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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초록 Sep 10. 2023

#독일. 유럽인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

한국인이 영어를 보다 쉽게 하는 법


영어영문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꼭 이 소리를 듣는다.

“우와, 너 영어 잘하겠네~”


물론 아니었다. 미국에서 1년 공부하기 전까지는.




원래는 나도 외국인이 말을 걸면 긴장하는 사람이었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미국에 갔을 때 현지인을 많이 사귀고, 슬랭을 전부 알아듣진 못하더라도 외국 친구들 그룹 대화를 많이 청강(?)했다. 감사하게도 비즈니스까진 아니지만 듣는 귀, 커뮤니케이션 영어는 많이 늘었다고 느낀다.


영어로 대화하는 걸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 점은 유럽 여행의 core value가 되었다. 숙소 로비에서 만난 분과 맥주 타임을 가졌고,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슬로바키아 분에게 캐스팅(?) 당할 뻔하기도 했다.


부엌에서 아침 만들다 호스트, 게스트와 갑분영어타임 가졌던 날






유럽 사람들의 영어실력에 깜짝 놀란다.


독일이 첫 국가였던 만큼, 독일인이랑 대화할 때마다 이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독일 사람들은 내가 독일어 구사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바로 영어 스위치를 켰는데, 기본 회화가 아닌 취중만담이 가능할 정도였다.


나의 프랑스 친구들도 영어를 부담 없이 구사했다.

(여행하는 내내 영어로 대화했으니)



“영어를 어디서 배웠어?”

“학교에서 배운 게 단데? 한국에서도 가르치지 않아?”

“응. 근데 우린 읽기만 잘하지, 말하기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잘 안 쓰려고 하나 봐.”

“배웠는데 왜 못해? UN 연설을 하는 것도 아닌데ㅋㅋ”



그러게.

생중계되는 TV 방송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렇게 영어를 어려워할까? 유럽도 영어가 제2외국어인데, 왜 유럽인은 한국인보다 영어를 잘할까?        


유럽에 있는 내내 이 질문을 한편에 챙겨놨었다.






1.

유럽 국가는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 점이 한국과 가장 다르다.


약 50개 국가가 긴밀히 이어져 있고, 서울에서 전주 가듯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때문에 어느 지역을 가도 최소 2개 국가 이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모국어가 공통이 아니다 보니, 영어로 소통할 일을 자주 마주한다. 영어를 쓰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반면, 한국 생활에서는 영어가 필수가 아니다.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을 볼 일도 적다. 유럽 내에서 민족 다양성이 낮다고 평가되는 독일마저 타민족 비율이 14% 이상인데, 한국의 외국인 비율은 약 4% 정도니까. (불법체류 제외) 때문에 대도시의 서비스업, 글로벌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영어가 생활에 필요해서 공부할 필요성은 못 느낄 수 있다.



2.

(내가 겪은 대부분의) 한국인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민족인 것 같다.


뭐가 좋은지, 어떤 게 잘하는 건지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난 집단이다. 흔히 표준 영어라고 불리는 미국식・영국식 영어를 기준으로 공부하며 본인의 실력을 그와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1번과 일맥상통한다. 지금 당장 내 삶에 필요하면 실력이 어찌 되었든 영어를 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유럽의 경우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어실력이 필수보다는 교양과목으로 분류될 때가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영어에 대한 개인의 기준치가 한없이 높아지는 것이 한국의 경우겠다.


'영어 스위치' / 독일어를 못한다니 바로 영어 메뉴판을 주던 카페, 내 친구에게 독일어를 쓰다가 내겐 영어로 칭찬하던 패션 무리 독일인들!






유럽에 5주를 머물면서,

중요한 건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쉽게’ 하느냐임을 알았다.


언어 공부하고 싶으면 현지인과 연애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영어에 한해, 끊임없이 공부해 온 (나의) 시간보다 일상에 노출되는 (그들의) 시간은 더 가볍게 효과적이었다. 쉽게 구사하다 보니 언어를 잘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문득 영어를 배워온 내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영어 유치원, 외국인 강사가 가르치는 학원, 외국어 고등학교에 영어과 진학까지… 그런데 내 실력이 늘었다고 체감했을 때는 실제로 영어를 쓰는 환경에 던져졌던 1년이었다.


덧붙이자면, 그중에서도 내 영어실력을 평가하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friendly 한 분위기에 있을 때 발화할 용기와 빈도수가 늘었다. 마더 텅만큼 빠르거나 다양한 표현을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구사하는 언어가 충분히 그들에게 닿고 있다는 시그널은 영어를 훨씬 사랑하게 만들었다.


뜬금없는 미국 추억 사진 1 (부끄러운우리무리..)
뜬금없는 미국 추억 사진 2 (보고싶은 팩트친구들)


언어는 결국 우리의 목적과 생각을 나누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때문에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사용량을 늘릴 때 효과적인 툴이 된다. 유럽인 역시 ‘잘하겠다’는 생각 대신 ‘자주 필요하니 쓰지!’라는 마음으로 영어를 받아들이기에 오히려 더 쉽게 구사하고, 그 시작이 실력 향상의 시발점이 되는 게 아닐까.






지난 학기에 수강한 영어 교육 수업에서 교수님이 이런 어젠다를 제시하셨었다.


우리는 단일언어사용자가 아닌 이중/다중언어사용자이다.
표준 영어(BANA)가 아닌 링구아프랑카 영어(LFE) 역시 유효한 영어로 받아들여질 때 언어의 주인이 많아진다.
영어는 공공재이다.


링구아프랑카 영어는 서로 다른 모국어를 가진 화자들이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다. 문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사용해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다면 ‘영어’로 인정하는 개념이다. (국제 공식언어만 인정하는 BANA 영어와는 반대 개념)


애초에 한 언어를 완벽히 구사한다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다. 모국어인 한국어부터도 개개인이 틀리게 알고 있는 문법이 있고, 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단어가 있다. 완벽을 기준으로 언어 사용을 바라보면 몇몇 학자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언어를 잘 구사하다’라는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


이미 영어를 잘하는 우리, 한국인이 영어를 더 잘하는 법은 바로 스스로의 허들에 관대해지는 것이 아닐까?


링구아프랑카 영어를 인정하는 등 언어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올바르게 형성될 때, 덕분에 언어를 진정한 수단으로 여길 때, 더 많은 한국인이 본인을 다중언어사용자라 인식하고 영어를 편안히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영문학도의 소논문 같은 브런치였습니다.

*의견 환영, 질문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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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일간의 유럽 여행을 기록합니다.

5개국 11개 도시의 여름을 다이어리에 담아왔어요.


독일, 프랑스,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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