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취미는 그루멍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호주에 살면서 느끼는 큰 기쁨 중 하나는 자연이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순간이 많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캠핑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생을 맞이하기 전에는 캠핑을 많이 다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갈 수 있는 곳을 늘 선호했다. 그렇게 멀지 않은 캠핑장에서도 캥거루와 왈라비는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편리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은 캠핑장일수록 온갖 동물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우리에게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도 아니었고, 바로 모닥불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숨 막히듯 눌러놨던 텐트를 펼친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두꺼운 장작을 도끼로 잘 깨 쪼개어 잘 탈 수 있는 크기로 준비한다. 음식은 정말 대충 먹었다. 3분 요리 아니면 라면. 그도 아니면 오는 길에 패스트푸드 드라이브 스루가 최고였다. 저녁을 해결하고 난 후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설레기 시작한다. 바로 모닥불과 함께하는 불멍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불멍 : 모닥’불’ 쳐다보며 ‘멍’ 때리는 것]
우리는 유독 이 순간을 사랑했다.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들으며 손에는 맥주 한 캔을 들고 캠핑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던 그 순간을 사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캠핑을 가기가 힘들어졌을 때에는 작은 뒷마당에다 파이어 핏을 놓고 불을 피웠다.
호주에서 볼 수 있는 미친 자연 경관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바다라고 생각한다. 눈앞에서 가까이 마주하는 바다도 멋있지만 높은 산 어디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바다. 특히 강하게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다 보면 감탄이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감탄해 마지않는 바다를 바라보다 못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서 어릴 적에는 주로 멀찌기서 구경하거나 모래사장에서 놀았다. 막내가 좀 컸다 싶은 지금은 아이들을 데리고 쉬운 코스로 트레킹을 다녀오기도 한다. 조금 높은 곳으로 트레킹을 떠났다가 마주하는 바다는 정말 웅장하다.
[물멍 : ‘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
우리는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물멍으로 시간을 보냈고, 요즘도 보내고 있다.
집사라는 사명을 짊어지기 전에는 즐거운 멍이라는 것은 이 두 개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고양이들과 함께 살다 보니 나의 행복멍 종류에 ‘그루멍’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그루멍 :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는 것을 쳐다보며 ‘멍’ 때리는 것]
불멍과 물멍을 때릴 때에는 주로 멀리 나가서 시간을 보냈기에 아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던 반면 ‘그루멍’은 달랐다. 언제든 거의 수시로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면서 멍을 때릴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내 느낌을 얘기하자면 때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나도 모르게 멍하니 자기 몸을 정성스레 핥아대는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어린 아기냥일 때에는 녀석들도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마냥 귀여워 보이기만 했었다. 그랬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서 성묘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루밍을 하는 스킬도 늘어갔다. 스킬이 느는 만큼 애써 몸을 가꾸는 시간이 줄어들까 싶지만 또 그건 아니었다. 녀석들이 혀로 몸을 가꿔가는 시간에 비례해 점점 단정해지고 깔끔해졌다.
그루밍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기특하고 또 한편 마음이 부드러운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해진다. 약간 몸 어딘가가 간질간질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녀석들의 까끌까끌한 혓바닥이 내 몸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럼 신기하게도 가려웠던 곳이 말끔히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마치 내가 목욕을 끝낸 것처럼 개운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건 좀 너무 감정이입이 심한 거 아냐? 하며 혼자 웃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그루멍은 가히 중독적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쁜 쳇바퀴 인생 속에서 자꾸 나를 끄집어내어 가만히 집중하며 쳐다보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긴장으로 딱딱했던 내 근육들이 부드러운 안마의자에 누워있었던 것처럼 노글노글 해지며 긴장이 풀린다. 이렇게 일상에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마사지 덕분에 집사는 긴장으로 넘쳤던 하루에 잠깐 ‘휴식’이라는 단어를 추가한다.
이 묘하고도 묘한 중독성을 지닌 ‘그루멍’은 종종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내 멘탈을 진정시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녀석들을 돌보면서 지고 가야 하는 책임감보다 내가 얻는 위로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 반려동물이라고 하는지 진심으로 이해되는 순간이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개를 길들이지만, 개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고. 반려 동물은 길들이려 하는 사람을 위로한다는 걸 나도 집사가 되고서야 알았다. 우리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에게 반려 동물은 인생의 일부일 뿐이지만 녀석들에게는 우리가 전부라는 사실도.
그래서 그네들과 인생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면 그만큼의 막중한 책임감도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작은 생명체들과 함께하는 우리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들의 소중함… 잊지 않겠다고 나는 오늘도 그루멍을 때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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