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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Feb 17. 2022

나에게 PCR검사란

나에게 PCR 검사란

지난주 목요일 모친이 다니는 데이케어센터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어르신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빠른 시일 내에 PCR 검사를 받아 음성 확인서를 센터에 제출해야 했다.

그래서 모친이 송파보건소에서 오후 5시에 PCR 검사를 했는데 마감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해 보호자인 나도 받았고, 다음 날 아침에 모두 정상임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그 자료가 아주 요긴하게 쓰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며칠 후 일요일 낮에 동생이 관악산 정상에서 미끄러져 발목이 골절되어 헬기로 후송되었고, 경기도 관할지역이라 H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후에, 밤 10시쯤 우여곡절 끝에 일원동 삼성병원에 입원했다.

수술하는데 급히 보호자가 와야 한다기에 내가 마침 월요일 오전에 선약이 있어 아들을 보낼까 하다가, 아내가 PCR 검사를 받은 사람이 가야 한다기에 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밤 11시였다.

말하자면 백화점 등 다중집합시설은 휴대폰으로 백신 패스만 확인하면 되지만, 코로나 방역에 철저한 3차 병원에 보호자로 들어가려면 PCR 검사가 필수였던 것이다.

어렵게 통과해 보호자 패찰을 받고 병실에 도착하니, 간단하게 응급처치만 받은 상태라 환자는 진통제로 버티고 있었고, 결국 휴일이라 수술을 못해 그냥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발목에 물집이 잡혀 어제 보다 악화되었다며 담당의사가 수술시간을 잡아, 오후 4시에 전신마취를 한 후에  2시간 넘게 수술하였고, 깨어나 병실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7시였다.

골절상이 심해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 얘기로는 1차 수술을 하고, 2주일 뒤에 다른 부위에 2차 수술을 계획했으나, 다행히 교수님이 한 번에 수술할 수 있었다고 자랑(?)하였다.

~~~

병실 보호자는 한 사람이라 수술이 끝나도 오랜 기간 혼자서 간병하기 힘들어 매일 교대하기로 하였고, 나는 PCR 유효기간이 지나 새로 검사받으러 서둘러 송파구청 옆 보건소에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이었다.

러시아워라서 바로 옆 넓은 송파대로를 꽉 메운 차량대수만큼, 보건소 앞마당은 이른 아침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뱀처럼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 물어보니 PCR 검사 대기줄이었고, 지난주 모친과 함께 5분 만에 검사가 끝난 것과는 확실히 대조되었다.

어제까지는 그다지 춥지 않았는데, 오늘은 갑자기 영하 8도에 바람까지 차갑게 불어 체감온도는 15도가 되었지만, 처음으로 확진자가 9만 명을 넘어 혹시 나하고 걱정되어 온 사람도 많아 검사시간이 적어도 1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우주인처럼 타이벡 원단으로 보호복을 입은 안내원이 다가와 신속항원검사는 저쪽으로 가라고 하여, 내 앞에 대기인원이 몇 명 줄었지만 그다지 표시는 나지 않았다.

야외에서 10분쯤 줄을 서니 너무 추워 이럴 줄 알았으면 내복을 입거나, 손난로 핫팩이라도 몇 개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를 극복하고자 운동삼아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조금씩 줄어드는 대기선을 바라보는 것이 위안이었다.

송파구청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찻길을 넘어 30여 분 만에 양지바른 곳에 들어왔지만 꽁꽁 언 몸을 녹이지 못했고, 옆에 있는 대형 천막에 들어가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다.

내 바로 앞의 40대 아줌마가 전화한 지 몇 분 안되어 가족 2명이 어디선가 나타나 줄이 더 길어졌고, 그녀의 20대 아들은 추운데도 불구하고 슬리퍼를 신고 있어 놀랬다.

속으로, "와!  대단해!  군대는 갔나 왔나 보네!"
"이렇게 추운 날에 혹시 돈 받고 내 대신에 줄을 서주는 사람은 없나?  
"내가 오늘처럼 스타카토로 위 아랫니를 부딪혔던 적이 언제였던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드디어 10시 40분 천막 안으로 입성했으나, 그곳은 4줄이었고 대기인원도 엄청나 100명은 되어 보였다.

지금까지 따뜻한 천막을 기대했는데 한쪽에 대형 전기난로가 있지만 단지 3~4명을 위한 자리였고,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서있는 사람들이 사방의 큰 바람구멍을 막아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러분!  춥고 떨리는 사람은 다 내 주변에 모이세요!  뭉쳐야 삽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바깥을 쳐다보니 어떤 젊은 여자가 용수철처럼 깡충깡충 뛰었고, 어떤 학생은 춤을 추듯이 일정한 동작을 반복하며 추위를 달래고 있어, 그나마 휴대폰도 여유 있게 볼 수 있는 이곳 천막은 돈이 있고 없고 또한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오래 참고 기다리면 즐길 수 있는 시베리아 휴양지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장갑을 낀 손이 얼었고, 발가락도 마비되었으며, 움츠려 든 목과 어깨가 결려서 못하는 술이라도 몇 잔 마시면 금방 몸이 풀릴 것 같았다.

더구나 배뇨감도 느껴져,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자리를 뜰 수 없는 것이 더욱 고통이었다.

참자!  참자!  이 PCR 검사만 마치면, 어디 멋진 카페 창가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냥 바라보리라!

12시 10분!  드디어 PCR 검사가 끝났다.

군대 시절에도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내 평생 2시간 40분 동안 이렇게 벌벌 떨며 고생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PCR 검사의 유효기일이 겨우 3일이라, 다음에도 추우면 아들에게 대기 심부름을 시켜야겠다.

"그런데 알바비는 얼마를 주어야 하나?  시간당, 아니면 영하 1도 내려갈 때마다 얼마씩?  그것을 병산제로 계산해야 되나?"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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