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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pener Aug 28. 2020

이젠 그리운 말 "그만해"

아직은  나의 모든 말의 이유가 사랑이었면

그만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러운 즈음부터는 거의 듣기가 힘든 말이 되었다. 분명 너무 싫어서 도망 다니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그 말이 문득 그리워졌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호기심이 많았던 그때만 해도 각자의 선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그 선을 넘지 말라고 나에게 그만해를 외쳤다. 어머니가 그랬고 선생님이, 때로는 선배나 친구들이 나에게 그랬다. 그때의 나는 나도 나만의 선이 있다고 다른 선으로 나를 멈춰 세우지 말라며 그 말에 격렬히 대항했다.

돌아보면 나를 향한 그 시절의 "그만해"에는 대부분 애정이 담겨있었다. 각자의 선은 달랐지만, 나에 대한 걱정과 관심이 나에게 그 말을 건네는 이유였을 것이다. 아마 내가 그만해라는 말을 그립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말 자체보다는 그 안에 담겨있던 마음이 그리운 것일 테다.

어릴 적 짝꿍이 책상에 그었던 선에는 애정이 담겨 있었을까?   ⓒ pixabay.com


왜 나이가 들면 그 말들이 주변에서 사라지는 걸까? 사실 누구나 납득할만한 경험과 지식의 격차가 있는 대상을 향한 말이  아니라면 이 말은 사실 꽤 건네기 어려운 말이다.  (물론 그때 나는 격렬히 대항했지만)  다른 사람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이 말은 책임감을 비용으로 치러내야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거나 대상이 나이가 들었을수록 이 말을 꺼내는 것이 더 점점 신중해진다.  가벼운 애정만으로 건네던 말에 용기와 더 큰마음이 들어가야 돼서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나이뿐 아니라 내가 나이가 든 만큼 세상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썸이라는 단어가 책임감은 회피하면서 연애 감정이라는 이득을  취하기 위한 시류가 만들어낸 단어라는 해석이 있듯이 요즘은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비용 치르면서까지 타인의 삶의 개입하는 것 자체를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책임감을 덜어낼 수 있는 온라인상에서는 독설에 가까운 무서운 "그만해"들을 쉽게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임감이란 무게가 서로의 적정 거리를 잘 유지하게 만든다. 슬프게도  ⓒ pixabay.com
나이가 들면 나에게 "그만해"라고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 되는 것 같다.


나잇값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을 점검하고 멈춰 서야 할 때, 자신에게 이야기해 스스로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그만해라는 말이 담긴 노래의 가사도 대부분 자신을 향한 소리이거나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바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이라도 셀프 진단은 객관적이지 못하다 보니, 나는 일부러 정기적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봐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러 다니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내가 요청하는 것이라 상대방은 책임감이라는 비용 지불을 덜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애정이 없으면 요청해 준다고 응해줄 리 없는 일이다. 아직 그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또 감사한 것은 아직 나에게 책임감을 비용으로 치를 용기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모자란 나의 말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 모르겠고, 혹자는 오지라퍼라며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평생 간직하고 싶은 용기다. 아직은 나의 말의 모든 이유가 사랑이고 싶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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