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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무 Aug 09. 2021

<서평> 숨결이 바람 될 때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책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이 30대 중반부터는 본인의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고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갈 시기이다.


일을 배워가는 시기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전문성도 발휘할 수 있는 삶의 절정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한창 달리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아직 반환점에도 도달하지 못한 시기, 더욱 스피드를 올려 전력 질주해야 하는 중요한 타이밍에 저자는 암에 걸린다.


이렇게 영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질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는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높은 연봉을 제시받는 상황에서 폐암에 걸린다. 아내와의 불화가 오히려 어려움을 맞게 되자 함께 시련을 극복해 나가면서 아이를 갖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


병에 걸려 자포자기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다시 의사로서의 자리로 복귀하여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내려고 노력한다.


물론 병에 걸린 순간의 당황한 마음, 좌절감, 통증으로 인한 고통도 글에 녹아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텐데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해 나가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그 시점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한다. 즉, 죽음에 이르는 시점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것일 뿐 남보다 엄청난 저주를 받았다거나 절망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통찰도 하게 되었다.




나도 작년에는 100세까지 장수하셨던 외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소재로 굳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금기인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지금 우리 가족의 행복이 20년, 30년 후에도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나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크리스천으로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고, 그곳에서 믿음의 조상들과 우리 가족들이 기쁨의 재회를 할 것이라고 어려서부터 생각해왔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거나 막연하게 두렵다거나 하는 감정은 크게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나 죽음의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두렵다.


허리나 다리가 쑤시는 고통도 참기가 어려운데 내 모든 장기가 멈추고 마지막 호흡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잠을 자듯이 하늘나라로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안락사처럼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기술이 발전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왔다.


이 책에서 의사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의미 없는 생명연장을 하지 않고 (인공호흡기 등에 의지해 숨을 쉬는 등) 모르핀을 맞으면서 통증 없이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평화롭게 눈을 감는 장면을 읽으며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모르핀을 처방해서라도 고통을 잊게 해 준다고 하는데,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면 인생에서 어떤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지가 더욱 분명해진다. 저자도 기대 수명이 10년일 때와 5년일 때, 1년일 때의 삶의 목표가 달라진다는 말을 한다.


불가능하지만 생의 남은 날을 알 수 있다면 삶을 더 의미 있게 채워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자유롭게 걱정 없이 즐기면서 사는 것도 중요하기에 차라리 모르는 지금이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재미있는 소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많은데 굳이 죽음에 대한 주제에 손이 먼저 가는 이유는 아직도 외할머니의 소천으로 인한 슬픔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리 장수하더라도 가족의 죽음에는 호상이란 없다는 것, 그리움과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겠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저자는 암과의 사투와 죽음, 가족과의 이별을 다루고 있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의사로서의 냉정함을 가지고 풀어나간다. 


오히려 담담한 서술에서 느끼지 못했던 슬픔을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가 책을 마무리하며 덧붙인 글, 저자와 아내와 어린 딸아이가 함께 웃으며 남긴 가족사진을 보며 느끼게 되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우리 모두는 어느 때에 마지막 숨을 내쉴 것이고, 우리의 자손들은 그 호흡을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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