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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Apr 08. 2022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다녀와서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 길을 다녀와서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나 홀로 걸어가네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물결 위에 비치네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 처량한 달빛이여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마음 그리워져하네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콜로라도의 달밤'이라는 미국 민요다.

수년 전에 우리 부부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콜로라도강을 유람했을 때 한밤중에 내가 선상에서 그 노래를 불렀다. 그때 작은 보트를 운전하던 더벅머리 미국 청년은 정작 노래를 몰라 실망했는데, 그 주변 협곡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버킷리스트 1위에 선정된 '그랜드캐년'이었다.

그 후 나는 철원에 갈 때마다 50만 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용암지대가 형성된 주상절리 계곡을 '한국의 그랜드캐년'으로, 그 아래 흐르는 한탄강을 '한국의 콜로라도강' 이라고 생각했다.

2020년 세계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선정된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 길"을 며칠 전에 가족과 다녀왔다. 두 달 전에 그곳에 갔던 친구가 "아주 좋았다" 하여 날이 풀리면 가보려고 생각했는데, 최근 인터넷에서 "지난 4개월간 방문객 30만 명 돌파, 입장료 수입만 22억 원"이라고 소개되었다.

"와! 대단하네!"

이참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데 꽃바람이라도 쐬자며 아내에게 얘기하였고, 취업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들도 설득하여 일사천리로 추진했다.

한탄강 주상절리 길은 웅장한 그랜드캐년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접근성이 뛰어나고, 멋진 경관을 보면서 3.6km 잔도를 1시간 30분이면 즐길 수 있어 최근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거동이 불편한 모친과 동행할 수 없어 데이케어센터로 모신 후에, 9시쯤 출발해 쭉쭉 뻗은 포천 고속도로를 타고 철원 순담계곡 매표소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었다.

꽃구경 가자고 했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벚꽃은커녕 활짝 핀 개나리, 진달래도 드물었지만, 산과 들이 연두색으로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어 그곳에도 봄이 찾아왔다.

이미 1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어 2 주차장에 세웠고, 입장료는 만원인데 절반은 지역상품권으로 쓸 수 있어 5천원인 셈이었다.

주상절리 길은 철원군 갈말읍에 자리 잡고 있는 한탄강 협곡의 순담과 드르니 사이 절벽 구간에 조성한 일종의 경관 탐방로인데, 곳곳에 잔도와 구름다리 등을 설치해 걷는 동안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아찔함과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었다.

아내는 잔도에 들어서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바닥 철구조물을 보고 무서워했고,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출렁다리 때문에 나도 처음에는 휴대폰을 잃어버릴까 살짝 긴장되었다. 불과 몇 미터 가지 않았는데 잔뜩 겁을 먹은 아내를 가운데 두고 우리 셋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고, 튼튼하게 만들어 위험하지 않다고 설명하자 주상절리 절경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몇 분 지났을까 아내는 자신감을 얻었고, "와! 정말 멋있다!" 감탄사를 남발하였다.

예전에 서대문에 있는 안산 둘레길을 처음 가보고, "와! 누구 아이디어일까! 서울 한복판에 둘레길이라니!" 하며 반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탄강 주상절리 길에 와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냥 흙과 데크를 밟는 둘레길이 아니라 잔도를 만들어 매우 신선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 올 때마다 여름에 한탄강을 래프팅 하지 않으면 자연이 만든 신비한 기암절벽을 볼 수 없어, 우리 같은 여행자는 단지 고석정과 순담계곡 등을 잠시 보는 것이 전부여서 항상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중국 장가계처럼 천 길 낭떠러지는 아니지만 수십 미터 비탈진 계곡에 잔도를 만든 작업자들 덕분에 편하게 걸었고, 돌고래 바위와 돼지바위 등 재미있는 형상과 '한탄(漢灘)'이라는 지명답게 큰소리로 요동치는 여울을 바라보는 눈요기도 즐거웠다.

그렇지만 일부 그늘진 곳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있어 황토색 절벽은 완연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굽은 계곡과 바위를 바라보니 그곳에 희뿌옇게 새벽안개가 끼면 한 폭의 수묵화가 되고, 거기에 비까지 내리면 안평대군이 꿈속에 무릉도원을 방문한 것을 듣고 안견이 그린 바로  '몽유도원도가 아닌가!

눈 덮인 하얀 겨울이나, 울긋불긋 화려한 가을이 멋있지만, 기묘한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데는 수풀이 우거져 가려지는 여름보다는 오히려 지금이 적기라고 얘기하는 아내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진다.

그다지 더운 날씨도 아닌데 30여분 오르내리니 땀이 나서 전망대에서 잠시 쉬면서, "좁은 땅덩어리에 이런 천혜의 절경도 다 있네!"라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처음 우리가 내딛던 순담계곡의 일부 구간은 유리잔도여서 스릴이 있었고 오르막 계단이 많아 힘들었지만, 드르니 전망대 방향으로 가는 주상절리 길은 나무데크였고, 대체로 평평한 길이라서 걷기 편했다.

우리는 부자, 모자, 부부간 혹은 셋이서 한탄강을 배경으로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었고, 비디오 촬영도 하였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 ‘철원 한탄강 물 윗길’은 태봉대교과 순담 (2.4km) 사이 물 위에 부교를 띄워 만들었다는데 지난해  4개월간 14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밀접 접촉을 피해 야외 트레킹 코스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도 한탄강 주상절리 길과 물 윗길이 주목받게 된 요인이 아니었을까!

애초 나는 주상절리 길(3.6km)을 왕복할 계획이었으나 쉬엄쉬엄 걷다 보니 지쳐, 드르니 매표소에서 택시(1만원, 지역상품권)를 타고 다시 순담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는 '직탕폭포'를 바라보며 민물매운탕을 맛있게 먹었고, 또 1시간 달려 도착한 전망 좋은 '파인힐 커피하우스(동두천)'에서 분위기를 즐기며 차를 마셨다.

시집간 딸에게 오늘 찍은 사진을 카톡 하니 즉시 흰 토끼가 삐진 모습을 보여주는 이모티콘을 보내와 웃음이 나왔다.

"우왕!   나 빼고!  
흥! 칫! 뿡! "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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