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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Dec 19. 2021

북한 사람, 북한 여행

북한 사람, 북한 여행

오랜만에 TV에서 '남북의 창' 을 시청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10주기를 맞아 북한 전역에서의 추모 분위기에 이어, 김정은 위원장 집권 10년의 의미도 함께 부각했고, ‘수령 김정은’의 정통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내부 결속으로 코로나를 극복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최근에 매주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 지옥" 등을 보고 감동받아, 오늘은 또 무엇을 볼까 검색하다가 '모가디슈'를 선택했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으로, 김윤석, 조인성, 그리고 허준호 등 실력 있는 배우들이 열연했는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남북한 외교관과 가족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 극적이어서 몰입하며 보는 내내 재미있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당시 우리나라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이래 국제사회에 인정받기 위해 UN가입을 시도하던 중 소말리아의 한 표를 얻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던 시기였다.

북한도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외교전을 실시했는데, 그런 와중에 소말리아 내전이 발생하면서 소말리아 정부나 반군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이때 북한은 우호적이었던 이집트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거절당하나, 한국은 다행히 이탈리아의 도움으로 그동안 적대감을 보이며 대항하던 남북 외교관들과 가족들이 의기투합하여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북한과 한국 대사 일행은 탈출 과정에서 우정을 나누는 모습도 보였지만, 마지막에는 비행기 안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서로 모르는 척했던 씁쓸한 모습은 이 영화의 피날레였다.

오래전에 유럽에 출장 갔을 때 국제 전시회장에서 처음으로 북한 사람들을 봤는데, 그들이 내 주위를 서성거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그날 밤 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상담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붉은 배지를 달고 있는 북한 사람 2명이 앉아 있어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범을 잡으러 감히 호랑이 굴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중국에서 북경주재 북한 대외협력부(무역사무소) 직원들을 직접 만나 상담하였고, 그들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운영하는 식당에서 대동강 맥주와 단고기를 먹으며 함께 했으니 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당시 우리 회사는 통일부와 안기부(국정원)에 신고한 후에 대북사업을 했고, 그들을 만나기 전에 북한 주민 접촉에 대한 행동강령 교육을 받았으며, 만난 후에도 보고서를 작성했다.

담당자인 나는 부사장과 함께 택시를 타고 북경 외곽에 있는 허름한 오피스텔 앞에 내렸고, 정문에 대기하고 있던 북한 직원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상담실 벽에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어, 나는 대북 사업은커녕 이러다가 납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여기 누추한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다"며 미소를 띠며 커피를 끓였고, 60세 가까이 나이가 들어 보이는 간부(뚱보)는 "매일 남한의 주요 일간지 3개를 보고 있어, 자본주의 사회를 잘 알고 있다" 며 긴장의 끈을 푸는 듯한 립서비스를 보여주었다.

막상 상담을 해보니 그동안 중간 연락책을 통해 만들어진 서류가 일부 잘못되어, 나는 낡은 컴퓨터 앞에 앉아 독수리 타법으로 MOU를 재작성했는데, 그 30분이 3시간은 된 것 같았다.

아무튼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되었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에 그들의 차에 동승해 4명이 북경시내에 있는 개나리 식당에 갔다.

그곳은 천으로 가린 칸막이 지하식당이었는데, 손님은 우리밖에 없어 보였다.

술을 못하는 부사장은 미리 양해를 구해, 그렇지 않아도 소주 한잔만 먹어도 새빨개지는 내가 졸지에 술상무가 되었고, 몸을 뒤틀고 꼬집어 가면서 정신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ROTC 장교 시절 판문점 가까이에 있는, 비무장지대인 1사단 GP에서 4개월간 파견 근무했을 때 총구를 겨눴던 적들과 마주 앉아 이렇게 술자리를 같이 하다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날씨, 중국, 그리고 사업 얘기를 나눈 후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남한의 정치 얘기를 꺼냈고, 나는 조심스럽게 북한의 경제(무역)에 대해 주로 물었다.

아무튼 술값은 우리가 부담했는데, 명세서(중국어 표기)를 보니 50만 원 정도 나와서 "한국 같으면 20만 원도 안 나오는데 완전히 바가지 썼구나!"라고 생각하니 술이 확 깼다.

그때 뚱보 간부가 미안했는지, "7부 치마를 입은 여종업원을 쳐다보며, 우리 애들 곱지요!" 하며 딴전을 피웠던 것이 엊그제 같이 생생하다.

영화 '모가디슈'에서는 이념의 차이로 결국 각자의 고국으로 떠나는데, 언제 뭉쳐 한민족으로 같이 살게 될까!

아마 내 생애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지만, 예전에 "금강산과 개성 선죽교" 여행기회를 놓쳐 무척 아쉬운데 이참에 간절히 부탁해 본다.

"정은아!  그동안 전 세계 5 대륙의 주요 국가들은 대부분 가봤다. 그런데 내가 죽기 전에 북한을 여행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인데, 조만간 그 두 곳이라도 다시 오픈하면 안 될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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