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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Jan 09. 2022

남한산성 해프닝

"와!  서울시내가 다 보이네!  날씨가 맑아 더욱 좋구나! "


오랜만에 전 직장동기 넷이서 새해 처음으로 남한산성에 올라 소원을 빌며, 건강과 우정을 다졌다.


분당에 사는 A는 한동안 딸의 산후 시중을 들었다가

올 초부터 해방되었다며, 평소 책과 유투브를 통해 배운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특히 병자호란)까지의 해박한 역사지식을 자랑하며 수십 번 남한산성을 오른 등산가답게 둘레길을 친절히 안내하였다.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셔 못오는 줄 알았던 B는 일산에서 무려 2시간 가까이 먼 길을 오는 정성을 보였고, 송파에 사는 C는 내차에 동승해, 본관이 각기 다른 우리들 이씨(李氏) 4인방은 복정역에서 만나 남한산성으로 올라갔다.


반백수인 나를 포함한 우리 넷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좋다며 이구동성으로 실업자의 장점을 얘기하며 낄낄거렸고, 행궁 옆에 있는 조용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 수어장대, 남문 그리고 최근에 구축한 조선시대의 포진지까지 1시간 반 넘게 걸으며 코로나로 닫혀진 몸과 마음을 열었다.


우리들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는데, 재작년에 양평 개군면에 수백 평의 땅을 사서 비닐하우스를 지은 C는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어 요즘 매일같이 넷플릭스를 보며 소일한다고 무료함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자타공인 아마추어 역사학자인 A는 주말마다 방영하는 KBS TV 드라마 '태종 이방원' 을 본다며, 나의 조상 이화(의안대군, 이성계의 이복동생)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이화가 2번씩이나 왕자의 난을 일으킨 조카 이방원을 위해 충성을 다해, 나중에는 엄청난 녹을 받았다며 은근히 뼈대있는 가문의 자손임을 과시하였다.


이번 산행은 작년 11월 내 딸 결혼식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고, 그동안 차로 수십 번 올라갔지만 산성 둘레길은 가보지못해 겸사해서 연락한 것이었다.


하산 후에 우리는 한정식집에서 막걸리에 파전과 도토리묵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는데, 오늘만은 정치얘기는 하지말자던 남한산성 가이드인 A는 과거 홍콩지사 근무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재명과 윤석열 대통령 후보자까지 자연스럽게 언급해가며 매끄러운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얼굴이 불그스레 되었고, 얼었던 손과 발도 녹아 노곤해질 무렵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섰고, 복정역에서 헤어졌다.


~~~


나는 그날 저녁 모임이 있어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데, 일산에 사는 B의 집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왜 전화한 줄 알지?

모르는데...

아! 실은 휴대폰을 잃어버려 집에 가는내내 조바심 났지.

혹시 차 뒷좌석에서 휴대폰을 봤냐?

아니!

그래?  그럼, 그 한식당 이름이 뭐였지?

OOO이야! "


복정역에서 신호대기 중에 그가 허겁지겁 내리면서 놓고간 것으로 생각해, 나는 집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아들이 내 차의 뒷좌석에, 모친이 덮는 작은 담요 아래에 놓인 휴대폰을 발견했고, 나는 애간장이 타고 있을 B에게 목소리를 바꿔 즉시 전화했다.


"택시기사인데 남한산성에 가신 분 맞지요?

(이미 내 목소리를 알아차린 듯), 예!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리셨는데, 일산까지 배송비 30만원을 주셔야겠네요!

조금 싸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ㅋㅋ"


작년 봄에 넷이서 남산에 갔을 때 술에 떡이 되어 하산하면서 오락가락, 식당에서는 시끌벅적, 거의 반나절 인사불성이 되었던 친구가 바로 B였다.


그때 새로 산 고급 등산스틱을 놓고와서 남산 중턱에서 1km거리를 왕복해 찾았고, 이번 남한산성에서는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생활필수품인 휴대폰을 되찾았는데, 다음은 무엇일까?


심히 걱정된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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