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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하 Sep 25. 2020

체한 것 같다. 온 몸이 아프다.

닭 국물과 사람의 온기

어제부터 많이 아팠다.

저녁을 먹은 게 한 것 같았다.

배는 묵직하고 사지에 힘이 안 들어갔다.


오후부터 많이 피곤해서 집에 가면 뭔가 힘날 만한 걸 시켜먹어야지 싶었다. 저녁으로 먹을 제육덮밥 하고 내일 먹을 김치찌개를 시켰다. 원화로는 제육덮밥이 만원, 김치찌개가 9천 원쯤 한다.


요즘 감량하겠다고 식사량을 줄였었는데

매콤 달콤한 제육볶음에 눈이 돌아가 밥을 두 공기나 비운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아침에는 과일 조금, 점심엔 작은 밥공기에 야채 위주로, 저녁엔 계란이나 닭가슴살로 먹다가

갑자기 자극적인 음식을 과식했으니  탈이 안 날 리가 없는 건가.


아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몇 년 전만 해도 매 끼니마다 두 세 공기씩 밥을 비우고, 앉은자리에서 고기를 두 근씩 구워 먹었었는데 이제는 자극적인걸 먹거나 과식하거나 하면 바로 이상신호가 온다.


게다가 요즘 계속 잠을 깊이 못 잤다. 좀 깊이 자보려고 운동량을 늘려도 보고 이것저것 해봤지만, 잠들려고 누웠을 때만 까무러치듯 잠들고, 새벽 한두 시면 잠에서 깨서 뒤척였다.


억지로 운동은 계속했지만, 다크서클은 점점 더 진하게 내려오고, 피부도 검어졌다. 지사장님을 비롯한 회사 동료들이 몸 괜찮냐 어디 아픈 거 아니냐 묻는 빈도가 늘어났다.


9시에 잠들어서 12시에 깨서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 잠 못 들고 뒤척다가 5시에 일어났다.


도저히 출근할 몸상태가 아니라 지사장께 몸이 너무 안 좋다고 말씀드리고 연차를 냈다. 

동료한테 연락이 왔다.

'혼자 지내서 그래. 이거 먹으면 나을 것 같다 싶은 거 있으면 이야기해. 상 차려 갈게'

아 너무 고맙다. 혼자 살 때 아프면 되게 서러운데 누가 이렇게 챙겨주기라도 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러나, 어리석은 나란 종자는 한 것 같다고 진단하면서도 배가 고프다고 아침으로 김치찌개를 끓여 밥 한 공기를 비운 참이었다. 그리고 더 무거워진 배를 부여잡고 스스로의 우매함을 뉘우치는 중이었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꼭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오전 10시쯤 다시 누워서 잠들었다.

12시쯤 깼는데 좀 자서 그런지 몸 상태가 좀 나아진 것 같았는데, 일어나다가 배가 결려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전통의 민간요법을 쓰자.

수지침을 꺼내 양손 엄지를 땄다. 검붉은 피가 기다렸다는 듯이 둥그렇게 맺혔다. 트림도 나오고 뭔가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내친김이니 나머지 손가락도 다 따고 소화제도 한 알 먹었다. 그렇게 피가 낭자한 테이블을 치우고 있으려니 지사장께 연락이 왔다.


'기사가 닭백숙 가져갈 테니까 먹고 좀 쉬어'

'아 예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냐 아냐 아플 땐 잘 먹고 쉬어야 해. 회사 생각 말고 푹 쉬어'

내 몸이 아프니 회사 생각이고 뭐고 하진 않았지만 너무 고맙다. 내가 떠나기 전까진 최선을 다해 모셔야지 싶었다.


로비로 내려가 닭백숙을 받아와서 쏟아지지 않게 하려고 친친 동여맨 끈을 자르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 도저히 못 먹겠다. 내가 인간이라면 한 상태에서 저걸 먹으면 안 돼.


그런데 누군가 정성으로 챙겨준 음식을 맛도 안 본다는 건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냄비 뚜껑을 열고 뿌연 닭국물 한 숟갈을 입에 넣은 그때,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쳤다.


정말 오래간만에 느낀 사람의 온기에 그동안 홀로 살면서 꾹꾹 눌러 참아온 외로움이 터진 것 같았다.

그래서 펑펑은 아니고 눈가에 한두 방울 그렁하게 맺히는 정도로 잠시 흐느꼈다.

아내와 아이들과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었다.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


그렇게 36초 정도 울고 나니,

서러움은 사라지고 따스함만 남았다.


아 따뜻하다.

마음에 햇볕이 비추는 느낌이다.

요즘 우기라서 정말 시시때때로 비가 오고 지금도 비가 와서 우중충한데도 춥지 않고 따뜻한 기분이다.


따뜻한 닭국물에서 느낀 사람의 온기를 잊지 말아야지.


그런데... 한국에 있는 아내한테 새벽부터 아프다고 징징댔는데 어째 답장 하나 없다.


안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닭국물 한 모금 더 떠먹고

따스함을 좀 더 느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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