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마케터에서 블록체인 PM이 되기까지
약 2년 전 나는 교대근무자를 위한 앱 서비스의 1인 마케터로 일했다. 콘텐츠 제작부터 SEO, 광고 집행, 이벤트 기획까지 거의 모든 마케팅 업무를 혼자 담당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업계에서 유명한 시니어 마케터의 퍼포먼스 마케팅 강의를 찾아 듣고, 마케팅 관련 책도 읽고,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해가며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성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직접 제작한 광고 소재로 집행한 페이스북 광고는 앱 다운로드로 이어지지 않았고, 앱스토어 광고 또한 단가가 특정 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콘텐츠와 SEO에서는 성과가 있었다. 발행하는 콘텐츠마다 검색 상위에 노출되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앱 다운로드로 얼마나 유입되는지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없었다.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니 흥미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신감도 잃기 시작했다. 남들은 그로스니 퍼포먼스니 곧 잘하던데,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그 무렵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일정만 확인하고 앱을 종료하는 것이다. 리텐션이 곧 수익인 상황에서, 리텐션을 올릴 방안이 필요했다.
나는 그 방안으로 교대근무자를 위한 커뮤니티를 떠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대근무자 커뮤니티가 없었기 때문에 지역 맘카페나 직종 별 카페로 화력이 분산된 상황이었다. 교대근무는 9 to 6 근무와 패턴이 완전히 다르다 보니 그들만의 공감대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을 나눌 커뮤니티가 부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앱에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성화시킨다면 기존 유저들의 리텐션도 올리고, 커뮤니티를 위해 유입되는 신규 유저들도 생길 거라 기대했다.
먼저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앱을 모조리 사용해보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에브리타임, 다음 카페, 네이버 카페 등 다양한 커뮤니티 앱을 비교해보며 우리 앱에 필요한 기능을 뽑아보았다.
그리고는 그 기능들을 우리 앱에 어떻게 구현할지 화면을 그렸다. 이전에 UX/UI 디자인 과정을 수강한 적이 있어 기본적인 개념과 툴 사용 방법은 익혀둔 상태였기 때문에 머릿속에 구상한 걸 대략적으로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능 명세서도 양식을 받아 작성해 보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기획한 화면을 팀원들에게 공유했는데, 생각보다 팀원들의 반응이 좋았다. 추후에 꼭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로 지금은 반영되어있다!)
평가가 좋아서 만족스러움이 큰 것도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이 즐겁고 설레었다. 오랜만에 일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마케팅보다는 기획이 하고 싶구나.
그때부터 직무 변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마케팅을 제대로 한지 1년도 안 된 내가 직무를 바꾸는 게 맞는 걸까 하는 걱정에, 기획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서도 마케팅을 부여잡고 한 달을 보냈다.
용기 없이 고민만 이어가던 때, 마침 예전에 인턴으로 근무했던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기획 파트에 공석이 생겼다. 정말 좋은 타이밍이었고,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를 어필했다. 내가 왜 기획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걸 어떻게 잘 해낼 수 있을지.
감사하게도 회사는 내 열정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주셨고, 덕분에 기획 직무로 이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케팅과 미련 없이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