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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불꽃 Apr 06. 2021

그토록 싫어한 엄마의 모습을 닮은 나를 발견한날

#7. 그림자는 더이상 어둠이 아닌 진한 감정끝에서 만난 한줄기 빛!

최근 코치 자격을 업그레이드 하는 준비를 하며 수개월간 깊이 코칭의 장에 빠져 있었다.

실습 대상으로서의 고객을 만나고, 리얼 고객을 만나고, 상위 코치를 만나 고객으로의 경험을 하며 나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반복하기를 수차례, 코치는 고객과의 수평적 파트너로서 타인의 변화와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보면 내 마음의 소리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발견한다. 그래서 코치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self-awareness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훈련을 지속한다. 그 중 하나가 고객으로서 나의 이슈를 가지고 코칭을 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코치라고 해서 늘 코칭을 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 이슈 뿐 아니라 고객과의 코칭에서 올라온 내 마음의 저항 등은 코치로서 성장하는데 매우 훌륭한 코칭 주제가 된다. 저항을 알아차리는 것은 나에게 온전히 깨어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매우 자연스럽고 건강한 깨우침이기 때문이다. 


최근 내 마음의 저항을 마주하며 고객으로서 코칭을 받은 나의 사례를 떠올려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코칭을 받기 전에는 대부분 '어떤 주제로 오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하고 주제를 선정하는데 막상 코치를 만나면 준비한 주제와 달리 떠오른 생각이 먼저 입밖으로 튀어나와 준비한 이슈와는 전혀다른 토픽이 그날의 대화를 선점하기도 한다. 그날의 대화가 그러했다.

어쩌면 내 무의식속에 깊이 자리잡아 해결하고 싶었던, 부딪혀 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면서, 대화에 앞서 코치가 잘 만들어 준 분위기에 취해 안전지대라고 느껴 깊은 나의 속내를 이야기 했을지도 모르겠다. 


* 나) - 고객(나) / 코)코치


나) "제가 참..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잘 들어주고 친절한 것 같은데 유독 저희 엄마한테는 더 깊이 듣거나, 더 깊이 이해하거나 이런 공감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왜 그럴까 싶기도 하고.. 참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하면서 엄마한테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 이야기를 좀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코치가 잠시 내 이야기를 고요히 듣더니 침묵을 깨고 질문한다.


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어떤 마음이 느껴지세요?"


나) 어... 겉으로는 되게 좋은 딸인거 같은데.. 보기에는 정말 참 좋은 딸인거 같은데... 혹시 내가 그런 척! 하고 있는건 아닐까 약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네요. 


코) 말씀하시면서 약간의 웃음도 보이셨고, 이런 얘기 해야하나~ 하는 그런 느낌도 드네요~ 


나) 네~ 맞아요. 사실 마음은 잘 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아서.. 친정 엄마께서 7,8년을 도와주시다가 이제 가셨거든요. 가신지 한 1년정도 되신 것 같은데.. 같이 오랜기간 있으면서 있었던 육아에 대한 갈등들, 그리고 엄마는 늘 내딸이 우선이라 저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 행동 이런 것들이 사실 그건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아니었는데 항상 ‘널 위해서’ 라고 말씀하시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내적으로 부딪힘, 부대낌이 있었던 것 같고..그러다보니 표현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때로 엄마를 서운하게 하는 말들~ “그건 내가 원하는게 아닌데..그건 날 위한게 아니라 엄마 마음 편하자고 엄마 위해서 하는..” 이런 말을 한다던지… 

그래서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병원에 가면 간호사들이 내말을 더 잘 들어 준다”고요.

그러니까 제가 밖에서는 참 친절한데 우리 엄마한테는 그게 잘 안되는거 같아서 그런 이 마음이 뭘까, ‘잘 해야지 잘 해야지’ 하고 ‘공감해야지’ 하는 것도 항상 내 마음엔 있는데 서로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그 gap에서 오는 충돌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코치가 직관적으로 알아차린 내 말투, 표정, 그 빈틈 어딘가를 비집고 들어오니 들키기라도 한 듯 그냥 움켜쥐고 있던 마음 보따리가 마구 헤쳐진다. 

그랬다. 늘 '왜일까?' '도대체 왜?' 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머리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말로 꺼내 놓으니 하나 둘 정리가 되고 있었다. 


1. 때로 엄마의 말과 표현이 나와 다를 때 잠시 마음의 신호등을 지키지 않고 거침없이 내 달리는 내모습. 빨강, 노랑, 초록으로 되어 있는 신호등은 전력질주하는 차들을 멈춰세우고, 또 '잠시뒤면 멈춰야해' 라는 시그널을 통해 운전자가 미리 속도를 조절 할 수 있도록 사전 예고를 해 준다. 시속 100km를 달리던 차들도 저 멀리 도로 신호체계를 인지하고 나면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출 태세를 갖춘다. 

내 마음의 신호는 제대로 셋팅 되어 있을까?

