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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Sep 16. 2024

이거 아동 노동착취 아니냐고요?

엄마는 못 미더워 내가 하겠다고 외치는 아이들

이제 겨울은 봄 햇살에 못 이기고 조금씩 밀려나는 중이다. 그러다 종종 심술을 내면 밤에 기온이 뚝 떨어지거나 한낮에도 뜨거운 햇살을 밀어내고 찬 바람을 몰아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드니는 겨울의 심술과 봄의 설렘이 서로 밀땅을 하는 중이다.


이때 아이들은 최약체가 된다. 바로 감기, 독감, 코로나, 폐렴 등 갖가지 질병들이 아이들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언제쯤 아이들을 집어삼킬 수 있는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올해는 잘 넘어갈 수 있을까? 싶었던 내 바램은 헛된 망상이었다는 걸… 어느 날 갑자기 뜨거워진 아이들의 이마를 짚어보며 알 수 있었다.


먼저 2호가 아무런 감기 증상 없이 열이 났었고, 꼬박 이틀을 앓고 난 후 잠잠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1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2호에게서 옮은 거겠지? 싶었는데 웬걸? 바로 다음날 2호의 이마도 뜨거워졌다.


그렇게 38도와 39도를 오고 가며 뜨거움으로 일심동체가 된 아이들은 학교도 어린이집도 가지 못하고 내 옆에 온전히 붙어 있었다. 매 시간마다 열을 재고 오르고 있다 싶으면 약을 확인해서 정량을 먹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곱 살과 네 살인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는 일은 멋모르고 먹일 수 있었던 어릴 때보다 어렵다. 1호는 어떻게든 먹지 않으려 애를 써보지만 결국엔 설득당하고 먹는다. 하지만 네 살인 2호보다도 더 입을 벌리지 않는다. 우리는 해열제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과 주스에 타서 먹이는데 1호는 혼자 먹으라고 내버려두었더니 세월아 네월아 하며 먹는데 보고 있자니 나무늘보가 와서 약을 먹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래서 성질 급한 엄마는 간신히 먹을 정도의 주스만 타서 숟가락을 들고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물론 입에는 ‘이건 맛있는 사과 주스니까 얼른 먹지 않으렴?’이라는 가식적인 웃음을 잔뜩 머금고 말이다.


약을 먹이는 것은 3살이나 어린 2호가 더 어려워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2호의 사정은 다르다. 작년 겨울에 아주 혹독한 폐렴 폭풍이 2호에게 몰아쳐 지나간 이후 수술까지 겪은 네 살에게 약 먹는 정도는 사실 일도 아니다. 아픈 기억이고, 이 아픈 기억 때문에 아이는 건강을 위해 받아야 하는 처치들은 나름 잘 수긍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래서 사과 주스와 함께라면 해열제 정도는 뚝딱 먹어 치우는 대장군이 되었다. 형아보다도 훨씬 더 수월하게 잘 도 먹어주니 나로서는 약을 먹어서 끝날 수 있는 감기 정도는 너무나도 감사한 일상으로 느껴진다.


다행히 몸이 뜨거워지는 온도에 비해 아이들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아플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하는데 어른도 아프면 입맛이 똑 떨어지는 것처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은 평상시에도 아이들이 먹는 간식 타임과 양을 제어하는 편은 아닌데 아플 때는 대놓고 마음을 바꾼다. 뭐라도 먹어라. 입 안으로 뭐라도 들어가면 힘이 난다. 밥 맛이 없으면 과일이나 두유로, 그것도 안되면 달달한 간식거리라도 좋아서 먹겠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먹이고 본다. 건강 상의 이유로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오케이를 외친다. 억지로라도 먹일 수 있으면 감사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럴 수 있는 영혼들이 아니기에 뭐라도 먹어주면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입맛도 없고, 컨디션도 떨어지고, 아파서 집에 있지만 완전히 기운 빠져 있지 않아 뭔가 해결책이 시급할 때 꺼내드는 나만의 비장 카드는 와플 만들기다.

아마도 1호가 2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와 간단한 음식 손질은 재미 삼아 한 번씩 하곤 했는데 이때부터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와플이었다. 반죽 만들기는 아주 간단하다. 시중에서 간단히 살 수 있는 핫케이크 가루에 버터(우리 집은 버터 대신 올리브 유를 넣는다.), 우유(또는 두유), 계란을 추가하면 집에서도 간단히 부드러운 핫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거기에 아이들이 평상시에는 잘 먹지 않으려 하는 견과류를 먹이기 위해 아몬드 가루를 이때가 기회다 싶어 매번 추가한다.

모든 재료를 볼에 때려 박고 아이들은 휘스크를 가지고 오른손으로 돌리고, 왼 손으로 돌리고를 반복하며 신나게 돌려 재낀다. 얼마나 재미있어하는지 처음에 한 볼에 둘이 차례로 나눠서 돌리게 했더니 박 터지게 싸워서 이제는 자기가 먹을 만큼의 양을 각자의 볼에 나눠주고 있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볼 안에 남아 있는 양보다 밖으로 튀어나와 조물조물 노는 양이 더 많았지만 지금은 제법 진짜 요리사처럼 만들어낸다.


내가 하면 5분도 안되어 이미 굽기 시작했을 핫케이크지만 나는 아이들이 조잘거리며 우당탕탕 반죽을 뒤섞으며 노는 것이 참 좋다. 반죽을 아이들에게 맡겨 놓고 주방에서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만족할 만큼 재미나게 논 아이들이 와서 알림을 준다. 이제 진짜로 와플을 구울 시간이라고.

때론 요리 솜씨가 없어 아이들을 근사하게 먹이지 못할 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는 말처럼 나는 내가 가진 재능으로 아이들에게 맡긴다. 완벽하고 근사하지 않아도 재미라는 조미료가 더해지면 감칠맛이 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안다.


아파서 입맛이 깔깔한 아이들이 힘든 와중에 나름 재미있어하며 만든 이 와플은 더없이 근사한 요리가 된다. 자기가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감칠맛을 더해 밥을 입에도 대지 않던 아이들이 와플 하나를 뚝딱 해치우기도 한다. 그럼 나는 안도의 마음을 쓸어내린다.

휴… 오늘도 먹였다.


평상시에도 식사 준비는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아플 때면 정말 풀기 힘든 수학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럴 때 이렇게 와플 한방이 먹히고 나면 마치 그 어렵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내가 풀어낸 것만 같은 뿌듯함이 밀려온다.


엄마는 못 믿겠고 내가 해야 맛있다는 아이들. 뭐 어떤가. 못 믿어도 좋으니 재미있게 놀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이거 맛있게 먹고 이따위 감기 먼지 털어내듯 툴툴 털어내어 버렸으면…

아픈 아이를 바라보며, 해열제를 먹어 땀이 송글송글 나는 이마를 쓸어 올리며 바래본다.


아프지 않을 순 없겠지만 매 번 넘어야 하는 아픔의 고개마다 조금은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 가득한 바램을 속으로 삼키는 한숨 속에 실어 넣으며 오늘도 체온계 전원 버튼을 눌러본다.


정말 세상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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