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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불꽃 Jan 15. 2023

마음구멍 2

#10. 다시 긴 터널을 걷다

[엄마의 마음으로.2]


  손녀들 여름방학을 맞아 혼자 있는 엄마 걱정에 딸 아이가 세 손녀들을 데리고 총 출동했다. 마침 딸도 코로나 방역지침이 4단계로 강화되면서 일이 줄어 시간이 되는 모양이다. 사위는 시간을 내지 못해 결혼 13년만에 처음으로 부부가 한달 가량을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늘 서울보다는 관광도시인 친정집이 좋다던 딸도 어렵게 낸 시간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리 표정이 밝아 보이진 않아 내내 마음이 무겁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매일 밥 못 먹는다. 영양제 맞으러 병원에 가야겠다. 힘들다는 전화만 해대니.. 이참에 엄마 맛있는것도 해 드리고 손녀들하고 시간 보내면서 북적북적대면 좀 나아지지 않겠냐고 날 위해 온 것임이 분명해 혹여 손녀들한테도 기운없는 모습만 보일까봐 먼저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잔소리 대마왕이 왔으니 이제 나는 아들놈 위에 딸년하나를 더 모시고 이 여름을 지내야 할 판이었다. 


"엄마~ 이것 좀 드셔봐요~"

"놔둬... 있다가 먹을께~"

"따뜻할 때 먹어야지~ 그렇게 안 먹어서 어떻게 해. 엄마 나이때는 먹고 싶어서 먹는게 아니라, 건강 때문에 억지로라도 드셔야 할 때라고~" 

"입 맛이 있어야 먹지 어떻게 억지로 먹니"

"누군 입맛이 있어서 먹겠어. 일단 먹어야 입맛이 도는지 아닌지도 알지.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계속 잔소리 할거면 가라"

"엄마는 조금만 뭐하면 가라 그래, 누가 뭐 있고 싶어서 있나? 기껏 시간내 와서 나도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좀 못 이기는 척 먹어주면 어때서.. 다 해 놓으면 입 맛 없다고 안 드시고. 기분 상하면 가라하고.. 그래..간다 가. 있다가 오후차 타고 갈테니까 그리 알아. 맨날 그렇게 드시지도 않는데 기운 없는거 당연한거 아니야?

기운이 없으니까 당연히 어지럽고, 어지러우니까 못 일어나고, 그러니 계속 눕게 되고.. 면역력만 자꾸 떨어진다고~" 

  "아휴~~~ 또 시작이다 또~~다 필요 없으니까 훈계 할거면 그냥 가~ " 


이 년이 또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내 뱃속으로 낳았지만 대체 쪼그만게 어떻게 애는 셋이나 낳고 어디서 힘이 나는지.. 뭘 쳐 먹어 목소리는 그렇게 크고 우렁찬지 옆집에서 들을까 남사스러워서 못 살겠다. 기운도 없어 죽겠는데 어찌나 쏘아대는지 귓구멍이 따가울 지경이다. 이제 애들도 커가고 엄마랑 내가 서로 화내는것도 애들이 보고 들을까 걱정된다며 나이도 마흔인데 이제 엄마한테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하고 더 잘하겠다더니 그렇게 말한 인간은 어딜 갔는지 나보다 더 난리다.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재촉하며 캐리어를 꾸리고 잠시 딸아이가 외출한 사이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황미숙님댁 맞죠? 떡집입니다~" 

"떡집이요?" 


조심스레 문을 여니 딸이 주문한 잔기지떡이 새하얗게 고운자태를 드러내며 곱게 포장되어 어서 받아달라 떡집 사장의 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얼마전 밥상에서 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 맞다.. 얼마전에 감사 인사 간다고 떡 알아봤었지...'


딸이 집에 오기 며칠 전..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내가 갑작스런 불안을 느끼며 이대로 있다가는 죽겠다 싶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던 이야기를 전한적이 있다. 벌써 119는 두어번 불렀던 터라 이제 응급실행도 안정제외에 내게 뾰족한 수는 아니라는걸 알기에 그냥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진정이 될 것 같은 마음에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이 열린 집을 찾았다. 그래도 체면이 중요했는지, 예의가 있었던건지 복도식 아파트라 한여름 현관문을 열어둔 집들을 슬며시 들여다보고는 "계세요~"라며 신호를 보냈다.

"왜 그러세요?" 진한 눈썹에 얇은 눈썹 문신, 나의 1.5배는 되는 체구를 가진 내 나이 또래 여자가 슬렁 슬렁 걸어 나온다. '아뿔싸! 집을 잘못 찾았다' 며 어쨌든 이왕 온건 용건이나 건네자 싶어 말을 건넸다.

