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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Mar 13. 2022

오래 산다는 게

오래 산다는 게

"사람이 살다가 이런 날벼락이 어디 또 있을까요? 아무 이상없이 아침과 점심을 먹었고, 저녁 6시에 식사하려고 방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내가 보고 있던 글을 조금 더 보고 같이 먹자했는데, 잠깐 후에 보니 마누라가 마루 바닥에 털석 주저 앉아 있었다.


다가가 물으니 손목이 아프다고 하여, 급히 저녁을 준비하니 한술도 못먹어, 9시 30분쯤 자기 전에 다시 밥을 차려 조금이라도 먹으라니 한술도 못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쉽게 갈 줄을 생각지 못한 이 바보는 토요일 밤중이라 병원에 가볼 생각도 아니하고 잤다. 10시 30분경 마누라가 나를 깨워 손목이 아프니 파스를 붙혀 달라기에 그것을 붙혀준 게 나하고는 마지막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라 얘기하였고, 세수하고 다시 와서 또 일어나라고 했는데도 꼼짝도 안했다. 그때서 마음이 섬뜩하여 이불을 제쳐보니 얼굴은 백지장이었고, 손을 만져보니 얼음장이었다.


결혼한지 78년의 마지막을 이렇게 한마디 유언도 못들어 보고 사랑하는 마누라를 허무하게 보내버린 죄인이요, 멍청이가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야할지 암담하네!


그래도 우리 가족과 친척들의 뜨거운 위로를 고맙게 받으며, 코로나를 다 물리치고 만날 때까지 안녕!"


이 글은 올해 97세 백부께서 동갑인 백모님이 노환으로 지난 주 영면하신 것을 슬퍼하며 단체카톡에 올린 글이다.


내가 안양에 있는 샤브샤브 식당에서 백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한 때가 지난 1월이었는데, 이렇게 백모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실 줄을 몰랐다.


큰어머니를 볼 때마다 1970년 초에 인기있었던 TV드라마 '아씨'가 생각난다. 그런 부유한 양반댁이 아닌, 가난한 집안 7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힘든 세월을 보내셨다.


생전에 할머니가 부르실 때마다 150cm도 안되는 작은 체구의 큰어머니가 "예! 어머니!" 하면서 부엌에서 뛰어나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백부는 얼마 전에도 큰어머니가 그런 잠꼬대를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


어제는 친구와 통화했는데, 고속도로에서 차사고가 나서 큰일날 뻔 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말하자면, 트럭에서 떨어진 쇠뭉치가 앞차의 바퀴에 튕겨 날아와 친구 차(BMW)의 앞 범퍼가 박살나 수리를 맡겼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고 직후에 블랙박스를 잘못 건드려 충격당시의 영상이 없어 경찰서와 보험사의 도움을 받지못해 보험료 할증에다 1주일간 차 없이 생활해야 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하는데, 만약 그것이 친구차의 앞 유리창에 박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친구는 절대 트럭 뒤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얘기하지만, 이번처럼 재수없이 다른 차를 통해 발생한 간접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므로 가능한 운전하지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한달 전에 내 동생도 관악산에서 하산하다가 방심하여 발목이 골절되었고, 나도 장례식장에서 가방을 걸어놓은 의자가 무게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는 것도 모른채 앉으려다 꽈당했는데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 만일 엉덩이가 아니라 머리나 허리를 다쳤다면 어떠했을까?


더구나 혼자 사셨던 모친이 혈압약이 떨어져 단지 3일 늦게 병원에 갔는데 이것이 뇌경색으로 악화되어 황반변성에 치매판정까지 받을 줄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모든 것이 그리 길지않는 시간이었고, 또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라 늘 긴장하며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


큰어머니가 19살 어린 나이에 결혼해 수십 년간 힘든 시집살이를 했지만, 크게 앓아 누운 적이 없이 100세 가까이 살다가 조용히 가셨으니 호상이 아닌가!


나도 큰어머니처럼 아무 사고 없이 폐 안끼치고 살다가고 싶은데, 얼마 남았는지 재미삼아 꼬마처럼 손가락으로 계산해 본다.


"양쪽 주먹을 3번씩이나 잼잼하고도 남는데, 내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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