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빠에 그 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지금 전화를 안 받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네가 좀 전화해 봐."
시계를 보니, 엄마가 오전에 운동 갔다가 집에 올 시간이 지났다. 아는 분이랑 점심 식사 하는 것 아니겠냐고 좀 기다려보라고 아빠에게 말했다.
"아까부터 전화했는데 안 받아. 너는 딸이 돼서 엄마 걱정도 안 되니?"
아빠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와 계속 연락 안 되면 당장 나보고 엄마 찾으러 집으로 가보라고 말할 태세였다. 내가 엄마에게 연락해 보겠다면서 겨우 전화를 끊었다.
역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빠가 걸어서 안 받은 전화를 내가 건다고 뭐가 달라질까.
나는 사실 엄마 걱정이 되지 않았다. 밝은 낮시간이고 사람들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핸드폰 확인을 못 할 수 있으니까. 아빠의 행동이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누가 보면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끔찍이 챙기는 줄 알겠지만, 아빠의 기준은 자신일 뿐이었다. 밖에서 일하다가, 어쩌다 용건이 생겨 엄마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으면 그때부터 아빠의 걱정은 매분 매초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혹시 뭔 일 생긴 거 아냐?'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지. 어디에서 쓰러졌나?'
걱정으로 시작한 상상은 지금까지 봐온 모든 드라마, 영화의 시나리오를 갖다 붙인다.
문제는 이때마다 아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달달 볶는다는 거다.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연락이 안 되었기에 시작한 걱정이었으니까.
한참 후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 왜 전화를 안 받아. 아빠가 얼마나 나한테 뭐라 그랬는지 알아?"
엄마는 안 봐도 뻔하다라면서 한숨 내쉬며 그저 웃었다.
지인들과 약속을 하루 앞두고, 카톡으로 구체적인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인 A는 계속 톡을 확인하지 않았다. 원래 카톡을 잘 안 보는 분이었지만, 오늘은 반나절이상 답이 오질 않아 저녁이 다 되어 전화를 했다. A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싶었다. 당장 내일이 약속인데 어떻게 되는 건지도 궁금했다. 만나기로 한 또 다른 지인에게 톡을 보냈다. 전화했는데도 안 받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지인은 자기도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제가 전화했는데도 안 받네요. 어제 여행 중이라는 얘기까지는 들었었는데, 그래서 연락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꽤 많은 비가 내렸다.
강풍을 동반한 호우경보 재난문자가 울렸다.
'비도 이렇게 많이 오는데 여행 중에 뭔 일 있나? 왜 연락이 안 되지?'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 시간 후, A에게 전화가 왔다.
"제가 여행 중이라 계속 차 안에 있었는데요. 배터리가 없어서 아얘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 놓고 확인을 안 했어요. 이제 집에 막 도착했어요. 죄송해요."
전화 한 통화로 하루 종일 걱정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상대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을 뿐인데 나 혼자 몇 시간 동안 걱정으로 마음이 불안했다.
'이건 누구 탓이지? 걱정하는 내 마음 또한 이기적인 것 아닌가?'
평소에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나는 혼자 걱정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 또 인지상정 아닐까? 다른 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누군가 폭행을 당하거나 쓰러져도 그냥 지나친다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무관심보다는 내 마음이 조금 불편하고 신경 쓰일지언정, 상대를 걱정해 주는 마음을 갖는 게 더 따뜻한 관계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 굳이 의미를 부여해 본다.
이후로도 아빠는 엄마와 통화가 안될 때 내게 전화를 했다. 나 중심의 이기적인 걱정은 계속되었다. 다만, 좋아진 점은 있었다. 아빠의 말투다. 내 불만이 엄마를 통해 아빠에게 전달되었나 보다.
"아빠가 걱정이 좀 되네? 네가 좀 전화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