"사실은 저쪽 옆쪽에 사는데 아들이 출근하고 혼자 있는데 갑자기 불안해져서.. 옆에 누가 있으면 좀 나을까 싶어서 이렇게 왔는데... 실례했어요.." 라며 뒷걸음질 치려는 순간 안에서 여자가 거실로 고개를 돌리며 다급히 말한다 "당신~ 빨리 옷 차려 입어요 ~" 집에서 사각 팬티를 입고 널부러져 있는 남편을 깨우며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잘 오셨어요~ 일단 들어오세요." 매몰차게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 같았던 여자는 내가 느낀 첫 인상과 달리 따뜻하게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남자는 과일이랑 차 한잔을 내오라며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이렇게 마음이 따뜻할 수가 없다. 같은 단지에 살아도 이사온지 얼마 안돼 안면도 없던 나를, 내가 어떤 사람인줄 알고 요즘같은 세상에 문을 열어주고.. 그것도 정상이 아닌것처럼 불안해 하는 나를 받아준단 말인가...

부부가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혼자 사세요? 119를 불러서 병원에 가시지 그러셨어요.."

"아니예요~ 아들이 일을 가서.. 이런 일이 종종 있어서.. 병원보다 사람이 있으면 좀 나을 것 같아서 왔어요. 내 몸은 내가 잘 알아요~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그래요~ 우리도 장사를 하느라 낮에는 집에 잘 없는데 그래도 또 이렇게 문 열려 있을 때는 사람이 있는거니까 오세요~"

"고마워요~"


어느새 주고받고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긴장된 근육도 풀어 졌는지 아까는 손발이 차디차고 움직임이 불편하더니 이제는 모든 근육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아들한테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더니 난리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문을 열어준다고, 누가 사는줄 알고 안면도 없는 남의 집엘 찾아가냐고.. 위험한 세상이라는 걸 알기에 행여 내가 되려 해코지라도 당하진 않을까 염려한 마음임을 알기에 그런게 아니라 되려 잘 대해줬다며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두어번 정도 그 집을 찾아갔고, 문이 잠겨 있을 땐 관리 사무소를 찾아가 소장님과 대화를 나누다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앞섰지만 사람이 필요했다. 누구라도 있으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너무나 고맙게도 관리사무소에서 "전혀 방해되지 않고 이렇게 주민들을 위해 있는 곳이니 언제든 불편하고 불안하면 오셔서 찬 한잔 하고 가세요"라고 말해 주어 몇 번은 염치 불구하고 찾아가 쇼파에 앉아 있다 돌아오곤 했다. 


딸이 주문한 떡이 배달될 곳들이다. 

앞에서는 그렇게 나를 쏘아 붙이고는 그래도 엄마를 챙겨주고 받아준 곳들이 고마워 인사를 꼭 하는 것이 도리라며 마땅한 선물을 찾다가 떡으로 마음을 전하려 했던 것이다. 


외출 했던 딸이 이웃 중년 부부와 관리사무소에 가서 인사를 하고 떡을 건네고 돌아와 한번만 더 집에 가라고 하면 진짜 엄마 안볼테니까 알아서 하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저녁을 차린다. 

사실, 캐리어에 싸 놓은 짐은 진작에 손녀딸을을 꼬셔서 다 풀어놓은 터라 딸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한번 으름장을 놓는 것일게다. 

딸의 으름장에 아무말 않고 이번에는 입맛이 있는 척, 숟가락을 놓지 않고 우리는 조용히 저녁을 먹고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하루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수만은 없었던 우리는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다시 다니던 대학 병원을 찾기 위해 딸네 집으로 함께 향했다. 어머니 이제 힘드시지 않게 대학병원에 가서 코 수술은 잘 됐는지, 어지러움증은 어떠신지, 불안함은 어떤건지, 공황장애가 다시 온건지 종합검사하듯 다 살펴보고 다시 컨디션 회복하자는 사위 말이 고마워 처와 자식들 데리러 온 차에 함께 몸을 실었지만 내가 잘 하는건지, 또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건 아닌지 불안함이 짙어져 오늘따라 서울로 향하는 이 터널이 더 길고 무섭게 느껴져 잠시 눈을 감고 터널 속 어둠을 피해본다. 터널을 지나 밝은 햇살이 이제 괜찮다며 눈을 뜨라고 찡긋 신호를 보내지만 다시 내 마음의 긴 터널을 가려니 쉽게 눈이 떠지질 않는다. 쫑알 쫑알 정신없는 손녀들 틈에서 누가 볼세라 고개를 돌려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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