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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Apr 17. 2022

부천 원미동 진달래동산을 다녀와서

부천 원미동 진달래 동산을 다녀와서

겨우내 죽은 듯이 앙상한 가지만 보였던 나무에서 연한 잎이 나더니, 어느새 하얀 목련, 노란 개나리, 그리고 연분홍 벚꽃이 연이어 피어 우리 눈을 즐겁게 하였다.

얼마 전에 SNS 설문조사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봄꽃"을 묻는 질문에 벚꽃을 꼽은 응답자가 40%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튤립(26%), 개나리(14%), 매화(10%), 진달래(5%), 목련(5%) 순이었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봄꽃 색깔’ 을 묻는 질문에는 벚꽃, 매화, 진달래 등 분홍(52%)이었으며, 그중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벚꽃도 멋있지만 나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얼과 풍류가 녹아있는 순수한 우리 식물인 진달래가 더 좋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나리가 멋있어 매년 노랗게 물든 서울 응봉산을 올라가지만, 어디 연분홍 진달래만 하겠는가!  그런데 어디를 가더라도 진달래 몇 그루 보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며칠 전에 나는 아내와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한 부천 원미산 (168mr)에 다녀왔다.

부천 가는 지하철에서 지도를 보니 그곳은 말 그대로 봄옷을 입은 춘의동(春衣洞)이었고, 멀고도 아름다운 원미산(遠美山)이라 이름부터 재미있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입구에서 얼마 들어가지 않아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詩碑)가 보여 기념사진을 찍었고, 시인들이 가장 아름다운 가사로 선정한,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리며 둘레길을 산책했다.

가수 백설희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가수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는 너무 애절해 눈물이 날 지경인데, 첫 가사인 '연분홍 치마'는 진달래 꽃무늬라 생각하며 그의 노래를 들었다.

전날까지 갈까 말까 망설이던 아내는 막상 와서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 꽃동산을 보니 잘 왔다며 계면쩍했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장관이어서 입이 쩍 벌어졌다.

때마침 벚꽃도 만개해 진달래와 잘 어울렸지만, 마치 핑크색 물감을 더 풀은 듯이 화려한 진달래는 당연히 원미산의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보기 드문 하얀 진달래도 한몫하며 상춘객의 발길을 붙들었고, 어디서 찍어도 누구나 인생 샷 몇 장은 거뜬히 남길 수 있었다.

부천 종합운동장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어, 오래전에 차를 몰고 몇 차례 진달래 꽃 축제로 유명한 강화도 고려산에 갔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교통편이 좋았고, 그다지 높지 않아 체력 부담이 없었으며, 또 관람코스도 다양해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아 더욱 좋았다.

'원미동' 하면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예전에 소설가 양귀자가 쓴 '원미동 사람들' 을 읽고 감동받았는데, 그때는 소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생경하게 느꼈다.

언제 또 와보겠냐 하면서 붉은 꽃 무더기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를 벗어나 10 여분만에 원미산 정상에 오르니, 주변 지역은 소설에서 얘기한 거칠고, 가슴 아픈 동네가 더 이상 아니었다.

꽃 향연을 펼치는 원미산에 걸맞게 마치 UFO가 내려앉은 듯한 운동장과 건물들은 이국적이었고, 쭉쭉 뻗은 넓은 길과 잘 조성된 공원이 많아 내가 살고 싶은 신도시였다.

점심때가 가까워 하산했고, 미리 맛집을 알아봐 두었지만 아직도 봄바람이 불어 따끈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아내를 위해 부천 종합운동장 주변을 걷다가 우연히 찾은 박승광 해물칼국수집은 기대 이상이었다.

오랜만에 진달래를 원 없이 보았고, 처음으로 원미산을 오르며 운동하였으며, 숨은 맛집에서 식도락을 했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날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3절)

나에게 열아홉 시절은 화살처럼 휙 지나갔고, 지금도 황혼 속에 슬퍼할 나이도 아니나, 봄의 전령사인 꽃들과 함께 노랫가사처럼 그냥 "봄날이 가는 것"이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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