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올라프
지난 6월 말, 이직을 준비하던 중 운이 좋게 박사 오퍼를 받았다. 코로나로 구직이 어려워진 것은 국내 취업시장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올해 해외에서 관련 분야 이직을 계획했던 나 또한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던 차였다. 이미 거주하고 있던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 (그리고 독일 같은 일부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박사과정 학생들을 교직원으로 고용하여 보수는 물론 복지 및 연금 또한 지급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생각만 해왔던 박사과정 또한 직업의 개념으로서 이직 선택지 중 하나였다.
여기서 운이 좋게 박사 오퍼를 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내 노력과 능력 이상의 기회를 잡았다는 흔한 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입학 후 조금 더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많은 기준들 중에서 하필이면 선발 그 시점에 학부에서 필요로하고 또 가중을 두어 평가하는 기준들과 나의 조건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운과 여러 우연의 힘이 아니었다면 통과할 수 없었을 작은 바늘구멍을 비집고, 이번 학기 학부에서 선발하는 단 하나의 박사생 포지션에 오퍼를 받게 되었다.**
한명의 학생과 다섯의 교수, 그리고 그만큼의 다양한 코로나 수업 방식
학부 내 유일한 박사 과정생이 겪어야 할 일은, 같이 입학한 동기와 박사 과정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공감할 친구가 없다는 것 이상이었다. 아무리 독특한 코로나 방역으로 이름난 스웨덴일지라도 재택근무가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있어 새로운 사람을 직접 만날 일이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에 가까운 동료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제일 큰 문제는 바로 수업에 유일한 학생으로 참여해야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학기 시작 세 달이 지난 지금도 익숙해지지 않고 있는 문제다.
나는 9월 초부터 11월 초까지 한가지 필수과목, 그리고 11월 중순부터 또 한가지 필수과목을 듣고 있는 데, 두 과목 모두 팀티칭 (team teaching)으로 다섯 명의 교수가 매주 돌아가면서 수업을 해오고 있다. 마치 옥스퍼드의 전통 교육 방식처럼 교수와 일대일로 대화 형식으로 교육을 받는 것은 박사과정생으로서 내게 주어진 또 다른 행운이며 크나큰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 특히 어떤 수업이든 다른 학생들에 피해 준다는 생각할 필요 없이 내 논문 내용에 맞춰서 토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수들의 피드백을 그때 그때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박사생으로서 최고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나에게 맞춰져 있는 다섯명의 교수들의 수업을 들을 때면, 가끔 학비를 내고 다수의 학생들 사이에 껴서 수동적으로 들어야하는 한국식 교육 시스템이 더 익숙한 나로선 믿기 힘들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은 수업의 내용 뿐만 아니라 형태 또한 그러한데, 급하게 집 계약을 하러 가야 했던 2주 전에는 교수와 상의하여 수업을 일주일 미뤘고, 장소 또한 교수와 둘이서 편한대로 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섯 명의 교수와 크게 세가지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첫번째로 학부의 회의실에서 약 2미터 거리를 유지하며, 두번째로 시내의 한 까페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줌으로. 지난 11월 중순 스톡홀름 내 코로나 지침이 조금 강해지기 전에는 주로 학부의 회의실에서 교수를 만나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일대다 수업이었어도 또 코로나 이전이었어도 같았을 수업 형태였다. 한국이었다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진행했었겠지만, 이곳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흔치 않으니 코로나 이전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번에 걸쳐서는 교수와 시내 까페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그 곳이 두 사람 모두에게 대학보다 좀 더 가깝다는 이유였다. 한창 한국에서 까페 내 감염 케이스가 들려오던 터라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주변 소음으로 목소리가 명확히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연구실-집을 벗어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어서 대체로 좋았던 기억이다. 피피티나 칠판 없이 대화로만 수업을 진행했던 것이 신선했다, 물론 수업 후 복습에 애를 먹기는 했지만.
마지막으로 전세계 많은 학생들이 익숙해졌을 줌 수업. 줌 수업에서도 교수들마다 다른 수업 방식을 보여줬는데, 어떤 교수는 화면 공유 기능으로 피피티를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어떤 교수들과는 화상 채팅처럼 계속 대화만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가끔 반려견이나 가족 구성원들이 화면에 등장하곤 했는데, 그럴 수록 더 수업보다도 화상 채팅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일대일 줌 수업의 고충
코로나로 인한 다양한 수업 방식에 익숙해지고 또 일대일로 진행되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고충 또한 있다. 다수의 학생들과 함께 들었더라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수업 준비를 미처 다 해오지 못했을 때 그리 티가 나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 수도 있을텐데, 나같은 경우는 직접 하나하나의 논문에 대해 비판적인 내 생각을 나눠야하기 때문에 그 누구의 뒤에도 숨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수업이 하나 밖에 없는 바쁘지 않은 시기라 수업 전 읽어가야하는 논문들을 다 못 읽고 가는 일이 거의 없지만, 매주 교수들의 시선을 혼자 온몸으로 받아내어야 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또 교수에 따라 가끔은 대화가 끊기는 공백이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때에 대화를 이어갈 (맥락에도 맞고 대화를 생산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적절한 질문을 찾는 것이 가끔 과도한 책임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코로나는 역시나 수업 고충에서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최근 듣고 있는 수업은 국제관계학(혹은 국제정치학)의 이론인데, 학사나 석사과정에서 해당 전공을 공부하고 온 몇몇 박사 선배들과는 달리, 기존에 해당 전공을 하지 않은 나는 새로 접하는 이론들이 많아 미리 읽어온 논문으로는 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수업에서 교수의 설명이 반드시 필요한데, 일대일 줌 수업의 문제점은 모니터에 나오는 교수의 얼굴과 컴퓨터를 통해 가늘게 나오는 소리에만 의지해야하기 때문에 교수의 긴 설명에 집중력을 잃기가 쉽다는 점이다. 일대다 수업과는 달리 내가 토론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한다든가 질문과 같은 리액션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교수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해야하는데 어쩔 땐 참 이것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잠시라도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해져 교수의 긴 설명이 중간에 끊겼을 경우 반드시 다시 설명해주기를 부탁해야 하는데, 한명의 학생을 위해 열정적으로 어려운 개념들을 설명해 준 사람에게 이를 다시 한번 반복해달라고 할 때 (그리고 그 때도 또 연결이 불안정해졌을때!) 내가 잘 못 한것이 없으면서도 괜히 죄인이 된 심정이 될 때도 있었다. 이렇게 불안한 마음을 한켠에 두고 듣기에만 집중을 했던 수업 내용은 사실 이미 기억이 많이 나지 않는다.
