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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su Sep 14. 2021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디즈니의 힘, 미국의 힘

Films by Disney

디즈니! 



이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기억은 나질 않지만 내가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는 디즈니의 '라이온 킹'이었다고 한다. 그뿐인가? 어린 내게 디즈니는 영화라는 세계의 전부였다. '라이온 킹'은 물론 '미녀와 야수', '알라딘'부터 '뮬란', '타잔'에 이르기까지, 디즈니 르네상스는 내게 처음으로 각인된 영화세계였다. (참고로 어렸을 때의 나는 영화관에서 아빠와 사촌 형들과 '노틀담의 꼽추'를 보다가 무서워서 뛰쳐나가던 아이였다. 그러고는 바로 맥도날드에서 어린이 세트를 사 먹고 '노틀담의 꼽추' 장난감을 받았더라나 뭐라나)



정말 우연스럽게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암흑기에 나는 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고, 내가 영화에 미친 듯 빠지기 시작할 때, 디즈니는 '겨울왕국'을 내놓으며 부활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디즈니와 픽사에서 내놓는 모든 애니메이션들을 빠짐없이 보고 있고, 볼 때마다 운다. 



물론 어린 시절의 디즈니와 지금의 디즈니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무엇보다 지금의 디즈니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며, 그에 따른 악덕 독점기업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일명 'Political Correctness'가 문화계를 망친다는 비난을 맨 앞에서 얻어맞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PC, 일명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논할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내가 매번 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디즈니는 다양한 캐릭터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오지만 어떤 작품이든 성실하게 굳건한 이야기 구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언제나, 한결같이, 인간의 이상적인 선(善)을 강조한다. 한편 선(善)이란 이상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그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 희생, 자유, 평등, 성실, 신의 등 많은 단어들로 그것을 정의할 수 있겠지만 선(善)이란 결정화된 것이 아니며 주관적인 입장으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엔 언어를 떠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이 선(善)이란 개념을 이야기 속에 이미지화한다. 모든 작품들이 각각의 인간상과 세계상을 통해 공통적 이상을 그려낸다. 내가 디즈니를 보면서 매번 눈시울을 붉히는 이유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이상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아름다운 이상을 눈앞에 보여주는 것, 그것도 확실하게. 그런데 이상을 눈에 보여주는 것은 좋다만,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의제로 떠오른다. 쉽게 표현해보자면, 아름다운 공주와 왕자가 첫눈에 반하는 이야기 같은 건 이제 한물갔다는 말이다.



그래서 디즈니는 새로운 방향을 선택했다. 세계의 수많은 특별한 문화들로 눈을 돌렸다. '모아나'의 폴리네시아, '코코'의 멕시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동남아시아, 그리고 이제 디즈니의 새로운 간판이 된 MCU 속 '블랙 팬서'의 아프리카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중국까지.



디즈니의 특별함은 여기서 발휘된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을 통해 지금까지와 동일한 이상향을 선보이는 것, 미국의 현실은 물론 가혹할 테지만 미국의 이상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한다. '이민자의 나라', 용광로이자 샐러드. 미국이 가진 초강대국의 위치는 그 이상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이 미국의 특별함을 설명해주는 영화가 바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근래 미중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으며, 앞으로도 상황이 나아질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물론 국제정세는 앞서 말한 PC와 같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상관없다. 다만 디즈니의 힘과 미국의 힘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할 뿐이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다분히 중국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심지어 대사의 절반은 중국어, 그것도 북경어다. 이것은 상업영화로서 MCU가 가진 입지로 볼 때 대단히 특별한 선택이다. 미국인들은 자막 읽기를 무진장 싫어할뿐더러, 특히 대중 감정이 안 좋아진 지금 굳이 극장까지 가서 중국어를 듣고 싶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디즈니는 영화의 절반을 중국어로 제작했다.



'중국의 문화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중국어로 떠드는 영화를 만들다니, 도대체 디즈니는 정체가 무엇인가? 친중반역기업인가?' 라고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말할지도 모른다. 전 대통령의 의견이야 어쨌든, 절반이 중국어로 만들어진 중국문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설명만 들었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다. '아니, 지금같은 시기에 중국을 띄워주는 영화를 만들다니 도대체 디즈니는 생각이란 게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특히 샹치와 케이티의 캐릭터를 바라보면 오히려 디즈니의 대범함이 무섭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이민자를 통해 중국의 문화마저 미국의 것으로 포용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양적 무술과 환수들, 그 아름다운 배경들을 심지어 중국어로 보여주지만, 그 어떤 것도 온전한 중국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중국어로 떠들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이상향은 지금까지 디즈니가 보여주던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에서 격투씬이 나올 때마다 이상한 두근거림을 느꼈는데 (그리고 양조위의 눈빛을 볼 때도 물론), 특히 마카오 빌딩 외벽 격투씬에서의 카메라 워크를 구현해낸 할리우드의 기술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뭔지 모를 자부심과 함께 미국이라는 배경에 대한 동경심까지 느껴지는 게 아닌가? 아마 '블랙 팬서'를 본 모든 흑인들이 열광하던 이유가 이 이상한 감정과 동일한 것이지 않았을까? 자신과 닮은 외향을 통해 강화되는 거대문화현상에 대한 동조.



중국이 이 영화를 금지한 이유가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이거다. 그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인이 중국적 문화와 배경을 담아 만든 슈퍼히어로에 자국민들이 열광하게 둘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슈퍼히어로는 중국의 손으로 만들어져야지, 미국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화적 약탈이며 위기라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타국에게 그만큼 위험하다.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통해 무엇이든 흡수하고 자기화하기 때문이다. 중국문화의 정수를 담아낸 미국의 슈퍼히어로라니! 마치 잠재력을 갖춘 중국인들은 미국의 품에서 그 진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 같지 않은가?



디즈니는 미국이라는 나라처럼 강력하고 아름다우며 무시무시하다. 이들은 '당신이 올바른 길만 찾는다면, (당신의 인종과 성별, 아니 그 무엇도 상관없이) 당신은 선하고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라는 너무도 특별한 꿈을 심어준다. 이는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자 했던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관념의 멀고 먼 후손이기도 하다. 물론 관념과 실존은 다르며,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다만 나는 디즈니와 미국이 추구하는 이상향에 공감하고 그 결과물들을 사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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