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ook Up - A film by Adam Mckay
멀리 어딘가로부터 전해지는 군대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똑똑하면서 게으른 인간은 가장 훌륭한 장교가 될 수 있다.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인간은 훌륭한 부사관이 될 수 있으며, 멍청하면서 게으른 인간은 좋은 사병이 될 것이다. 다만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인간이 장교라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상당히 과감하면서도 번뜩이는 통찰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우리는 진실이 어떠하든, 우리의 상사가 멍청하고 부지런한 인간이라고 여기지 않는가? 저 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니 말이다.
이 이야기에는 상당히 짚어볼 만한 게 많다. 첫 번째라면 역시 감각 또는 재능의 여부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노력하면 뭐든지 잘 될 거야~"라든가, "노력하는 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을 이겨!"같은 주제를 많이 접하게 된다. 정말 그러한가?
아니다. 감각이 없는 사람은 감각이 있는 사람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널리 널리 퍼졌을까? 아마 사회를 온전히 유지시키기 위한 단체 최면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짓을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면, 누가 무엇을 하려 들겠는가?
두 번째로는 멍청하면서 게으른 인간이 좋은 사병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멍청하고 게으른 인간이 어떻게 '좋은'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건 감각 없는 사람이 감각 있는 사람을 못 이긴다는 것보다 무서운 이야기다. 최소한 감각이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며 우리가 가진 비교우위를 찾아 헤맬 수 있지라도 않은가? 예를 들자면, 라면을 끓이는데 재능이 없으면 김밥을 마는데 도전한다는 식으로. 그런데 멍청하고 게으른 인간이 좋은 사병이 된 다는 말은 여간 무서운 말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좋은 사병이란 무엇일까? 시키는 대로 하는 인간이다. 자기 생각 따윈 아예 가진 적도 없어 그냥 시키는 대로 (귀찮더라도) 하는 인간이 좋은 사병이다. 뻘밭에 진지를 구축하라면 진지를 구축하고, 사지로 뛰어들라면 뛰어드는 영웅적인 소시민. 멍청하고 게으르다면 자기 생각 따윈 가질 겨를이 없다. 왜냐면 우선 멍청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게을러서 그 멍청한 머리를 굴릴 가망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극단적인 한 인물로 대체하지 말고, 우리가 가지는 여러 양상으로 여겨보자. 우리는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시간을 좋은 사병으로 산다. 왜냐면 우리의 뇌가 사사건건 스스로 판단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에너지 양에 비해 우리의 인생은 무한대에 가까운 판단과 선택을 요구한다. 그때마다 우린 우리의 인사이드로부터 끌어 오르는 이성과 탐구심을 가질 순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웃사이드에서 주어진 몇 개의 단서와 그로부터 지금까지 형성되어온 고정관념을 활용한다. 이미 우리의 틀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판단한다고 여기지만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처음 주어진 정보와 그로부터 성립된 생각에 지배된다. 우린 이미 주어진 정보와 반대되는 정보는 알아서 거르는 신기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대다수의 시간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좋은 사병으로 산다. 그렇지만 좋은 사병으로만 살다 보니 세상은 많이 험악해져 있다. 우리가 아닌 너는 나쁜 놈이 된다. 왜냐면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단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우리와, 우리가 아닌 나쁜 놈들. 세상은 언제나 그래 왔고 지금은 그저 겉으로 더욱 많이 드러날 뿐이다. 왜? 우리와 우리가 아닌 나쁜 놈을 가릴 기준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성별, 인종, 언어, 계급, 정당, 민트 초코 그리고 백신을 맞았느냐 말았느냐까지. 우리와 우리의 적을 가릴 기준들은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우리와 우리의 적을 나누는 것은 좋은 사병으로 사는 게 편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매번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여러 측면에서 판단하기보다, 우리 편인지 아닌지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 편이면 좋은 사람, 우리 편이 아니면 나쁜 사람.
'돈 룩 업'은 상당히 트럼프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이다. 메릴 스트립은 모로 봐도 여자 트럼프고 조나 힐은 모로 봐도 이방카와 트럼프의 다양한 기행을 비꼬는 대체재다. 이상할 일은 아니다. 트럼프는 사실상 헐리우드에서 공공의 적과 다름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또한 다시 되새겨볼 만한 명제다.
트럼프는 어쩌다가 헐리우드의 적이 되었을까? 트럼프가 필터를 거르지 않은 입으로 미국 사회, 특히 백인 노동자 계급층의 분노에 불을 질렀기 때문인가? 이를 통해 미국을 트럼프 지지자들과 트럼프의 적으로 나누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트럼프가 그 입을 놀리기 전까지는 트럼프의 지지자들과 트럼프의 적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트럼프가 있기 때문에 트럼프의 지지자들과 트럼프의 적들이 나뉜 것이라면, 트럼프의 존재는 분명 상당히 위험한 존재다. 폭스뉴스와 CNN은 트럼프가 실각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절대로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 폭스뉴스와 CNN은 트럼프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던가?
분열과 갈등의 존재는 인간사와 떨어뜨릴 수 없다. 마치 인간의 DNA에 각인된 것처럼, 우리는 분열과 갈등을 원한다. 그리고 매스컴과 정치는 그 분열과 갈등을 통해 서로에 대한 분노를 조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노를 다시 한번 서로에게 전파하며 재생산한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글을 처음 시작할 때,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이가 우리를 이끈다면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것은 물론 가볍게 생각해 트럼프를 비꼬는 극 중 메릴 스트립의 역에 적용하고 말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에게도 적용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멍청하고 게을러서 판단을 유보하거나 남에게 의존하는 좋은 사병일 뿐만 아니라, 유보한 판단과 의존적인 판단에 자신을 맡긴 채 열성적으로 '부지런하게' 충돌만을 야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의 마지막처럼 우리는 결국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이끌지 않을까?
트럼프가 나쁜 게 아니다. 다만 우리 모두의 안에 트럼프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