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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Oct 15. 2024

나는 위험한 상상을 한다

내 상상 속에서 그는 파란 다이아몬드를 서둘러 삼킨다.

  낱장의 처방전을 접수창구에 들이밀었다. 먼저 맡긴 처방전을 준비하는 중이라 잠시 앉아서 기다려야 한단다. 그래서 볕 잘 드는 약국 구석 자리, 긴 의자에 가 앉았다. 내 등을 큰 팔로 보듬어 안는 태양의 온기가 내 안에 있는 병을 나아라, 나아라 한다. 

  그때, 스키니진에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한 여자가 약국에 들어섰다. 낮잠을 즐긴다는 그녀는 밤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인 졸피뎀을 챙겨 받았다. 약사는 약을 건네며 경고했다. 제발 수면제에 의존하지 말 것. 그리고 절대 낮잠을 자지 말 것. 하지만 약사의 설명을 듣는 그녀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사람의 몸이 글라스캡처럼 투명하면 좋겠다. 먹은 약이 몸에 들어가서 어디로 가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과연 약을 함부로 입에 털어 넣을 수 있을는지. 

  약에 의존한다는 건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싼 싸구려 사탕을 먹는 것이다. 예쁜 포장지에 먼저 마음이 가고, 그다음엔 달콤한 맛에 의존하게 되면서 다른 음식엔 입도 대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대가는 몇 개의 충치와 몸 구석구석 쌓여가는 불필요한 살덩어리다. 의존이 아닌 의지가 필요한 순간이다. 

  내 상상 속에서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한입에 쏟아붓는다. 한 주먹이면 되려나. 그건 번거롭게 속만 게워내야 할 뿐이다. 그럼 한 통쯤 털어 넣는다면 그녀는 원하는 대로 영원한 잠에 들 수 있을까.

  그녀에 대한 상상이 사라져갈 때쯤, 배가 퉁퉁한 중년 남자가 걸음을 터벅거리며 약국에 들어섰다. 그는 포커판에서 판돈을 거는 도박꾼처럼 혈압약인 로잘탄을 받고, 메토프로롤을 더 얹었다. 알약들은 오렌지색 통으로 착착 군화 소리를 내며 전투를 위해 걸어 들어갔다. 

  좋은 것도 과하면 위험하다. 맛있는 음식도 그렇고, 권력도 그렇다. 신께서 바다가 땅을 덮치지 못하도록 그 한도를 정하신 이유는 필요한 만큼만 가지란 뜻이다. 그 선을 함부로 넘는 자들은 배탈이 나 위아래로 넘치게 먹었던 것 모두를 쏟아내야만 한다. 도박판에서 돈을 따도 결국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또다시 내 상상 속에서 그의 건망증이 알약 하나를 더 털어 넣게 한다. 평소보다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은 떨어진다. 고혈압으로 쓰러지면 병원에 옮길 수라도 있지, 저혈압은 쓰러지면 그 자리에서 죽기 일쑤라던데.

  중년 남자가 다시 터벅거리며 약국을 나가고, 이번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약국에 들어섰다. 잠시 후 그는 몇 불 안 되는 약값 흥정을 위해 약국이 떠나가라 소리를 높였다. 약값은 보험회사에서 정해주는 거라 약사 맘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주변을 힐끗 둘러보다가 목소리까지 낮추며 상체를 약사 쪽으로 가까이 밀어 넣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약국 안이 너무 조용한 나머지 내 귀에도 그 비밀 이야기가 새어 들어왔다. 그는 파란 다이아몬드를 찾고 있었다. 한 알에도 고가에 팔리는 그것, 비아그라를 위해 드디어 그의 지갑이 열리고 프랭클린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약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것은 그저 심장 때문에 복용하는 것이라며 변명했다. 

  모든 약은 작용과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생각지 못했던 좋은 부작용도 존재한다. 세상사도 그렇지 않던가. 내가 선택한 길에 예상 그대로의 작용도 존재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따르기도 한다. 약사 말의 단 몇 퍼센트만 걸린다는 부작용.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다. 그리고 나쁘기만 할 거라 생각했던 부작용이 작용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런 이유로 작용과 부작용은 욕심과 직결된다. 사람들은 더 좋은 작용을 얻기 위해 큰 부작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작용만 붙들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그 어떤 부작용도 만나지 않을 거란 믿음은 평소 내 미래에도 걸지 않았던 도박일 뿐이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더니, 인간은 욕심의 부작용으로 모두 죽는가 보다. 

  내 상상 속에서 그는 파란 다이아몬드를 서둘러 삼킨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과연 그것이 그의 심장에 작용했을까, 아니면 신세계를 여는 부작용이 일어났을까. 다만 복상사로 볼썽사납게 병원 가는 일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약사가 드디어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받은 약은 위장약, 오메프라졸 이십 밀리그램이다. 그것은 한 통을 다 털어 넣어도, 한 알을 더 먹어도 나를 영원한 잠이나 신세계로 이끌지 않는다. 

  이제 서서히 수그러드는 등의 온기가 냉기로 바뀌며 내 안에 없던 병도 나라, 나라 한다. 

  나는 위험한 상상을 한다. 한가한 약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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