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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Jan 23. 2022

씁쓸한 겨울

배신

살면서 이렇게
뒤통수친 적이 없다.
결혼 30년 만에
부모가 자식에게 실망 주네.

아들 다섯 딸 하나
어려울 땐 나부터 부르고
궂은일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해결해 주고
힘들어할 때
택배로 이것저것 보내주고

딸이라는 이유로 결혼 30년 만에  
돈 오백 주면서 큰소리치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말 아이러니하다.

부모의 속 마음을 모른다.
나도 세 아이 부모지만 그럴 수는 없다.

오늘 부로 나는 고아다.
부모도 형제도 없고, 친정이란 곳은 없다.

나 스스로 잘 살다 가자.
힘내라. 나 자신아 토닥토닥

~~~

어느 문학밴드에 올라온 '배신'이라는 슬픈 시다.

50대 후반인 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딸까지 세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사는 모습을 그녀의 다른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고단한 삶

"언제부터 평화가 깃들은 적 있었나?
어린 시절은 가난에 찌들어 눈 뜨면 풀베기해라 시키고
해 질 녘 서산으로 갈무리 지으면 아궁이 불 지피고 밥솥에
불 때는 일이 지겨웠다

어서 자라서 이 집 구석 벗어나야지 하면서 자랐다

(중략)

첫 단추가 단단히 꼬이니까 내 인생 전부가 뒤엉키네
이제는 실타래가 술술 풀릴 만도 한데 더 배배 꼬이네

딱 삼 년만  고생해주자 그 이후는 나는 정말 모른다
내 인생 챙겨보자  사람 구실 한번 하고 죽자

어야 자식들아 효도 좀 해라 늙은 어미 좀 훨훨 날아가게
고삐 좀 풀어다오  너무해 자식들이 원수여  
천하에 나쁜 자식들
굿바이  안녕"

~~

시골에서 6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나 궂은일을 마다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그녀의 시를 읽으면 무슨 사연인지 모르나 모친은 자기를 미워해 인연을 끊자고 아우성이고, 전립선 4기 부친은 잔정이 있어 미안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그녀가 쓴 "한잔 술, 내 아버지, 달님에게, 진실을 말하다, 어머니와 고구마, 긴긴 겨울" 은 그녀가 힘들게 살았던 어린 시절과 작금의 어려운 형편을 하소연하며 쓴 시인데, 특히 모친과의 갈등을 진솔하게 표현하여 읽는 내 마음이 아팠다.

'배신'이라는 시를 몇몇 친구들에게 보내니 의견이 분분했다.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설마 자기 부모에 대한 실망감을 시로 쓸까!  문장의 주체와 객체가 헷갈린다." "읽을 가치가 없다"부터 "문학의 기본인 솔직한 심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기법이 좋다."  등 다양했다.

어느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때 풀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 나중에 화병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 노래, 음식, 여행 등으로 해결하는데, 이 여성은 글로 남기고, 그것을 타인에게 공감을 유도하며 풀고 있다.

웃는 모습이 순박해 시골 아낙 같은 그녀가 그동안 나름대로 부모에게 효도했고, 몸이 아픈 딸도 잘 돌봐왔는데 왜 세상은 못 알아주는가 하는 넋 누리가 그녀의 시 속에 살아있다.

그녀의 다른 시 '어머니와 고구마'에서 남편이라고 할 것을 모친의 입장에서 봐 사위라고 썼고, 또 친정이라고 할 것을 처가라고 하는 등 일관되지 않고, 맞춤법은 커녕 단어도 제대로 선별하지 못해 기초지식이 부족하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술술 읽힌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망라하고 어느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고, 그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며 이렇게 문학밴드나, 더 나아가 시집을 내어 영원히 남길 수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고, 큰 죄를 저지르면 그 대가를 치르지만, 또 사소한 오해로 인해 전전긍긍하거나 불평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이라 평생 함께 갈 것 같았던 친구와 형제는 물론 부모, 자식 간에도 철천지 원수로 살아가는 것을 주변에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녀가 쓴 시 '진실을 말하다'를 보면,

"30 년  묵카둔 체증이 오늘 풀렸다
여차저차  친정 엄마는 앞뒤가 다르다  
오늘은 맑음 내일은 삐딱선

(중략)

아이고 두야 자기가 낳은 딸자식이 돈 받는 게 그리키 서럽나?  
아들자식 더 주려는 어머이 마음 나는 안다만
그래도 그건 아니다.
어머이도 욕심을 내려 놓치 못하네 끝까지 씁쓸하다
아버지랑 어머이는 우찌 그리 하늘과 땅일까?"

~~

모친에게 정말 원통하고 서러운 일이 있더라도, 그래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인데 표현에는 한계가 없다지만, 나 같으면  가정사의 치부를 일부러 드러내는 이런 글은 올리지 않을 것이다.

설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씁쓸하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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