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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코로나 박사는 처음이라


트로피칼 디프레션의 이야기


“It’s a strange time to start a PhD, but such is life these days.” 


기다림 끝에 입국 허가를 받았다고 지도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을 때 받았던 (환영) 메일의 한 구절. 국가 간 이동은 물론 일상생활마저 제한된 이 시기에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니, 그것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박사과정을 밟으러 간다고? 일은 그만두고? 내 근황을 묻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제는 나도 내가 왜 박사 유학을 가려고 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탄올라프의 이야기


“It would be perfect timing to start a PhD!” 


올 가을부터 박사 과정을 시작하니 사표를 내겠다는 내게 앞으로의 미래를 응원해주며 했던 전 직장 상사의 한마디. 어차피 집에만 있어야 하는 이 시기에, 어차피 한 곳에서 처박혀 공부만 하고 논문만 써야 하는 박사 유학을 가는 것은 운명이다? 박사 과정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 (제발) 코로나도 끝나 있겠지?



우리의 이야기

 

이 전례 없는 시기에 30대 두 친구가 공교롭게도 동시에 늦깎이 박사생으로 진학하게 되었음. 한 명은 적도에 맞닿아있는 싱가포르에서, 또 다른 한 명은 북극에 맞닿아있는 스웨덴에서. 


두 친구는 이제 인생에 두 번은 없을(없어야 할) 여정을 위해 이 브런치 채널을 만들어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 불확실한 나날들을 기록하고, 또 자기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배워가는 여정을 함께 하고자 함. 


이 채널은 코로나 시대 유학 지원, 출국 및 정착 과정부터 해외 생활, 늦깎이 박사생의 일상적 고민과 애환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까지를 두루 다루고자 하며, 트로피칼 디프레션과 탄올라프가 격주로 연재할 계획임.



트로피칼 디프레션과 탄올라프의 인연  


트로피칼 디프레션과 탄올라프가 만난 동남아 국가 A의 NGO  전경 @트로피칼 디프레션
해당 NGO의 스태프 숙소  @탄올라프

트로피칼 디프레션과 탄올라프는 같은 대학, 서로 다른 전공의 한 학번 차이가 나는 두 사람. 만날 일이 없어 보이는 우리는 동남아시아 국가 A의 공항에서 첫 만남을 가짐. 한 NGO 기관이 운영하는 장애인 기술학교로 목적지가 같았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것. 짧은 방문을 계획했던 탄올라프와 달리, 트로피칼 디프레션은 그곳에서 4개월을 지냄. 이후 대학 수업에서, 또 동남아 지역을 연구하는 교내 한 연구소에서 같은 활동으로 인연을 이어나가게 됨. 


트로피칼 디프레션과 탄올라프가 함께 참여했던 연구사업 현지조사 @트로피칼 디프레션

대학 졸업 3-4년 후, 각자 다른 곳에서 석사를 하거나 마친 후, 두 사람은 놀랍게도 한 비영리 연구기관에서 동남아 A 국가를 주제로 하는 1년 연구사업의 국내 담당자 및 현지 파견자로 일하게 됨. 이로써 공항에서의 첫 만남 이후, 조금은 느슨했던 혹은 맞닿아 있으면서도 조금씩 엇갈렸던 둘의 인연이 같은 시간 같은 곳에 묶이게 됨. 멀리 앉아 있기는 하지만,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 했던 1년 간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사이로 일하게 됨.  그 이후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던 두 사람은 2020년 8월, 9월에 각각 싱가포르와 스웨덴에서 박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같은 시기 다른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게 되었음.  



트로피칼 디프레션이 말하는 탄올라프 


탄올라프는 환한 웃음과 열린 태도로 닫힌 마음도 열고 성큼 들어오는 사람. 동남아 국가 A에서도, 탄올라프가 대학시절 아르바이트하던 홍대 뒷골목 작은 카페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매력에 무장해제되는 것을 목격함 (특히 탄올라프에게 농사지은 고구마를 가져다주던 손님을 목격한 일은 결코 잊을 수 없을 듯). 외유내강의 전형으로 부드러운 미소와 열린 태도와 함께 뚜렷한 주관까지 갖춘 친구. 십여 년간 관찰한 결과, 동남아, 한국, 북유럽 어디에서건 주변과 조화롭게 자신만의 공간을 일궈가는 사람임을 확인했음.

스톡홀름 대학교의 많은 학생들은 자전거로 통학한다 @탄올라프

졸업 대학 100주년 행사에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초대받아 후배들을 만나는 것이 꿈이었던 탄올라프. 그 꿈을 이루기 요원하다는 것을 머지않아 깨달았지만 20대 대부분의 커리어 선택을 ‘평화’라는 단어에 이끌려 계속하다, 어쩌다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에 반정착하여 5년째 거주 중. 트로피칼 디프레션과 같은 대학 졸업. 평화 센터라는 뜻의 현지어 이름을 갖고 있는 (트로피칼 디프레션을 만났던 그) 장애인 기술학교에서 2년간 살고 일함. 영국으로 사회인류학 석사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 후 한 국제개발협력 관련 비영리 연구기관에서 트로피칼 디프레션과 함께 1년 여간 (과다) 근무. 이후 워라밸을 지킬 수 있고 성평등 정책과 평화 연구가 활발한 스웨덴으로 이주, 스톡홀름의 한 평화연구소에서 4년 여간 지내다 2020년 9월부터 스톡홀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 학생으로 재학 중. 



탄올라프가 말하는 트로피칼 디프레션


탄올라프가 아는 트로피칼 디프레션은 ‘박사는 이런 애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논리적이고 학구적인 친구. 그만큼 트로피칼 디프레션의 늦깎이 박사 진학은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탄올라프의 바람이기도 했다고 해도 무방. 날카로운 분석적 시선을 가진 트로피칼 디프레션과의 대화는 너무나 현실적이라 종종 세상에 낙담하게 될 때도 있지만, 이를 또 항상 유머로 승화시키는 트로피칼 디프레션은 블랙 코미디의 대가. 동시에 1970년대 출판된 동화책을 선물하며 (다 읽은 후 볼 수 있게) 맨 뒷장에 ‘진짜가 되면 없어지지 않는다’는 편지를 써주는, 세상 사는 멋을 아는 낭만적인 친구. 

(좌) 에어컨 바람을 피해 싱가포르국립대 교내 카페에서 라떼 한 잔의 여유 / (우) 대학원생 연구실 컴퓨터에 누군가 붙여놓은 글귀 @트로피칼 디프레션

학부 때 탄올라프를 만난 동남아 국가 A에서 분쟁 후 사회에서의 개인의 삶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게 되었음. 학부 졸업 후 한국 유상원조기관에서 인턴 경험을 하였으나, 일보다는 권력과 공간, 배제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을 쫓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출신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여 동남아 국가 A에서의 약자의 재현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음. 석사 수료 이후 논문자료 수집을 겸하여 탄올라프가 일하고 있던 국내 국제개발협력 비영리 연구기관에서 A 국가로의 파견 연구원으로 일했음. 이를 통해 현지 대학 개발학과의 연구진들과 함께 현장연구를 진행하는 소중한 경험을 함. 석사 졸업 후 한 국립대에서 개발협력 사업 담당 연구원으로 3년간 영혼없이 근무하다 2019년도 지역 연구 분야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련 없이 퇴사. A 국가의 토지 수탈과 자원 변방을 연구하고자 2020년 8월부터 싱가포르국립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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