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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무 Jan 05. 2021

넷플릭스 추천 영화 <인턴>

별 걸 다 도와주는 사람

우연히 영화 '인턴'을 봤다. 나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사람 얼굴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에 (특히 백인이나 흑인의 경우 다 똑같아 보임) 주인공이 유명한 배우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몰입이 더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아니라 나에게는 영화 속 인물로 바로 인식되기 때문에 감동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커진다고 할까.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70대 노인이 열정적인 30대 대표를 만나 (그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 좌충우돌 직장생활을 그린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남들은 근무 시작 전에 노트북을 열고 현대적 기계들을 쭉 늘어놓을 때 할아버지는 최신 노트북 옆에 아날로그 시계와 계산기를 세팅하는 장면이 너무 웃겼다.


한때 잘 나가는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할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시대의 흐름에 한창 뒤떨어져 맡을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다. 세탁소 심부름을 하거나 허드레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턴 일을 근근이 이어간다. 이 장면을 보면서도 급격하게 변하는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의 모습이 보여 씁쓸했다.  나도 얼리 어답터(early adaptor)와는 거리가 멀어서 블루투스 이어폰도 사용법을 한참 검색하고 째려보던 사람이기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나의 미래 모습이기도 했다.


이렇게 기술적으로는 뒤떨어져 있을지 몰라도 할아버지는 다양한 경험과 삶의 지혜가 가득해서 젊은 사람들의 상담도 잘해주고, 진심으로 남의 필요를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도 있다. 따뜻한 아빠처럼 자상하게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민감하게 필요를 채워준다고 해야 하나.

이런 모습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불필요한 간섭을 한다는 의미로 오지라퍼라며 조롱을 살지 모르지만, 타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따뜻한 모습, 변함없는 친절에 주위 사람들은 감동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한편, 슈퍼맘에 워커홀릭인 여주인공은 밖에서 보기에 화려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회사 대표지만, 가정에서는 이혼 위기에 놓여있고 고민도 털어놓을 상대가 없는 외로운 처지이다. 30대 젊은 대표의 별별 심부름을 다 해주는 70대 인턴은 장면 장면 안쓰럽기도 하고 자상한 아빠처럼 언제나 도움이 필요할 때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같기도 한다. 어떤 순간이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뒤에 있는 사람.


이 영화를 보고 SNS에 후기를 남겼더니 미국은 개인주의가 특히 심한 사회이기 때문에 따뜻한 정을 찾을 수 없어 환상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놓은 거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틀렸다. 난 이렇게 희생적이고 지치지 않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현실에서 만난 적이 있다.


 미국에서 만난 튜터 아저씨가 바로 이런 인물이었다.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지역 도서관의  영어 프로그램 신청을 했다. 주로 퇴직한 노인들이 원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이민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무료로 기부하는 사람들이니  어느 정도 인격은 검증된 분들이지만, 우리가 만난 튜터는 정말 더 특별했다.


전직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튜터는 남편과 나에게 1:1로 영어 수업을 해주셨다.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우리에겐 영어보다 더 급하고 힘든 문제들이 많았다.


때로는 아이가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도 있었고, 우리 집에 사건 사고가 있을 때도 있었다. 사실 그분의 공식적인 역할은 영어를 가르치는 것까지였지만 우리를 잘못 만나 자꾸만 책임이 끝도 없이 늘어났다. 


영화 '인턴' 속 주인공 할아버지처럼 튜터 아저씨는(튜터는 가정교사라는 뜻이고, 아저씨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았는데 우린 친근하게 '튜터 아저씨'라고 불렀다.) 과하게 친절하셨다. "어디까지 도움을 받아 봤니?"라고 하면 정말 별의별 걸 다, 모조리 도움을 주셨다.


처음에는 우리가 이사를 계획하면서 리얼터(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날 때 항상 동행해 주셨다. 외국인인 우리가 허술하게 보이면 집을 절대 빌려주지 않을 거라고 집을 보러 다니는 일을 같이 해 주셨다. 메일을 대신 보내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계약을 할 때 꼼꼼히 챙겨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우린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이사를 했다.


타향에서 주택을 관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떤 때는 굴뚝(산타 할아버지가 타고 내려오는 그 굴뚝 맞다.) 뚜껑을 닫아 놓지 않아 날아다니던 새가 집안으로 들어오기도 했고, 두더지가 마당을 모조리 파놓기도 했다.


아저씨는 그때마다 나타나 사다리를 가져와서 지붕 위에 올라가 굴뚝 뚜껑을 덮어주시기도 하고,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흙바닥에 엎드려서 두더지가 파 놓은 구멍을 막아주시기도 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자라나는 잔디 관리를 우리가 제대로 못한다고 잔디 깎는 기계를 가져와서 앞뒤 마당의 잔디를 다 깎아주기도 하셨다.


미국 중부의 여름 날씨는 40도 이상이라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막 흐르고, 기계도 무거웠는데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고생하시는 모습에 우린 어쩔 줄 몰랐다. 


아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신 이메일을 보내고, 선생님 상담 때도 기꺼이 동행해 주셨다. 중에는 우리의 진로 상담, 인생 고민을 같이  정도로 아빠 같은 존재가 되어 주셨다. 다시 "인턴" 영화로 돌아가면 할아버지(로버트 드니로)가 대표(앤 해서웨이)의 별의별 부탁을 다 들어주고 어깨도 내어주고 등까지 두드려주었던 그 모든 일들을 기꺼이 감당하신 것이다.

이런 성의는 우리가 미국을 떠나 귀국 이사를 할 때도, 마지막 은행 잔고를 정리할 도, 심지어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도 계속이었다. 항상 우리 편에서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온유한 얼굴, 따뜻하게 베풀어주시던 그 모습이 영화 속 인물과 겹쳐져서 영화가 끝난 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가 그런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분한 사랑이고 뜬금없이 선을 넘는 호의였다. 나중에는 정말 가족 같아서 막내를 출산할 때 사모님과 함께 병원에 오셨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불도 손수 만들어서 선물하셨다.


지금도 그 선물을 보면 울컥할 때가 있다. 한 조각 한 조각 이어 붙여 정성스럽게 만든 퀼팅 이불은 아무리 솜씨가 좋고 돈이 있어도 해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해도 결국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따뜻한 배려, 약자를 생각하는 선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소중한 가치로 여겼던 것들이 기술의 변화라는 거대한 산 앞에 속절없이 사라진 듯하다. 


옛사람의 지혜와 따뜻함은 현란한 과학 기술과 개인주의로 허무하게 대체되는 듯하지만,  영화를 통해  세대 간 기술적 차이나 가치관의 변화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2021 새해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1번 영화, <인턴> 리뷰이자 우리 튜터 아저씨 자랑이. 기회가  된다면 꼭 한국에 모시고 받았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 싶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런 멘토의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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