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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서진 Oct 05. 2020

고양이 K의 119 구조 소동

 울 집 냥이 좀 구해주세요!

 * 본 에피소드와는 관련 없는 사진임 ^^



   내 평생 119에 도움을 요청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간혹 TV에서 소방대원분들이 벌집 제거 또는 잠긴 현관문 때문에 출동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저런 일에 왜 119를 부르지? 몰상식한 사람들 같으니"하며 혀를 끌끌 차던 나였으니까.


...그런 비난은 섣불리 해선  안된다.

 

   K를 입양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토요일 오후.  K를 데리고 공원에 갔다가 쫄쫄이 조깅복에 마스크로 무장한 여성로부터 옐로카드를 받은 이후 (‘마스크 우먼의 기습 공격’ 편 참조) 동반 산책을 포기한 지 한 달여 지난 때였다. 그 날 아침부터 남편은 나를 비난했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 예의조차 모르는 여자 때문에 아이를 평생 집 안에만 갇혀 지내게 할 거냐고. 하지만 그때 이미 나는 고양이는 안정된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화된 상태였고, 남편은 나의 변화된 인식은 타인의 협박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장했다.


   산책을 시켜라, 안된다 하는 썰전이 벌어진 후 삼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남편은 주섬주섬 일어서며 “안 되겠어. 날도 좋은데 바깥바람이라도 쐬어줘야지.”하고는 K를 이동장에 들어가게끔 했다.

  “어디 가려고?”

  “요 앞 놀이터.”

  “애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잠깐 나가서 애가 어떤지 반응만 볼 거야.”

   남편이 당당하게 나간 지 5분이 채 지났을까? 핸드폰에 남편 번호가 떴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큰일 났어. K를 놓쳤어.”

  “어딘데?”

  “집 앞.”

   쏜살같이 달려 나가 보니 당황한 표정의 남편이 서 있었고 옆으론 문 열린 이동장이 보였다. 분노가 치밀었다.

  “어쩌다 그랬어!!”

  “주위를 좀 더 잘 보여주려고 이동장 문을 아주 쪼금 여는데 슉, 하고 빠져나갔어."

  "어디로 갔는데"

  ".... 저기”

  

   남편은 놀이터 한편에 있는,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낡은 환기구를 가리켰다. 나는 남편에게 꼼짝 말고 K가 들어간 입구를 지켜보라 하곤 집에 달려가 K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 나왔다.

   주차장은 너무 넓었고 (이렇게 넓은 곳이었나?) 주차된 차들로 인해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에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던 나는 K에게 간식을 줄 때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발견하시면 집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발 좀 나와라... 그렇게 10여분을 헤맸을까? 위쪽에서 “냐아~”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퍼뜩하고 올려다보니 저어 높은 곳, 주차장 대들보 위에서 K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경비실로 달려가 사다리를 요청했지만 경비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까지 닿는 사다리는 없어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K는 여전히 그곳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쩌지... 하며 난감해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 동물을 구출하는 119의 영상이 반짝, 떠올랐다. 맞아. 119! 하지만 뒤이어 울려오는 앵커 멘트. “일부 부주의한 시민들의 생활성 민원 때문에 119는 본연의 임무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손은 이미 핸펀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119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집 고양이가 아파트 주차장 천장에 있는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난처함) 혹시 다른 곳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으신가요.”

  “관리사무소에서도 너무 높아 손쓸 수 없다네요. (몸이 절로 굽혀진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지)... 현재 저희 지역에 별다른 사건이 없으니 일단 출동하겠습니다. 하지만 구조 중에라도 다른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떠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네에네에 ~ 물론이죠. 정말 감사합니다”

   잠시 후, 119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사다리가 걸쳐지고, 구조요원이 올라갔다. 그런데, 그때까지 꼼짝 않고 앉아있던 K가 쏜살같이 대들보 반대쪽으로 도망가는 게 아닌가.

   K가 너무나 야속했다. 차라리 어디 틈에 끼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였으면.... 하며 녀석이 이동한 곳을 무심히 바라보는데.... 앗, K의 바로 옆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녀석이 들어온 입구였다.  


    “저기가 바로 고양이가 들어온 곳이네요. 제가 밖에서 저 구멍을 통해 잡을 수 있는지 볼게요.”

  나는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리고 함께 온 구조요원분이 “여기가 입구인가요?”하는 물음에 대답할 사이도 없이 무작정 상반신을 입구에 쑤셔 넣었다. 머리가 들어가면서 어깨 주변에서 빠직, 하며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뿌연 먼지가 눈 앞을 가렸다. 그렇게 내 상반신은 환기구 입구를 부수며 돌진했다.   

  

   주차장 천정에 거꾸로 매달린 내 눈 앞에 K의 모습이 들어왔다!  K는 위쪽에서 불쑥 등장한 내 얼굴을 보곤 깜짝 놀란 듯 또다시 반대편으로 도망가려 했으나 사다리에 대기중인 구조요원을 보곤 움찔하며 나를 다시 보았다. 나는 그때까지 꼭 손에 쥐고 있던 간식을 흔들었고, 다른 냥이들처럼 간식 최고주의자인 K는 내게 서서히 다가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침내 K의 입이 간식에 닿으려는 순간, 나는 남은 한 손으로 K를 꽉! 움켜쥐었다. 그 이후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정신을 차려보니 K를 끌어안은 채 놀이터 바닥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아, 살았구나.

   

   또다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무전기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오고 구조요원 분들이 재빨리 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진짜로 급한 일이 생겼나 보구나.... 감사 인사를 드릴 정신조차 없던 나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 떠나는 119 차량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집에 들어서 때, 현관 거울로 내 모습이 보였다. 머리카락은 산발이었고, 얼굴엔 긁힌 자국이 여기저기 보였고, 팔에선 피가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털썩, 소파에 앉는 순간 K를 잃어버렸다는 전화를 받고 뛰어나간 순간부터 아이를 안은 채 주저앉은 모습까지 한 컷 한 컷이 리와인드되었다. 가장 선명한 장면은 119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남들 욕할 거 하나도 없어. 날 보라고. 고작(?) 주차장 천장에 올라간 고양이를 내려달라고 119를 요청했잖아.

  하지만 동일한 상황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분명히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며 또다시 애원했을 것이다. 그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지.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머릿속이 텅 비면서 이성이건 뭐건 아무것도 끄집어내지 못한 채 어릴 때부터 달달 외어온 숫자 버튼을 눌렀던 거야.  

 

   나의 자아성찰이 이루어지는 동안, 소동 내내 줄곧 눈치만 보던 남편은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피신했고, K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여유롭게 거실을 어슬렁거렸다.


   감사합니다. 119 구조요원님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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