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이 더 달콤하고 소중해서 그래요.
호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자주 쉬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방학이 일 년에 총 4번이나 있다. 봄방학 2주, 가장 긴 여름방학 6주, 가을방학 2주 마지막으로 겨울방학 3주 정도 되겠다. 물론 학교마다 재량이 있겠지만 정부에서 공지할 정도로 거의 대부분 학교의 시작일과 종료일이 같다.
‘히익? 너무 많이 쉬는 거 아니에요? 그럼 언제 공부하나요?’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 수 있겠지만 만약 내가 학생이었다면 너무 마음에 들었을 것 같다. 앗! 솔직히 부모의 입장에서는 살짝 반반이라고나 할까?
마치 양념반 후라이드반 치킨처럼 좋기도 하고 또 혈압이 솟기도 하니까 말이다.
여름방학이 6주나 되는 이유는 가장 큰 연휴인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만나서이기도 한데 이 기간에 많은 회사들이 문을 아얘 닫아 직원들의 휴가를 맞추기도 한다. 작년에 우리 회사도 연속 3주 문을 닫았다. 물론 직원은 남편과 나밖에 없었지만.
한국에 가을 단풍 물결이 넘실넘실거릴 때면 호주는 봄맞이 준비를 한다. 나무들은 잎을 갈아치우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꽃이 만발한 자카란다 한껏 피어나려고 꽃봉오리가 들썩들썩하는 것 같다.
아이들도 꽃봉오리처럼 2주간의 봄방학동안 부쩍 자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라는 시간.
호주의 부모들도 미리부터 많은 고민을 한다. 지역 도서관들에서 주최하는 각종 방학 프로그램에 등록하기도 하고,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방학 교실을 열어 등록된 아이들은 평상시처럼 등하교를 하며 참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집은 우리 집처럼 방학=놀자 모드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 시간이 괜히 아까워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 되지도 않는 몸부림을 쳐본다. 근데 나만 그렇다. 아이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마냥 놀고 싶고 마냥 늘어져 있고만 싶겠지. 뭐 나도 안 그랬다고 할 수는 없으니 공감 100%는 당연하다. 하지만 뭐라도 해줬으면 좋겠는 마음에 슬며시 지난 방학 때 슬며시 ‘코딩’이라는 단어를 아이의 귓가에 흘려 놓았었다. 그러고는 마치 잊어버린 듯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방학이 시작되던 주말 아이의 입에서 이 단어가 흘러나왔다.
‘코딩’을 배워보고 싶어. 알아봐 줘.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걸로.
어머나 세상에! 얼씨구나 절씨구나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어야 한다고 했던가? 아이가 뭐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엉덩이가 옴짝달싹하는 엄마는 아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케이!’를 외쳤다.
그러고는 핸드폰으로 코딩 관련 정보를 찾아 모으기 시작했다. 뭐, 이렇게 글로 보자면 엄청나게 정보를 긁어모았을 것 같지만 나는 사실 귀차니즘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엄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보니 아이가 코딩을 제대로 접하기에(특히나 게임을 전혀 해본 적이 없으며,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아이일 경우) 7살이라는 나이는 아직 일렀다. 물론 뛰어나서 이미 잘하는 아이들이 많겠지만 내 아이는 빼고.
결국 찾은 것은 책을 들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혼자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책을 알아본 즉시 남편에게 컨펌을 받고 주문을 했다.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다면 호기심이 생길 것이고 그 호기심은 아무것도 모를 때의 답답함을 조금 더 빨리 이겨낼 수 있게 해 줄 거라 믿었다.
엄마의 호기로운 도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건 다음 이야기에 풀어볼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하고 싶다는 코딩도 준비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지만 책을 열심히 읽기로 1학년 스스로 약속도 했다. 이제는 정말 실천할 일만이 남았다. 과연 가능할까? 우리 1호는 부모의 기대 수치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나는 몸이 조금 더 편하고자 꼼수를 부려 보기로 했다. 바로 매일은 아니더라도 아이가 직접 식사 준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은 요리로 제일 먼저 선택한 것은 김밥이었다.
1호는 아주 단순한 스팸 김밥을 원했고 뜨거운 재료 준비는 내가 해주기로 했다. 준비가 끝나면 펼쳐진 재료들로 본인이 김밥을 싸보겠다고 1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조미김에 양념된 밥을 얇게 펼치고 스팸을 가운데에 놓은 채로 동그랗게 마는 행동은 7살 1호가 하기에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하면 2-3분이면 끝날 김밥을 아이가 하니 10분은 족히 넘게 걸렸다. 조그만 김밥은 옆구리가 터지기도 하고 제대로 말아지지 않은 녀석도 있지만 마침내 근사한 한 접시가 만들어졌다.
만드는 건 15분이었지만 아이는 10분 만에 자기가 만든 김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평소 밥 먹는 시간이 30-50분 정도인걸 생각하면 정말 앉은자리에서 집중하며 즐겁게 먹은 것이다. 평상시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이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는 마음 저 구석으로 고이고이 접어 밀어 넣어버렸다. 자기가 이뤄낸 것을 누리는 그 기쁨은 내가 줄 수 없는 거니까.
알고 있다. 문제집을 한 페이지 더 푸는 것보다 자기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만들어낸 그 무언가가 이 아이를 성장시키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엄마의 계획표 대로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것보다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계획하고 체험하고 이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아이에게 더 큰 가르침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엄마의 마음은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조바심을 칠 때마다 자꾸만 자꾸만 쪼그라든다.
내 아이는 이미 잘하고 있다. 충분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쪼그라든 마음에 셀프 응원의 미스트를 뿌려서 다리미로 싹싹 잘 다려본다.
짧은 방학의 절반이 벌써 지나갔다. 이제 내가 할 것은 조금 더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고 아이와 함께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만드는 것. 엄마의 조급증만 빠지면 된다. 내 아이의 하루는 문제없이 아주 잘 흘러가고 있다.
매 순간 아이는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 보이지만 내 멘탈만 흔들리지 않도록 단디 붙든다면 이 방학도 ‘아…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이 이렇게 좋을 거면 나는 아이를 대체 왜 낳았을까?’하는 생각이 더디 들지 않을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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