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잠시멈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멜리아 Sep 20. 2022

8화 다시 시작

일상으로의 복귀

6개월 동안의 파견연수를 마치고 9월 학교로 복귀한 지 20일이 지난다. 학교로 복귀하기 전 나만의 기획수업을 돌아본다.


1. 집 잃은 개를 찾아서, 리링, 다산, 오규소라이, 난화이진과 함께 떠나는 진경환의 [논어]여행

2.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3. 過敏で傷つきやすいひとたち、岡田尊司(okada takashi); 과민해서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

4.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이준원

5. 일본어I 교과서 분석 (단어, 문장, 문법, 문화, 활동 내용으로 나눠서 분석하기)


이렇게 5가지를 기획하였는데, 적어 내려 가면서도 10일 동안에 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 하였는데 역시 욕심이 넘쳤던 것 같다. 일단 학교로 돌아가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첫 번째 소명 때문인지 '교과서 분석'을 가장 먼저 했다. 그리고, 파견연수에 이어 9월부터 현장 실행학습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를 읽고 내가 생각하는 학교 문화는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문화라는 것은 한 번 정착이 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학교라는 곳은 관리자가 바뀌면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곳이라, 도대체 이게 무슨 이유인지 근본적인 부분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보문고 원서코너에서 '나를 픽해주세요.'라고 애원하는 듯 나의 눈에 들어온 책이 있다. 바로 '過敏で傷つきやすいひとたち、岡田尊司(okada takashi); 과민해서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다. 내가 다소 과민한 편이라 마음이 갔던 책이고 너무 읽고 싶어서 교보에서 찾아 왔는데, 아주 애써 외면이라도 한 것처럼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대신,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을 읽고 독서토론을 위한 발제를 하고 아주 의미 있는 독서모임을 마쳤다. 솔직히 독서모임을 준비할 때의 마음처럼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음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철학, 정치, 문화 등을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더디더라도 올해 안으로 읽고 싶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심정으로 한 장 한 장, 어느 날은 두 장씩 읽어가고 있다. 읽으면서 '평등, 사회적 특권, 자유, 변화를 읽는 힘, 권력의 이동, 악과 범죄' 등에 대한 고민들을 하게 된다. 사실, 방법론적인 수업 준비보다 지금 내가 읽어 내려가는 책들이 나의 마음을 더욱 키워가고 있고, 교실 안의 많은 의식의 흐름들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논어, 집 잃은 개를 찾아서]는 하루를 보내고 무언가를 정산하는 심정으로 어느 페이지에서는 필사를, 어느 곳에서는 눈길만 머물기를, 어느 행간에서는 한 숨을, 그리고 나의 마음을 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로 복귀한 지 20일이 되면서 학교만 가면 저 밑바닥으로부터 '화'가 올라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게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저녁까지 쌓아둘 것이 아니라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늘 아침부터 [논어여행]을 하고 있다. 

오늘의 시작은 이것이었다.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鄒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모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물어보는 것이 옳다.'는 내용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루의 시작을 '每事問'으로 시작하니 수업 중 퀴즈가 잘못되어도 아이들에게 묻고 확인하고 놀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인상이 고약해 보이는 남학생이 교실 맨 뒤에서 마스크를 벗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수업을 시작하자, 인상을 팍 쓰고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길래 순간, 마음속이 울렁거렸지만 참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개별 단어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뒤쪽의 남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아까 마스크 쓰자~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해서 미안해."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하하, 괜찮아요." 하길래,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대화를 시도했다. "아니, 덩치 3명이 뒤에 책상 3개를 나란히 붙이고 앞을 너무 뚫어지게 보길래 기분이 안 좋은가 했지." 했더니, "하하, 얘가 우리 반에서 젤 순한 놈이에요."라며 웃는다. 

세상에, '每事問'은 요술봉이다. 울렁거렸던 마음이 잔잔한 호수가 되었다.


사실, 복귀 전 10일 동안에는 계획한 것의 1/10도 진행되지 않았지만 나의 단련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렇게 계획을 세웠기에 침착하게 학교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6개월간의 [잠시 멈춤]을 그만하고, [다시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