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의 생활재활교사가 됐다.
‘장애인’
분명 그 ‘단어’를 알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나보다 훨씬 천진난만하고 왠지 모르게 다가가기 두려운 형이 있었다.
그 형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자기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적힌 큰 판넬이 붙은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자전거에 탄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나에게 장애인은 ‘익숙함’과 동시에 ‘낯섦’이라는 감정이 혼재하는 두려운 존재였다.
한 번도 그들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지 않았고, 그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시대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그 시대는 그랬다.
내가 대학에 진학을 하고 소위 말하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이 되어서도 그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했을지라도 내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장애인이라는 특별한 사람은 복지의 ‘대상’이라는 지식만 쌓였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나름 대학생활을 열심히 한 나에게 여러 취업 제안이 왔었다. 당시 나의 아버지는 담도암 말기 투병 중이었음에 취업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차례 취업 제안과 면접 기회를 놓친 나는 더 이상 취업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당시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의 생활재활교사가 됐다.
서류와 면접 절차를 모두 통과하고 첫 출근을 한 날, 앞으로 나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할 진짜 ‘장애인’을 만나게 됐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사람은 거의 나보다 키가 크고 양쪽 눈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김미자(가명)님이었다.
양쪽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지만 순간 당황한 나의 마음을 숨기고 있을 때 미자님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반갑습니다!”
사실 의외였다.
너무 ‘정상적인’ 인사가 아닌가?
애써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나눈 후 생활실장님을 따라 올라간 2층에서는 복도 바닥에 누워있는 박유리(가명)님이 나를 맞이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유리님은 누워있는 채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여성 생활재활교사가 계속해서 유리님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고 유리님은 바닥에 누으려고만 하고 있었다.
이후에 알게 됐지만 그분은 스스로 중심을 잡기 힘들어서 자신의 몸이 요청하는 대로 자꾸만 누우려고 하는 습성이 있었다.
다음으로 내가 만난 장애인은 내가 함께 생활할 남자 장애인들이었다.
한 눈에도 나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껴지는 왜소증 장애인 김우주(가명)님은 나에게 악수를 요청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나는 김우주입니다!”
그분은 생활재활교사로 일컬어지는 사회복지사, 그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종사자들과 대화하기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었다.
대한민국 성인남성 평균키를 가진 나에게 140cm를 왔다갔다하는 김우주님의 악수는 분명 낮았다.
먼저 그 손을 잡은 후에 나를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급하게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서 손을 흔들었다. 그런 나의 초짜스러운 모습에 김우주님은 전입장병을 바라보는 주임원사의 마음으로 웃고 있었다.
그다음은 거울을 보며 로션을 바르고 있는 이수철(가명)님이었는데 그는 거울을 보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새로운 종사자에게는 관심 조처 없는 모습이었다.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지고 큰 덩치는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지만 나는 방금 졸업한 따끈따끈한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지만 ‘억텐’을 끌어올려서 인사를 건넸다.
“수철님!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내 인사에 고개를 살짝 돌려서 소리 나는 방향을 확인한 수철님은 싱긋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 내서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크크크 선생님이 누구 닮았는 줄 압니까? 초코파이 닮았어요! 하하하하하”
오. 마이. 갓.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회사(당시까지 나에게 그곳은 단지 ‘회사’였다.)에 있었지만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오. 마이. 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