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얼마나 일반화된 개념이면 금수저, 흙수저의 뜻풀이가 포털의 시사상식사전에도 올라있다. 씁쓸한 현실이다.
과거엔 출생에 따라 신분을 나눴지만 수저계급론은 돈에 따라 신분을 구분하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카스트 제도가 되었다. 하긴 서양 속담에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말이 있으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출생과 빈부에 따른 희로애락과 계급갈등은 사라질 수 없는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금수저라고 다 성공하고, 흙수저라고 다 망했을까? 위대한 위인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흙수저 태생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되기도 하고, 세계 대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우리도 금수저는 못될망정 동수저나, 운이 좋으면 은수저까지라도 가야 되지 않겠는가!
금수저는 못될망정 동수저라도...
나는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난 전형적인 흙수저다. 감사한 것은 교육열이 높고, 자식이라면 끔찍하게 생각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헌신적인 사랑과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대 중반에 아버지를 여의고, 나는 소녀가장이 아닌 처녀가장으로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지금껏 남편 병수발과 자식 걱정을 도맡아 해온 마음 여린 어머니 대신 내가 가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쌍한 엄마 대신 내가 고생하는 게 낫지’하는 생각은 세상 모든 맏딸들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나는 프리랜서 방송작가 생활을 접고 취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벌이가 좋을 때는 월수입 몇 백만 원이었지만, 좋지 않을 때는 일이 없어 석 달씩 놀기도 했다. 불규칙한 프리랜서 생활로는 돈이 모이지 않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자신도 없었다.(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철딱서니가 없어 돈을 모을 줄 몰랐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당시 내 통장잔고는 70만 원 정도였다.
회사에 취직을 하니 박봉이지만 매월 일정한 고정수입이 들어왔고, 적금도 붓고, 돈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때부터 참 열심히 살았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사회 초년생 시절, 친구들은 명품 백을 모으고, 해외여행을 가고, 연애하기에 빠져있었는데, 난 그런 것들은 하나도 안 부럽고, 부모의 도움을 받든 결혼 해서 신접살림을 차리든 일찌감치 부동산을 취득한 친구들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회사 빌딩 로비층에 있는 은행을 출입문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주말이면 유명 재테크 강사의 강의를 찾아다녔다. 투잡, 쓰리잡을 뛸 때도 있었고, 책도 재테크, 부동산 관련 서적만 죽어라 읽었다.
그리고 7년 후, 나는 내집마련에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금수저와 흙수저의 경계는 위급한 상황에서 돈줄이 있느냐 없느냐, 비빌 언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돈 많이 드는 예체능을 전공하려면 ‘엄마의 정보력+아빠의 무관심+할아버지의 재력’이 삼박자를 갖춰야 한다는 말처럼,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나 경제적으로 비빌 언덕이 있으면 인생의 변곡점을 훨씬 부드럽고 수월하게 넘어가는 것 같다.
또래보다 빠르게 아파트를 장만한 친구들도 대개 ‘본인자금+은행대출+모자라면 부모님 도움’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만 해도 순진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나는 은행대출도 빚이라고 생각해 온전히 내주머니의 먼지 한 톨까지 탈탈 털어야만 했다. 비빌 언덕이 없었다.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과감한 투자는 꿈도 못 꾸고, 안정지향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욜로(YOLO)냐 파이어(FIRE)냐, 그것이 문제로다!
힘든 시기를 지나오니 후배들 중에서도 금수저, 흙수저가 보이고, 흙수저 중에서도 작은 부자로 발돋움하는 친구들이 눈에 띈다.
후배 J는 결혼 전 월세 30짜리 원룸에 살았고, 친정은 반지하 빌라에 살았다. 결혼과 함께 시댁으로 들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J는 3년 후, 대출은 물론 영혼까지 끌어 모아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20평대 아파트를 장만하고 독립했다. J가 맞벌이를 하며 남편과 함께 열심히 대출금을 갚아나가던 중 동네에 지하철역이 생긴다는 소문과 함께 아파트값이 3배 가까이 뛰었다. 현재 J는 아파트는 전세를 놓고, 용인 타운하우스에 전세로 들어가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결혼 8년 만에 얻은 2세의 육아에 전념하며 틈틈이 알바도 뛰고 있다.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된 후배 S는 알뜰살뜰 근검절약으로 조금씩 살림을 늘려간 케이스다. 남들 아웃백에서 생일파티할 때 S는 집에서 풍선 매달아가며 아이들 생일파티를 챙겼고, 남들 수제케이크 맞춰 선생님 찾아갈 때 S는 손수 약밥을 찌고 포장해 선생님을 만났다. 남편은 성실했으나 벌이가 많지 않았는데, 알뜰한 S는 부업으로 반찬값을 벌어가며,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25평 아파트를 샀고, 중학교 들어갈 때 32평으로 늘려갔다. 고등학교 입학 땐 언덕 위의 아파트에서 내려와 지하철역 3분 거리 역세권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런가 하면 후배 Y는 제주에서 보증금 1000에 연세 300짜리 아파트에 산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는 Y는 저축보다는 집을 꾸미고, 예쁜 그룻을 모으고, 카페&맛집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고, 향이 좋은 바스용품이나 향수 컬렉션에 관심이 많다. 개 2마리, 고양이 3마리를 키우며 반려용품도 엄청나게 사들인다. 최근 Y는 3천만 원을 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했다. 얼마 전 주식이 1억까지 올랐다고 좋아하더니,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요즘은 하루 종일 주식만 들여다보며 산다고 한다.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일독 권함
이들은 모두 80년생 동갑내기들이다. 따지자면 Y는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에 가깝고, J와 S는 (은퇴 시기는 모르겠으나) 근검절약으로 자산을 불려 간다는 점에서 ‘재정적으로 독립해 조기에 은퇴한다’는 파이어(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에 가깝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요즘은 첫돌을 맞은 아기에게 금반지 대신 금수저를 선물하기도 한단다. 갈수록 자수성가하기 힘든 세상에서 아기의 미래가 풍요롭고 평탄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마음 이리라.
나는 지금껏 금수저를 물어보기는커녕 구경도 못해봤다. 그저 내가 꿈꾸고 상상했던 미래의 삶에 대해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을 뿐이다.
▲요즘 금시세가 최고치인데, 비쌀 것 같다. (이미지출처 : https://blog.naver.com/ghkfkdgusah/220737142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