학교 및 학부의 코로나 방침
그렇다면 이런 변화 혹은 문제점들을 학교와 학부 차원에서는 어떻게 인지하고 대처하고 있을까? 이것이 스웨덴 대학 시스템 차원의 특징인지 우리 학교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톡홀름대학교는 다른 나라 혹은 다른 학교와는 달리 상당히 분권화되어있다. 짧은 기간 느낀 바로는 단과대학이나 학부 단위에 많은 권한이 주어져있어,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중앙 지도부가 결정하는 문제보다 학부 내에서 결정되는 사안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코로나 지침 또한 예외가 아닐 터인데, 이것은 사실 학교 전체나 학부 단위와는 상관 없이 지침이라고 할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학부과정 수업의 경우 내년 봄학기의 일부는 온라인으로 돌린다는 결정은 학교 전체에 해당하는 지침이겠으나, 석박사과정 수업은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 연구실이나 공용 공간 사용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지침은 손을 잘 씻고 2미터 거리두기를 하라는 것 이외에는 전혀 나와있는 것이 없다.
전에 일했던 직장에서는 3월 중순 스웨덴 정부가 재택근무를 권고하자마자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전부 재택근무로 전환했었는데, 대학에서는 그런 것 없이 책임과 권리 모두 개인의 자율로 돌려 선택하게 하고 있다. 나는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연구실에서 일하기를 선호하여 가끔 대학에 나가는데, 어쩔땐 내가 사용하는 학부 공간에 지침이 크게 없다는 사실에 약간 걱정이 될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연구실을 혼자 사용한다는데에 위안을 삼고 동료들의 지성과 책임감, 공동체 의식을 믿는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래도 유일한 학부 정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박사생들을 위한 지침이다. 스웨덴 박사과정은 4년 과정으로 정해져있고, 육아휴직이나 건강 상의 이유 등 그 기간을 늘려야할 특수한 상황이 아닐 경우에는 4년 이후에는 고용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 논문을 마무리 해야한다. 학부 내에서 강의 혹은 행정 업무를 맡을 경우 그 업무 시간에 따라 최대 5년 까지 그 기간이 늘어나기는 하는데, 정당한 사유 없이는 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로 인해 박사 연구에 지체가 생겼을 경우 그 사유가 정당할 경우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는 지침이 새로 생겼다. 이는 코로나로 필드워크나 아카이브 사용 등이 불가능해진 경우는 물론이고, 건강 문제 (육체, 정신 및 심리 포함) 등으로 인해 생산성과 집중력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생겼을 때도 해당이 된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학부 내 박사학생회에서 코로나가 내 박사 연구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최대한 자세히 객관적으로 기록해두기를 당부하기도 하였다.
앞으로는 어떨까?
이번학기 때 듣는 수업은 1월 초에 끝나고 2월에 방법론 수업 하나가 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그 수업의 담당교수가 70km 떨어져있는 옆 도시에 살기 때문에, 스톡홀름의 코로나 상황이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한 계속 줌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2월에 박사생 한명이 새로 들어오기 때문에 교수 한명에 학생이 두명인 수업이 될 것이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인 점이다. 새로 들어오는 그 박사생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게 동료가 생기는 것도 또 내가 그에게 동료가 되어주는 것도 기쁜 일이며, 몇 달이라도 일찍 들어온 내가 이런저런 정보들이나 팁을 공유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미리 설레기도 하다. 일단 앞으로 연말연초 두달 동안, 단조로우면서도 다이나믹한 매주 수업을 잘 해내기로 마음을 다시금 먹는다.
*이처럼 돈이 없어도 박사 유학을 할 수 있는 법은, 대한민국 정부 국비유학을 받아 유학하는 트로피칼 디프레션과 함께 다음 기회에 자세히 기술하도록 할 예정이다.
** 스웨덴 국가 대학의 박사 과정 지원할 때 중요한 점 또는 (내가 말한 그 운과 우연, 여러 상황들에 관한) 고려할 점 등에 대해서도 추후 글을 써볼 계획이다.
커버이미지: 줌으로 진행된 수업 중 하나를 직접 캡처한 이미지. 의도치 않게 교수의 재택근무 환경이 화면에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