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창 시드 머니를 모았던 1999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온라인 채널이 활성화되지 않았다.(지금 같은 디지털 환경이라 해도 어차피 디지털에 취약한 나는 그런 걸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별한 재주도 없고, 단순 무식했던 나는 무데뽀 정신으로 무장한 채 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에는 파리바게뜨에서 알바를 했다. 빵도 팔고, 팥빙수도 만들어 팔았다.
내가 알바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주인아주머니는 주말에 가게에 나오지 않았다. 밤 10시까지 일했다.
그렇게 일하고 받은 한 달 급여가 13만 원이었다. 내 노동에 비해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중학생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자아이 한 명이었는데, 몇 달 후 성적이 오르자 그 아이의 친구들까지 두세 명이 꾸준히 붙어 그룹과외를 했다.
사내놈들이고, 내가 좀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스타일이라 30센티 자로 등짝을 찰싹찰싹 때려가며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부모님들은 성적이 오르니 좋아했다.
과외는 벌이가 좋았다. 그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3년 정도 한 것 같다. 고등학생 과외는 좀 부담스러워 부모님께 서울대 재학생을 소개해 드렸다.
주말마다 백화점 판매원 알바를 하던 시기도 있었다.
성질이 지랄 같아서 그렇지 어디를 가나 일은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인데, 나를 좋게 본 캘빈클라인 매장 매니저가 판매할 수 없는 옷들도 많이 챙겨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입고 다니는 것들이 몇 개 있다.
동네 꽃집 언니와 친해져 꽃집에서 시급 알바를 하기도 했다. 졸업 입학 시즌에는 꽃다발을 만들고, 5월이면 카네이션 바구니를 만들었다.
취미생활로 비즈공예를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목걸이, 이어링이 많이 쌓이자 이걸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싸들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돗자리를 펴고, 액세서리를 늘어놨다. 지금 같으면 홍대앞 프리마켓 같은 콘셉트이지만, 당시엔 그런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에 쭈뼛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대여섯 시간을 멍청히 앉아있기가 지루해 손님이 말을 걸 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책만 읽었다.
어떤 날은 만 원, 어떤 날은 오만 원 정도를 벌었다. 서너 번 좌판을 벌여보고 ‘아, 장사는 내 길이 아니구나’하고 접었다.
가장 오랜 기간 나의 파이프라인이 되어준 것은 역시 글쓰기였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일하던 지인들에게 작업 의뢰가 많이 들어왔다. 프로덕션에서 감독을 하고 있는 친구도 일거리를 심심치 않게 주었다.
펑크 난 라디오 대본을 긴급하게 메꾸기도 했고, 대기업 홍보영상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품이지만, 심신 안정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뇌파 광안경 ‘웅진 브레인큐’의 명상 오디오 대본을 쓰기도 했다.(비슷한 경쟁상품인 엠씨스퀘어는 지금도 생산되는 것 같다)
PR Manager로서 연차가 좀 쌓이자 업계 선배들이 발등에 불붙은 다급한 일이 생길 때 SOS를 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KT&G의 새로운 담배 브랜드 런칭시 보도자료 작업을 종종 했는데, 일을 의뢰할 때 제품 샘플도 같이 주었다. 영화감독 김지운과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이 패키지 디자인을 해서 아주 세련된 모양새의 담배였는데, 선배와 나는 “먹어보고 맛을 알아야 글을 쓰지”하면서 사무실에서 줄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캔맥주를 마셔가며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지금과 달리 그땐 그렇게 낭만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답니다)
방송국이나 관공서 일은 페이가 짜고, 대기업 일은 돈벌이가 쏠쏠했다.
30대 중반까지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이런저런 알바를 했다. 그땐 열심히 일하고,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인정을 받는 재미에 살았다.
그렇게 투잡, 쓰리잡을 했기에 월급의 70%를 따박따박 저축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회사에서 직급도 오르고, 오른 만큼 업무 가중도 커져 차츰차츰 알바를 내려놓았다.
한편으로는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고 마음이 해이해졌을 수도 있고, 나이가 드니 체력적으로 힘들어 주말에는 온전히 쉬어줘야만 주중 5일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도 있다.
젊은 패기와 열정, 체력이 있어야만 소화해낼 수 있는 도전들이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영영 힘들어진다.
또 인생을 살다 보면 이상하게 일이 술술 풀리고, 뜻밖의 기회가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단순히 돈벌이를 넘어 치열하게 살았던 그때의 경험들이 나의 안목과 역량을 많이 넓혀줬다고 믿고 있다.
뭐든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다 보면 그 안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