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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하 Sep 19. 2020

나를 지켜내기로 했다.

코로나19 장기 격리자

아내와 아이들은 3개월 전에 한국에 돌아갔다.

이 나라의 코로나 19 상황이 나아지면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아내의 연락에

상황이 더 심각해질 테니 한국에 있으라고 했다.

실은 돌아오라고 하고 싶었다. 보고 싶다고 함께 지내고 싶다고 하고 싶었다.


내가 안아줄 수 있는 누군가, 나를 안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간절했다.

그런데 내 외로움을 달래자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다.

감염 위험성이 높은 상황이고, 일단 감염되면 검사 결과를 받는데 몇 주나 걸리고,

그나마 늦은 결과지를 분실하는 것도 모자라

사망자를 어디에 매장했는지 파악도 못할 정도로 열악하고, 심지어 말도 안 통하는 의료시설에 격리돼야 한다.


그런 상황에 내 아내, 내 아이가 처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립된 생활을 견디기로 했다.


첫 달은 아주 바쁘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혼자 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매일 새벽 3시-4시에 일어나 글쓰기와 외국어 공부, 운동을 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독서와 운동을 했다.


오래간만에 업무 관련성이 없는 분야의 원서도 읽기 시작했고, 제3 외국어 공부에도 재미가 붙었다.

이대로 몇 달만 버티면 된다. 책도 쓰고, 원서도 읽고, 제3외국어 공부도 하고 알차게 보내자.

그렇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롭기는 했지만 감정 상태도 안정적이었다.


두 번째 달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취업전에 공부할 때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나 싶기도 하고 처자식이 보고 싶기도 하고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그렇게 고립된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와 운동은 계속했다.


그리고 삼 개월째에 이른 지금은 그저 무기력하다.

이제 영어 오디오북을 세 권째 듣고 있는데

첫 번째 책은 10일, 두 번째는 2주 걸렸는데 세 번째 책은 이제 거의 한 달째 듣고 있다.

책으로 치면 페이지수는 400-500페이지 수준으로 비슷하고 영어 수준도 비슷하다.

근데 투입시간은 점점 적어지고, 집중도가 떨어져서 다시 듣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애초에 그렇게 사교적이지도 않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래도 내 곁에는 가족들이 있었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다. 코로나 19 상황이 장기화되고,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데

빈곤과 기아가 심각해지니 경제를 풀어버렸다.

거리 사람들 그득하고 마스크 미착용자도 부쩍 늘었다. 정부 최고위급 확진 사례가 잊을만하면 속보로 뜬다.


그래서 회사 말고는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도 안 만난다. 개인 사무실이라, 누가 보고 오고 내가 보고하러 가지 않는 이상 동료들과 마주칠 일도 없다.


그렇게 고립된 생활을 한 지 6개월째고

그중 최근 3개월은 가족들과도 떨어져 독거 생활을 하고 있다. 공부와 운동, 글쓰기에 대한 의지는 점점 무뎌지고, 무기력감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잠도 길게 못 잔다.

첫 달, 두 번째 달 까지는 10시쯤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자는 중간에 깨는 일도 거의 없었다.

지금은 10시쯤 잠들면 1시쯤 깨서 네시쯤 까지 깨 있다가 다시 잔다. 아예 1시에 일어나 다시 잠에 못 드는 날도 많아졌다. 몸은 피곤하고 눈은 감기는데 정작 누우면 뒤척이기만 하고 잠에 들기 어렵다.


술도 늘었다.

한 동안 맥주 한 캔 정도로 자제했던 술도 이제 서너 캔 넘게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렇게 술을 먹고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나 다시 잠 못 드는 날이 계속되니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감정은 불안정해지고, 사지가 흐물거리는 느낌이다.


식사도 불규칙해졌다.

첫 달에는 요리해서 먹었다. 보쌈, 스테이크, 찌게 등등.  두 번째 달부터 시켜먹는 일이 늘었는데,

지금은 하루 한 끼는 과일로 때우고, 한 끼는 사 먹고, 한 끼는 비비고 같은 레토르트 식품으로 때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내 인생의 암흑기였던 20대 초중반 그 시절에 이랬다. 뭐든 의욕이 없었고, 게임, 당구, 술로 인생을 허비했다.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를 낼 거냐고?

오히려 나한테 10억쯤 준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30대인 지금이 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건강하다. 처자식도 있고, 직업도 있다.

뭐가 좋다고 그 어둡고 처량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겠나.


아 너무 싫다. 절대로 20대 때의 생활로 돌아가기 싫어. 대낮부터 술이나 마시고, 세상만사 불평불만 가득하고, 바라는 건 많으면서 실제로 얻기 위한 노력은 눈곱만큼도 안 하던 그 시절로는 절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대로 계속 혼자 지내게 된다면 분명

업무 외의 시간은 무기력하게 술이나 마시면서 낭비 것 같다. 20대 때의 생활로 돌아갈 것 같다.


안돼. 절대 절대 절대 안 돼. 세 번 절대 안 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기로 했다.

생활을 지키고 정신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일들을 찾았다.


1. 글쓰기

 한동안 쓰다가 말다가 했는데,

 글을 쓸 때와 안 쓸 때의 정신상태가 너무 다르다.

 글을 쓰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피면서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글 쓸 때는 마음이 평온해지고 겸손해진다.

 그래서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누가 보든 말든 매일 써서 올리자.

 나를 위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2. 운동

20대 때 길었던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했던 게 운동이다.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의 무기력으로 인한 실패를 반복하다가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하루 한 시간만 헬스장에 있자고 다짐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건 말건 그냥 하루 한 시간은 헬스장에 가는 거다라고 목표를 정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운동을 제대로 배우고 점점 더 집중해서 하게 되면서 체형이 바뀌고 자신감이 붙고 다른 분야에서도 꾸준함을 발휘하는 방법을 익혔다.


운동할 때는 잡생각이 사라져서 그런지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를 위한 투자라 그런지  만족감도 든다.

그래. 역시 운동이지. 근데 이미 매일 하고 있는데.


그래서 목표를 정했다. 2021년에는 피트니스 대회에 나간다. 전에는 감량의 고통이 너무 끔찍해 보여서 도전해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목표를 잡은 것 만으로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운동을 이제 막 3개월쯤 했을 때 아무도 몰라보지만 나 혼자서는 거울에 비친 팔뚝을 보면서 막 워 이제 이두가 좀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하면서 키득대던

그때 그 기분이다.


3. 절주

술을 자주 마시면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집중력 판단력 이해력 다 떨어진다.

그래서 20대 말에 한창 공부하던 시절, 막판에는 매일같이 마시던 술을 끊었었다. 일 년 정도 끊었었는데, 끊은 지 한 달쯤 때부터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처럼 머리가 쌩쌩 돌아가는 게 느껴지고, 그렇게 안 외워지던 내용도 몇 번 안 본 것 같은데 술술 줄글로 나오는 경험을 했다.


무슨 금주 간증 같은데, 지금의 알코올로 찌든 내 머리를 위해서는 그런 효과가 필요하다. 술은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기로 한다. 그렇게 마실 때도 절대 과음하지 않기로 한다.

   

자 이제 시작이다. 한참 쓰고 지우고 하다 보니 벌써 두 시간이 지나갔다.


역시 글쓰기는 몰입이 된다. 그래 누가 보든 말든 쓰는 거야.


앞으로 몇 개월이나 더 혼자 지내게 될지 모르겠는데 어떻게든 나를 지켜내겠다.


이제 아침 6시반이다. 이제 운동하러 가야겠다.

오늘은 대흉근, 삼각근, 복근을 불태운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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