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립준비대학생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의견
누군가가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슬픔을 넘어 그들이 왜 그토록 절망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미어진다. 보육원을 퇴소한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생계의 고통, 관계에서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이러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는 것은 어릴 때부터 보육원의 삶에 길든 결과일 것이다.
자립 준비 대학생의 자살 소식은 특히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려운 환경 안에서도 대학에 진학한 그들에게는 꿈과 노력과 자립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학생이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그의 경제적 여건을 지켜보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다. 700만 원의 자립정착금을 받고 보호시설을 퇴소한 청년은 스스로 살아가고자 결심했지만 몇 개월 만에 사회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왜 그들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는지, 그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국가의 잘못인지, 보육원의 잘못인지, 아니면 우리 어른 모두의 잘못인지. 어쩌면 우리가 모두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현재 보호시설에 머무는 대학생들은 최소한의 생계비만을 지원받고 있다. 시설장에 따라 다르지만 등록금을 제공받지 못하는 곳이 많아 이들이 낭만과 자유가 있는 대학 생활을 누리기란 너무나 어렵다. 아마도 세상을 떠난 이들은 다른 친구들과의 삶을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보호아동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변 아이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대학수당이 필요하다. 보호시설 퇴소 후에 받는 35만 원의 자립수당은 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적은 금액이라도 대학수당, 즉 학업수당이 필요하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가는 일을 일상으로 아는 이들에게 최소한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고귀하다. 자립 준비 대학생 자살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세상을 떠난 이는 대학생이지만, 사건 자체는 한 사람이 보호아동 시절부터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과 올바른 자아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전에 보호아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올바른 가정회복을 일궈내는 동시에, 이미 보육원에 있는 보호아동의 경우 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끌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