브레이크를 밟을 여유는 두지 않고 언제나 빨강, 초록 불만 오가며 그렇게 에너지를 쓰고 있진 않았을까? 서로의 다름속에 일어나는 갈등이라 정의하며 나름의 핑계를 찾고 이것이 최선이라며 합리화 한건 아닐까? 


2. 자꾸만 떠오르는 내 마음을 들춰보니 '이해 하지 못해서' 라는 말을 참 많이 한것 같다. 왜 엄마는 나에게 이해 받아야 하는 거지? 나는 왜 엄마를 이해해야 하는거지? 그냥 우리는 각자의 스타일대로 각자의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그 자체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을 자꾸만 '이해'라는 허들을 앞세워 엄마의 진심어린 사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왜 나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매 순간 해석하려 하는 걸까?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면 되는 것을..


장황했던 나의 대화 주제가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마음으로 먼저 느껴보기!

엄마의 마음을 느끼면서 대화하기' 


마음으로 느끼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냥 온전히 마음 자체로도 통한다. 내가 무언가 살을 붙이고 생각에 생각을 덧보태지 않아도 말이다. 생각을 덧보태면 자꾸 설명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마음이 그게 아니면 나의 설명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자꾸 엄마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서운하게 한다. 


코치가 내게 묻는다.

코)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과 엄마를 대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걸까요? 


ㅎㅎ 올 것이 왔다.

나) 다른 사람은 현재 우리가 만나는 이 상황에서 새롭게 관계를 맺고 알아 가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다 알다 보니까 조금더 편해지셨으면 좋겠고, 자유로워지셨으면 좋겠고, 자식들 걱정도 그만하셨으면 좋겠고… 저의 에고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이 자꾸 제 마음에 올라오다 보니 그런 삶을 어… 결국은 얘기하다 보니 제가 원하는 삶이예요. 제가 원하는 삶에 엄마를 끼워 맞추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원하는 그 삶에 엄마가 들어오지 않으니까 제가 자꾸만 다른 대화의 톤이 나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좀 더 자신만 위해서 사시면 좋겠는데.. 본인의 삶을 가장 1순위로 하시면 좋겠어요. 근데 그런 희생이라는게 사실 저희 세대는 그래도 자신의 삶이 우선순위에 많이 올라와 있잖아요. 자식들의 삶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이 중요해진… 그런데 과거의 엄마들의 삶은 자신보다는 가정, 자식들의 삶을 더 우선시 하다 보니..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엄마는 조금 더 자신의 희생을 스스로 요구하고 계시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제가 생각하는 그림에 엄마가 계시면 좋겠는데…그런거 같아요 말씀드리다 보니…그렇네요…


뭔지 모르게 자꾸만 말끝을 흐린다.


코치가 내게 '엄마를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라며 화답한다.

그리고 그런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또 한참의 대화 끝에 코치가 강력한 한방을 만난듯 어떤 엄마가 되고 싶냐고 내게 질문한다.


나) 친구같지만 굉장히 지혜로운 엄마, 그래서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엄마이고 싶어요. 많은 교감을 하고...


코) 그런 딸을 바라보는 친정 엄마는 내 딸에게 어떤 말을 할까요?

나) "너 먼저 챙겨라!" 

(아마도 엄마가 이 말을 하시면 나는 1초도 쉬지 않고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애들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큰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내가 해 줄 수 있지~)


잠시 대화에 침묵이 흐른다.

아뿔싸! 그래,  

내 일을 하면서 내 삶을 잘 챙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가 보시기에는 ‘너 역시 자식을 먼저 챙기고 있다’ 느끼셨겠구나..

세상 잘난 척 아이들도 잘 챙기고 내 삶도 잘 챙기는 사람이 될거야 라고 했던 나 역시도 결국 자식앞에서는 언제나 많은 것을 내어주고 있었다. 이것이 부모라는 것일까? 

고작 13년을 부모노릇 해 놓고, 40년 부모역할 해 온 고수 앞에서 까불고 있었구나... 


나에게 아이들을 챙긴다는 것은 아이들이 지금 느끼는 이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공감, 그리고 아이들의 친구관계 및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교류를 대화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엄마의 교류는 그 방식만 조금 다른 것이었다. 대화 보다는 내가 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 내 몸이 으스러져라 쓸고 닦고 씻기고 벌어 입히고.. 그래, 그 시대는 그러했다. 몸으로 이겨내야 하는 세월이었음을.. 그것이 익숙하고 고되지만 또 가장 익숙했을 것을..

그런 엄마께 자꾸만 하지 마셔라 하지 마셔라, 고리타분한 방식인냥 일방적인 희생인냥 그렇게 이야기 했으니...


결국 엄마와 나의 삶은 방법의 차이일 뿐 그 방향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의 희생은 고리타분한 것도, 지나친 것도 답답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가 엄마로서 엄마의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삶을 살아내는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 날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엄마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을 뿐 엄마를 답답해 하고 이해 안된다 말할 자격은 없었다.

오늘 또 한번 내 마음이 성장한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에 한발짝 더 가까워졌다.  

내 마음의 그림자는 더이상 어둠이 아닌 진한 감정끝에서 한줄기 빛을 만나게 해준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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