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협력업체 분과 불가피하게 출장을 나가게 된 건 몇 달 전이었다. 예산 관련 미팅이라 원래는 내 담당이 아니었지만, 담당자분이 휴가 중이라 대신 참석하게 되었다. 대화 중 그분에게 여자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자연스럽게 지인 한 명을 소개해주게 됐다. 소개는 종종 해본 적 있었지만, 그렇게 큰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며칠 뒤, 감사의 의미라며 10만 원짜리 아웃백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그 당시엔 너무 감사한 마음이 컸는데, 나중에 알았다. 그 선물이 묘하게 딱 맞는 타이밍에 찾아온 ‘위로의 씨앗’이었다는 것을.
퇴사 통보를 받은 날, 나는 그 기프티콘을 꺼냈다. 회사에서 유난히 마음이 맞았던 동료와 함께했다. 아침마다 출근을 같이 했는데 그날이 함께 마지막 날이 돼버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 도무지 회사 사람들과 회사 근처 일대의 점심을 먹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 만큼 마음이 눌렸고, 무력하고, 아득했다. 그래서 우린 11시까지만 근무하고 나간다 하였고 짐을 정리하고 리뷰가 제일 많은 아웃백으로 향했다. “하필 오늘에서야 이 기프티콘을 쓰게 되네” 하며 웃었지만, 속으론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묵혀두었던 선물 같았다.
아웃백 입구는 평일 점심인데도 놀라울 만큼 자리를 많이 차지해 있었다. 금요일도 아니었고, 이곳이 저렴한 레스토랑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많지? 사람들은 많았지만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앉는 자리와 테이블은 넓어서 여유로운 공간이 우릴 마주했다. 우리는 창가 쪽에 앉았고 접시 부딪히는 소리, 고기 굽는 냄새가 뒤섞인 그 공간에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다 어떤 하루를 살고 있을까? 우리처럼 회사에서 퇴사 통보를 받고 나오진 않았을 텐데 즐거운 일로 왔을까? 남자 두 명은 무슨 일로 여길 온 거지 하며 상상을 더하게 됐다.
우리를 자리로 안내해 준 직원은 신입이었다. 명찰에 신입사원 하고 조그맣게 적혀있었다. 지나치게 바짝 들어 올려진 어깨, 조심스러운 걸음, 말끝마다 묻어나는 긴장. 뒤에서 사수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설명을 해주는데 자신감은 없는 느낌 외워서 하는 느낌 너무 귀여웠다. 그 모습을 보는데,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매일 실수하지 않으려고, 잘하려고 했고 하지만 대표 앞에 서면 긴장을 하고,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마음이 짠했다.
아웃백 직원들은 참 다정했다. 멀리서도 우리 테이블을 계속 살피며 물이 부족하진 않은지, 뭔가 필요한 건 없는지 세심하게 체크했다. “저 신입사원분 평가하는 거 있으면 만점 줄 거야.”
동료가 말을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최고를 연신 올리며 웃었다. 오늘 참 힘든 날인데, 오랜만에 가볍게 웃었다.
10만 원 기프티콘의 위엄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여유롭게 주문했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미디엄 레어로, 새우가 푸짐하게 얹힌 파스타, 톡 쏘는 레모네이드에 따뜻한 스프까지.
빵은 스프에 찍어 먹는 게 국룰이라며 동료가 건네길래, 그대로 따라 해보니 은근히 중독적인 맛이었다. 양송이버섯 수프는 너무 진하지도, 너무 묽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와 농도였다. 빵을 금세 해치우고 빵도 리필이 가능하다고 해서 했는데 배가 너무 불러 먹지를 못했다.
대망의 스테이크.
칼을 대자 쉽게 잘리고 붉은 속살이 촉촉하게 드러났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고소한 육즙이 입 안에서 퍼졌다. 순간적으로 모든 감정이 고기 맛에 묻혀버린 듯했다. 부자가 된 느낌!!
‘그래… 이런 날에는 이런 음식이 필요했지. 이 정도의 위로라도 있어야지.’
파스타의 두툼한 새우는 씹을수록 단맛이 났고, 레몬에이드의 상큼함이 마음 구석구석을 환기시켜 줬다. 배가 따뜻하게 차오르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후식도 제공을 해주었는데 녹차를 먹으니까 기름기가 몸의 위쪽에서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기분. 그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답답함까지 같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하며 우리는 지난 회사 생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서로의 힘들었던 순간, 견뎌낸 하루들, 부당했던 일들, 그래도 버텼던 이유들.
“그래도 우리 진짜 잘 버텼다. 우리 인내심 쩐다. 앞으로 이 독기로 더 잘될 거야!”서로를 다독였다.
성격이랑 생각하는 게 비슷한 마음 맞는 동료 내가 샴쌍둥이라고 종종 말했다.
퇴사 통보라는 폭풍 속에서, 그 점심 한 끼는 잠깐이라도 숨을 고르게 해 준 작은 은식처였다.
아웃백의 음식 맛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그날 우리가 앉아 있던 테이블의 따뜻한 공기, 천장 조명 아래 은은하게 반짝이던 접시들, 그리고 동료와 나눈 묵직한 대화였다.
그날 이후로 아웃백은 내게 단순한 외식 브랜드가 아니게 됐다.
삶이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한 끼 식사는 사람을 다시 세우는 힘이 있다는 걸 알려준 ‘쉼의 장소’로 남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귀하게 대하고 있었나 생각해보게 됐다. 대부분의 날엔 예산을 따지고, 시간이 아까워 대충 끼니를 때우기 바빴다.
그런데 그날 아웃백에서의 식사는 달랐다.
넓게 트인 홀에는 고기 굽는 냄새가 은근히 퍼져 있었고, 신입 직원이 긴장된 어깨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장면도 아직도 기억난다. 최상의 서비스와 따뜻한 태도 덕분인지, 잠시나마 세상으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일하시는 분들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지불한 것보다 더 최상의 서비스를 받았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다 헛되지 않을 것이고 최근 나의 아저씨에서 봤던 멘트가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고.. 그래 내가 이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된다며 다독였다. 그렇게 한 끼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 나를 돌보지 못했던 나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자 다정한 배려임을 다시 배웠다. 휘몰아치는 감정 속에서, 그 점심 한 끼가 나를 다시 붙잡아 세웠다. 이제 앞으로 내가 원하는 곳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게 해 주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