는 맛이 밋밋한 안주들만 함께 할 수 있어요.


와인들의 정체를 모두 공개하고 나서는, 내가 이렇게 느낀 게 저 와인이었구나, 의외로 가장 좋았던 건 이 와인이었구나 스스로 생각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테이스팅을 마무리해요. 그냥 마시는 와인도 언제나 좋지만 이렇게 한바탕 이벤트를 치르고 나면 조금 더 공부도 된 것 같고 뿌듯합니다.


내 맘대로 소믈리에들은 이런 것도 모두 내 맘대로라, 대충 이렇게 노는구나 참고만 하시고 집에서 재미로 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 물론 와인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몰라야 하기 때문에 문제 내주는 사람이 꼭 한 명 필요하기는 합니다. 여러 병을 문제로 내면 순서를 섞어 출제자도 블라인드에 참여가 가능하고요. 주변에 와인 좋아하는 친구 한 명을 꾀어내어 블라인드 모임을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꽤 재미있는 술자리가 될 거예요.



https://winely.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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