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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 맡겨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참담한 비극

보육원에 맡겨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참담한 비극     


  한국고아사랑협회는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양한 상담 서비스도 운용하고 있다. 진로상담, 취업, 의료, 금전사기 문제는 물론, 자살 동기에 대한 상담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상담이 이뤄진다. 이중에는 단체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주고자 문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자녀가 말을 듣지 않거나, 자녀 양육이 힘들다는 이유로 보육원에 아이를 어떻게 맡길 수 있는지 묻는 황당한 문의도 있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면 항상 당혹스러운 마음이 든다. 애써 침착하게 우리 단체는 보육원에 속한 아동이나 자립 준비 청년들을 지원하는 단체임을 설명하지만, 이러한 문의가 얼마나 이기적인 질문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감정과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아동보호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좋은 현상이지만 아이가 부모와 헤어졌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재회 시에 겪게 되는 갈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불리, 또는 감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      


  이러한 문의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무조건 아이를 잘 키우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자녀 양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이를 시설에 맡기는 순간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앞으로 그 아이의 인생을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요즘 보육원에 보내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받고 심지어 영어 공부도 시켜준다는 소문만 믿고 자녀를 보육원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도 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이혼 후 재혼해야 하는데 자녀가 있어 고민이라는 글에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라’는 익명의 댓글을 읽고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떠한 생각으로 그런 답변을 달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멍청한 수준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보육원에서 살아보라’라고. 심지어 보육원에 자원봉사를 다녀온 사람 중에서도 요즘 보육원은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잠시 봉사하면서 느낀 아이들의 표정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만으로 보육원을 평가하고 괜찮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차라리 봉사를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보육원을 돕는 단체들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봉사하는지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단체의 목적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의도와 진심은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이는 부모로서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도, 경제적 어려움이나 정신장애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녀와 떨어져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충분히 양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버리는 행동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최근 어느 탈북민이 상담을 요청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자녀 양육 방식이 북한과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북한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아들을 때렸으나, 아동학대로 넘어가게 되면서 아들과 분리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아동보호정책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분들은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아이와 함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자세히 아동보호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아이가 어느 보육원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매우 참담함을 느꼈다. 나는 그의 사정을 듣고 지자체에 전화해 그의 아들이 어느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지 알아본 뒤, 그에게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다행히도 그는 다시 아들과 만나 가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어떤 사유로 아이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녀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짊어져야 한다.      


  나를 정죄할 수도 있지만, 나는 재혼을 이유로 자녀를 보육원에 맡기며 다시는 아이들을 찾지 않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그럴 수도 있지, 오죽하면 아이를 맡겼을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러한 행동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에게는 부모뿐 아니라 그 아이와 연결된 또 다른 가족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단지 생각으로만 동의하는 것은 너무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혼한 가정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정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남겨진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책임을 지는 것은 어른의 도리이다. 최종적으로 보육원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삼촌이나 고모, 할머니 등 또 다른 가족들이 책임을 지고 함께 살아가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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